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고전을 건드리는 건 양날의 검이다. 특히 '오디세이아'처럼 수천 년 동안 해석되어 온 신화를 건드리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영화 '오디세이'(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는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흑인 헬레네 캐스팅과 성전환 배우의 기용. 극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적잖은 거리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지점을 오래 붙들지 않는다. 시작부터 빠르게 밀어붙인다. 17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 도입부를 쇼츠처럼 압축해 편집했다.
트로이 전쟁과 그 전후 맥락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관객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전제로 핵심 이미지만 던지고,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 과감한 생략은 단순한 속도 조절이 아니다. 이 영화가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선택이다. 덕분에 영화는 초반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이후 오디세우스의 귀환 여정에 훨씬 더 많은 밀도를 할애한다. 관객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전쟁이 아닌 귀환,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붙잡는 건 신화의 본질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질은, 괴물과 모험의 스펙터클이 아니다. '전쟁 이후 인간이 어떤 상태로 남겨지는가'다.
오디세우스는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는 영웅으로 남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인 동시에 그 기억과 죄책감을 짊어진 채 돌아가야 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여정 자체가 밋밋한 건 아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사는 동굴,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마녀 키르케의 섬, 저승에서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는 장면까지.
글로만 상상해오던 신화 속 이미지들이 스크린 위에 구현된다. 이 영화가 인간의 내면만큼이나 신화, 그 자체의 질감에도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보여준다.
이 화려한 여정 한가운데서 이야기를 지탱하는 건 맷 데이먼이다. 흔히 '맷 데이먼이 고생하면 영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한다.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 바닥까지 밀어붙인다. 영웅이 아닌 소모된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 피로와 집착이야말로, 이 영화의 정서다.

여성 캐릭터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는 더 이상 순종적으로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다.
20년 동안 왕비의 자리를 지켜온 주체적인 존재로서,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와도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이 모든 흐름이 가장 압축적으로 터지는 지점은, 마지막 재회 장면이다. 원작에서 오디세우스는 활시위를 걸어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고, 이후 페넬로페와의 '침대 시험'을 통해 서로를 확인한다.
반면 영화는 이 과정을 훨씬 내면적인 방식으로 바꾼다. 두 사람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페넬로페는 그의 말 속에서 돌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한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영웅의 귀환이 아니라 돌아오지 못했던 시간의 이유다. 그는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무엇이 그를 붙잡고 있었는지를 털어놓는다.
그 고백에는 죄책감이 묻어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선택들에 대한 기억이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과도 선명하게 대비된다. 트로이 전쟁은 처음엔 위대함과 승리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그러나 후반부 회상에선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죽어간 병사들, 희생된 사람들, 그리고 모든 기억을 짊어진 채 살아남은 자의 시선. 같은 사건이지만, 기억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이 영화에서 귀환은 집에 도착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기억을 직면하는 순간에 완성된다. 신화를 새로 쓰기보다, 원래 그 안에 있던 인간의 균열을 끝까지 파고든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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