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맹(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분들은 생리 첫날에는 직장에 연차를 쓰고 외출 자체를 안 하기도 해요.”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관계자)
전국의 등록 시각장애인 여성은 약 1만명(보건복지부 통계, 지난 4월 기준)에 이르지만, 이들에게 생리는 매달 긴장과 불안 속에 마주해야 하는 장벽이다. 옷에 혈흔이 묻을까 불안한 마음에 생리대를 과도하게 자주 바꾸거나 아예 외출을 삼가기도 한다. 포장지에 점자로 제품 설명을 새긴 생리대가 출시된 적은 있지만, ‘교체 주기’에 주목한 상품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 시각장애인들의 이러한 불안과 불편을 덜어주는 국내 대학생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인정받았다. 1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홍익대·한국영상대·중앙대 등 12명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대학 연합팀’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각)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뉴욕 페스티벌’ 학생 부문에서 ‘속삭이는 날개’(Wings That Whisper) 캠페인 영상으로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학생들은 생리혈이 일정량 이상 스며들면 속옷에 부착하는 생리대 날개 부분에 점자가 돋아나, 촉각으로 교체 시점을 알 수 있게 하는 제품 아이디어를 고안해 캠페인 영상으로 출품했다. 시각장애인 가족이 있는 중앙대 학생 김서령(27)씨가 낸 아이디어가 시작이었다. 김씨는 다른 팀원이 여성 시각장애인의 질염에 관해 발표한 것을 계기로, ‘더 일상적인 생리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고 했다. 이후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시각장애인 여성들이 극심한 불안감으로 인해 비장애인보다 생리대를 훨씬 많이 소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그동안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각장애인 가족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 덕분에 사용자 입장을 한층 더 깊이 고려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자료 조사를 거치며 사회적 논의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실태를 실감 했다. 홍익대 학생 조민국(25)씨는 “시각장애인 여성이면 누구나 겪는 문제일 텐데도 해외에서조차 이에 대해 다룬 조사나 사례가 많이 없었다”고 했다. 학생들은 국내외 자료가 부족하자 튀르키예 대학의 연구 논문까지 찾아내 시각장애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를 확인하며 아이디어의 필요성을 구체화했다.

가상 제품이지만 기술적 실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학생들은 지난 2024년 아주대 대학원생 문석민씨 등이 발표한 ‘하이드로겔 점자를 이용한 촉각 진단 시스템’ 논문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논문은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의 양성 반응 결과를 점자로 표시하는 기술을 다뤘는데, 대학 연합팀은 이를 생리대 날개에 적용했다. 생리혈이 일정량 이상 흡수되면 하이드로겔 기반 특수실을 타고 날개쪽으로 이동해 점자가 나타나는 방식이다. 논문을 지도한 하종현 아주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재료 측면의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기술적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상 소식은 소셜미디어(SNS)와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았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런 불편함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반응과 함께, ‘개인이나 시기에 따라 생리량이 급변하는 만큼 미성년자 등 비장애인 여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서령씨는 “사람들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불편하고 소외된 부분을 돌아보자는 취지로 기획했는데, 반응이 이어져 기뻤다”고 했다.
학생들은 수상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제품 출시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대학 연합팀을 지도한 이준오 선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과거 광고제에서 수상한 아이디어를 광고주가 실제로 실현해보자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직 학생부에서는 사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조민국씨는 “기업들이 제품을 사용하는 모든 여성이 온전한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포용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찬희 기자 ch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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