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서경 : 제가 이걸 너무 설명하기 어려워서 종이를 달라고 했어요.



정서경 : 제가 생각하는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나'가 있고 '세계'가 있죠. 기존의 영화들은 '나'가 '세계'를 원하는 이야기였다면, 멜로는 '나'가 '상대'를 원하는 거예요.



정서경 : 근데 상대도 이런 원이잖아요. 그리고 '나'와 '상대' 사이에 간극이 있잖아요. '상대'도 어리석고,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인 거죠.




정서경 : 그래서 <박쥐>의 '상현(송강호)'과 '태주(김옥빈)'는 목표 자체가 서로가 아니라 더 큰 세계 안에서의 존재 형태이기 때문에, '상현'이 '태주'의 존재 형태를 흡수해서 향하는 이야기인 거죠.







정서경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이 원리로 설명할 수 있어요. '영군(임수정)'은 자신의 세계 안에서 자신은 싸이보그고 밥을 먹으면 안되는데, '일순(정지훈)'은 진실을 알아요. 근데 '영군'을 사랑하잖아요. 자신이 '영군'의 세계에 흡수돼서 "나는 네가 세계에 존재하기만 하면 돼, 살아있기만 하면 돼, 네 말이 맞아"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사랑은 해피엔딩이고 존재 형태는 이게 과연 맞는지 안 맞는지 하는 이야기죠.






정서경 : 근데 <아가씨>의 세계는 이게 다 조화를 이루게 돼요. '숙희(김태리)'의 세계는 도둑의 세계라서 도둑의 법칙으로 '히데코(김민희)'의 재산을 훔칠 생각이에요. '히데코'의 세계는 음란한 책과 소설의 세계로서, 소설 안에서 법칙으로 익힌 게 사랑이라고 알아온 세계고, '숙희'가 나타나서 가지고 놀 생각이에요. 인형 놀이처럼 '숙희'를 자신의 자리에 놓고 도망갈 생각인 거죠.




정서경 : 이 두 세계가 완전히 달랐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원하게 되면서 둘다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는 거죠. 두 사람이 자신의 틀을 깨트리면서 이게 하나의 세계가 된 거고, 그 세계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인 거죠.





정서경 : 그러니까 <아가씨>는 이기는 이야기인 거예요. 누가 서로를 흡수한 게 아니라, 서로가 하나의 커다란 세계로 만들어지면서 조금 더 종합성을 가진 사람들이 되고, 그 세계로 나가면서 해피엔딩이 된 것 같아요.



박찬욱 : 정서경 작가 말이 다 맞고요. 나는 더 간단한 이유로 말할 수 있는데, '히데코'가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불쌍했을 것 같아요.





정서경 : 맞아요. 애초에 우리가 이 작품을 한 다음에 결말이 뭐가 되어야 할까에 정말 망설임이나 고민이 없었어요. 두 사람은 죄가 하나도 없고,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와서 이런 존재가 된 거잖아요. 두 사람이 가진 결함 때문에 망하면 너무 잔인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