“포도 50만t 밭에서 썩는다”…Z세대에게 찍힌 고루한 술, 무너지는 와인왕국

캘리포니아주 솔레다드에서 51년 동안 와이너리 ‘밸리 팜 매니지먼트’를 운영해 온 제이슨 스미스(57) 씨는 차가운 현실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와인이 팔리지 않아 포도를 수확하는 비용조차 건지기 힘들어진 탓이다. 스미스 씨는 토지를 처분하고 가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현지시간) 세계적인 와인 명산지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업이 대격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와인 소비량이 급감하면서 포도밭을 불태우거나 개간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25년 만에 최저 생산량… ‘젊은 층의 외면’과 ‘건강 경고’
미국 전역에서 와인 판매량은 최근 20년 사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알코올에 대한 보건당국의 경고가 강화된 데다, 무엇보다 젊은 소비층의 취향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Z세대를 비롯한 젊은 소비 대중은 마시는 과정이 복잡하고 맛도 시큼한 전통 와인을 ‘고루한 음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대신 마시기 편한 캔 칵테일, 하드 셀처(알코올 탄산수), 무알코올 맥주나 대마(합성) 음료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여파로 미국 와인의 80%를 생산하는 캘리포니아의 지난해 와인 생산량은 지난 2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레드 와인의 몰락은 더욱 치명적이어서, 2025년에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레드 와인 생산량이 화이트 와인 밑으로 떨어지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캘리포니아 와인 잔혹사는 처함하다. 2025년 한 해에만 약 3만 8천 에이커(전체 밭의 7%)의 농장이 폐쇄됐다. 50만 t 이상의 포도가 수확되지 못하고 밭에서 부패됐다.
영화 ‘사이드웨이’가 쏘아 올린 공, 그리고 20년 만의 몰락
NYT에 따르면 이번 와인 잔혹사의 중심에는 와인 품종 ‘피노 누아’가 있다. 원래 섬세하고 재배하기 까다로워 비인기 품종이었던 피노 누아는 2004년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가 대흥행을 거두며 단숨에 ‘와인계의 스타’로 등극했다. 영화 속 주인공이 피노 누아의 풍미를 극찬하면서 캘리포니아 전역에는 피노 누아 열풍이 불었고, 농가들은 메를로(Merlot) 등 다른 포도를 뽑아내고 피노 누아를 심기 바빴다.
그러나 열풍이 식고 와인 소비가 정체되면서 과잉 공급된 피노 누아는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다.
현재 농가들은 피노 누아를 뽑아낸 자리에 피아노(Fiano), 그뤼너 펠트리너(Grüner Veltliner) 같은 생소하지만 가벼운(lighter) 화이트 와인 품종을 심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와인바 업주는 “요즘 고객들은 격식을 차리기보다 ‘캠핑용 컵에 따라 마셔도 부담 없는’ 저렴하고 가벼운 와인을 찾는다”고 전했다.
여기에 가파르게 오른 물가도 와인 산업을 압박하고 있다. 선물용으로 인기 높은 피노 누아는 품종 특성상 재배 비용이 많이 들어 고가에 형성되어 있는데,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선뜻 구매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50년 넘게 포도농사만 지어온 스미스 씨는 퇴직금 대용이었던 포도밭을 파산 직전 대기업에 매각한 뒤 조용히 짐을 싸고 있다. 와인 산업을 떠나며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사실 제 진짜 최애 음료는 맥주와 위스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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