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처음 넘긴 2026년 여름... 한국 여자야구는 '세계 4위' 넘고 프로 무대로 간다
무명의 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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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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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박주아, 곧바로 미국 여자프로야구 리그(WPBL) 소속팀 합류 예정
김라경은 이미 소속팀 합류..."이렇게 행복했던 적 처음"

높은 쪽 보더라인에 꽂힌 직구에 심판의 손이 올라갔다. 루킹 삼진, 경기 종료. 마무리 투수는 다름 아닌, 이번 대회 다섯 경기를 유격수로 지켜온 박주아(22)였다. 박주아가 두 팔을 벌리자 더그아웃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막내이자 대표팀에 처음 승선한 외야수 박민교(16)는 달려와 "언니"를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전광판의 스코어는 9-8. 상대는 '세계랭킹 4위' 멕시코였다.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은 지난 27일(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록포드 리베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여자야구 월드컵' 그룹 스테이지 마지막 경기에서 멕시코를 9-8로 꺾고 대회를 마쳤다. 최종 성적은 2승 3패. 세계랭킹 12위 한국이 여덟 계단 위의 멕시코를 상대로 거둔 사상 첫 승리이기도 했다.
숫자만 보면 절반의 성공이다. 그러나 3년 전을 기억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3년 대표팀은 이번과 똑같은 다섯 팀(미국·캐나다·호주·멕시코·홍콩)을 상대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돌아왔다. 그 팀이 같은 상대들 앞에 다시 서서 홍콩전에서 0-7의 초반 열세를 뒤집는 16-10 대역전승을 거뒀고, 3년 전 첫 맞대결에서 0-10 콜드게임 완패를 안겼던 멕시코마저 막판까지 물고 늘어진 끝에 잡아냈다. 두 번의 승리가 모두 역전승이었다. 2008년 국제무대에 나선 이래 대표팀에 승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랭킹 상위권 팀을 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격차는 여전했지만, 성장한 한국 여자야구
세계와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미국에 2-22, 캐나다에 2-15, 호주에 3-13으로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올해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무대에 나선 박철영(전 kt위즈 코치) 감독은 "현장에서 만난 팀들의 전력을 보니 2승도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며 "세계 정상권 선수들과 비교하면 신체 조건과 근력, 스피드에서 아직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달라진 건 지지 않는 방법이었다. 박주아는 "3년 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수비"라며 "실책 없이 버텨내니 경기 후반에 기회가 왔고, 그때마다 타자들이 집중력 있게 출루를 잘해줬다. 그러니 정말 이길 수 있는 경기가 나왔다"고 돌아봤다.
버티는 힘도 달라졌다. 대표팀은 첫 경기부터 주전들의 부상에 시달렸다. 열아홉 살 외야수 양서진이 이 팀의 여름을 압축한다. 대표팀에서 흔치 않은 왼손 타자, 영리한 플레이로 차세대 에이스감으로 꼽히는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해 대표팀을 중도에 그만두고 입시에 매달렸다. 올해 재수생 신분으로 다시 태극마크를 달 만큼 의욕을 보였지만, 대회 준비 도중 오른쪽 쇄골이 부러졌다. 수술과 재활을 거쳐 두 달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온 그는 "퍼포먼스가 전처럼 나올지 걱정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는데, 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돼 기쁘다. 대표팀의 일원이어서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양서진은 이번 대회 상위 타선에서 벤치가 주문한 작전을 완벽히 수행하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박 감독은 "첫 경기부터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선수가 끝까지 하나로 뭉쳐 최선을 다해준 점이 가장 고맙다"며 "부상 변수가 없었다면 더 좋은 결과도 충분히 가능했다"고 미소 지었다.

마지막 경기, 3년의 변화가 응축된 7회
멕시코전은 그 변화가 응축된 경기였다. 한국은 1회부터 4회까지 매 이닝 실점하며 1-5로 끌려갔다. 3년 전이라면 무너졌을 흐름. 그러나 5회 2점, 6회 2점을 따라붙어 5-5를 만들었고, 여자야구 정규이닝인 7회 마지막 공격에서 승부를 뒤집었다.
볼넷과 몸에 맞는 공으로 만든 1사 1, 2루에서 양서진이 기습번트를 안타로 연결해 만루를 채웠다. 마지막 기회에 타석에 들어선 이는 때마침 이번 대회 타격감이 가장 뜨거운 박주아. 박 감독은 그에게 "(양)서진이가 번트를 댈 테니 주아 네가 해결해보자"라고 미리 일러둔 터였다. 박주아는 초구 직구를 노려 과감히 배트를 돌렸고, 타구는 좌익선상을 타고 날카롭게 빠졌다. 5-5 동점을 단숨에 7-5로 뒤집는 2타점 적시 2루타이자 이날의 결승타였다.
마운드 운용은 박 감독의 승부수였다. 그룹 스테이지 4경기를 연달아 치르며 투수진의 피로가 극에 달한 상황. 박 감독은 "해외 타자들의 파워와 스피드를 고려하면 기존의 느린 구속 투수진만으로는 승부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주장이자 포수인 김현아(26)와 유격수 박주아를 마운드에 올렸다. 강한 어깨를 지닌 두 야수는 감독이 아껴둔 히든카드였던 셈이다. 김현아가 1.2이닝을 무자책으로 막고 넘긴 마운드에서 박주아는 국제대회 첫 등판을 치렀다. 7회말 3점을 내주며 9-8까지 쫓겼지만, 2사 1루에서 상대 타자를 보더라인에 걸치는 직구로 돌려세우고 경기를 제 손으로 매듭지었다. 박주아는 "안타를 맞더라도 1루 주자가 홈까지는 못 들어올 거라 봤다. 피하지 말고 자신 있게 던지자는 생각뿐이었다"고 돌아봤다.
박주아는 이날 역전 결승타를 포함해 3타수 2안타 3타점 3득점 2볼넷을 몰아치고 승리투수까지 됐다. 방망이와 공, 양쪽으로 승리를 완성한 셈이다. 김현아도 5타수 2안타 3타점에 마운드에서 다리를 놓으며 힘을 보탰다. 박주아의 이번 대회 최종 성적은 타율 0.500(14타수 7안타), 장타율 1.000, 출루율 0.632, 대회 타점 2위(10타점). 장타율과 출루율 리더보드에는 미국·호주의 강타자들 사이에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3년 전 이 대회에서 단 1안타, 타율 0.083에 그쳐 고개를 떨궜던 그다.
박주아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여자야구의 새 역사도 썼다. 지난 26일(한국시간) 호주전 3회 2사 1, 2루에서 풀카운트 승부 끝에 좌측 담장을 넘긴 3점 홈런은 한국 여자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담장을 넘긴 대포였다. 대표팀이 국제무대에 나선 2008년 이래 발로 만든 그라운드 홈런은 다섯 차례 있었지만, 타구가 담장을 직접 넘어간 아치는 처음이었다.

대회는 끝났지만, 여자야구의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박 감독은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성과로 "선수들이 세계 여자야구의 수준을 직접 경험한 것"을 꼽으며 "어린 선수 육성 시스템과 학교팀 등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회를 마친 대표팀은 이날 귀국 비행기에 올라 해산하지만, 김현아와 박주아의 여름은 계속된다. 두 사람은 곧바로 올해 출범하는 미국 여자프로야구리그(WPBL·Women's Pro Baseball League)로 향한다.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지명된 포수 김현아는 보스턴 헌터스에, 박주아는 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에 이날 합류할 예정이다. WPBL은 한국 투수 김라경이 소속된 뉴욕 하이츠와 보스턴 헌터스, 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 로스앤젤레스(LA) 퀸스 등 네 팀이 팀당 15경기의 정규시즌을 9월 6일까지 치른 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을 벌인다. WPBL 사무국에 따르면 8월 1일 오후 5시(한국시간 2일 오전 7시) LA와 뉴욕의 개막전 티켓은 이미 완판됐다.

김현아는 "세상에 잘하는 선수가 너무 많다는 걸 또 한번 느꼈다"며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좀 더 불어넣고 개막 리그에 임하고 싶다"고 했다. 박주아는 "월드컵에서 좋았던 이 느낌을 오랫동안 간직하면서 두 달의 리그를 부상 없이 잘 치르겠다"고 말했다. 어깨 부상으로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됐던 투수 김라경(26)은 이들보다 먼저 소속팀에 합류해 팀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고 있다. 김라경은 "야구를 하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처음"이라며 그토록 바라던 프로팀 유니폼을 입은 소감을 전했다. 3년 전 전패의 기억을 지운 팀에서, 김현아와 박주아, 김라경은 이제 수많은 관중 앞에서 세계와 매일 부딪히는 무대로 향한다.

황혜정 객원기자 twinshae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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