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호 “‘항블리’로 복 다 받았다 생각했는데, ‘김부장’ 파급력은 전국적”

[스포츠경향 김원희 기자] 배우 윤경호가 ‘김부장’으로 인한 뜨거운 인기에 대해 전했다.
윤경호는 지난 25일 최고 시청률 23.1%를 기록하며 막을 내린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에서 김부장(소지섭)의 친구인 특수부대 출신 박진철을 연기해 남다른 존재감을 자랑했다.
이에 윤경호는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김부장’ 종영 인터뷰에서, 최근 유튜브 예능으로 인기몰이한 가운데 ‘김부장’을 통해 그 정점을 찍게 된 소감을 솔직히 밝혔다.
그는 “다시 못 올 행복한 순간”이라고 기쁨을 표했다. 이어 “한동안 ‘김부장앓이’를 할 것 같다. 사랑을 많이 받은 만큼 더 많이 생각나고 아쉽고 그리울 것 같다”며 “방송하는 동안 아침마다 제 이름을 검색해서 보곤 했다. 밖에 다니면 해병대 나온 분들이 몇 기냐고 많이 물어보기도 하더라. 저는 해병대를 안 나왔는데.(웃음) 실제로는 1기갑여단에서 장갑차 보병이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앞서 흥행했던 출연작들과 현재 체감 인기를 비교하기도 했다. 2018년 선보인 영화 ‘완벽한 타인’은 관객수 529만 명을 달성했고,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는 시청수 2660만 회를 넘기며 역대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9위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중증외상센터’는 한국대학교병원 외과 과장 겸 대장항문외과 과장 한유림 역의 윤경호에게 ‘항블리’라는 특별한 별명을 안겨줄 만큼, 그의 존재감이 컸던 작품이다.
윤경호는 “‘완벽한 타인’은 제 출세작으로 정말 행운인 작품이었고, ‘중증외상센터’는 설에 맞춰 오픈하면서 진짜 새해 복을 실시간으로 받는 느낌이었다. ‘내 생에 복은 다 왔다’고 했을 정도다. 글로벌하게 이슈가 되고 있구나를 느끼면서, 그때 처음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개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도 ‘김부장’은 ‘어나더레벨’이었다. 그는 “OTT와 지상파 같이 하는 파급력은 전국적이구나 체감했다”며 “제가 전라도 광주로 시구를 다녀왔는데, 거기서도 ‘박진철’ 하고 불러주시더라. 순간 ‘아, 여기서도 보는구나, 그럼 제주도도 보고 있겠지? 부산도? 양양도?’ 생각이 들면서 전율이 돋았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이렇듯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순간들을 피부로 느끼며 만끽하는 중”이라는 윤경호. 그러나 한편으로는 배우로서 이어질 다음 행보를 위해 인기에 취한 마음을 다스리겠다는 깊은 속내를 전하기도 했다.
이어진 축하 연락에 당장 답장을 하기보다 잠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들뜬 마음이 좀 진정되더라.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을 헤어나오기 쉽지 않겠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 저를 다잡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이 기억이 저를 너무 지배하면 다음 스텝이 엉킬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은 모두와 공동작업인데, 다음에 인기를 이만큼 못 받으면 어떡하나 생각하는 게 이미 욕심인 것 같다. 새로운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약간의 추억과 미련 때문에 ‘나 김부장 박진철인데’ 하고 드는 마음을 없애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시즌2가 제작된다고 하면, 한층 더 다양한 매력을 자랑하는 박진철로 돌아오겠다는 욕심을 비쳤다.
그는 “무술감독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 사전 훈련도 많이 하면서 박진철을 만들어갔는데, 예상보다 더 많이 제 액션신을 좋아해 줘서 감사했다. 시즌2를 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피지컬로 준비해서 더 강도 높은 액션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또 김지영 누나가 특별 출연해 준 박진철 아내 강지영 역도 많은 분이 좋아해주셨던 것 같아서, 그 둘의 서사를 보여드리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윤경호는 “배우로서 꿨던 꿈, 이미 그 기대치를 넘어 살고 있는 것 같다”는 행복한 소감과 함께 배우로서 더 다채로운 ‘그릇’이 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예전에 꿨던 꿈 중의 하나가 유명한 배우들이 있는 호프집에 저도 일행으로 들어가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 비슷한 경험을 최근에 실제로 했는데,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지금 이렇게 저를 만나러 인터뷰 와주신다는 것 역시 상상도 못 했죠. 이미 그 꿈의 기대치를 넘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무명 시절, 잘 되고 싶은 마음에 개명을 고민하기도 했어요. 이름을 바꾸는 대신 원래 이름을 뜻이 다른 한자로 바꿨는데, 작명해준 분이 새 이름을 만 번 쓰라더라고요. 그래야 진짜 내가 된다고. 3000번 정도 쓰면 포기하게 돼서 8년 동안 아직 성공을 못 했는데, 요즘은 ‘어떤 모양의 물이든 받아내는 그릇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마다 이름을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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