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논리적으로는 문제 없음. 졌다는것은 상대보다 약한 영역이 있거나 억지력이 부족했으며 계속 당한다 = 구조적으로 약하다는 말임.
그러나 문제는 사실 여부가 아니라, 그 사실을 들은 인간 뇌가 자기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비롯.
왜냐면 인간은 혼자 생존하지 않았고, 부족간 힘의 격차는 우리 뇌가 여전히 기반하는 선사시대 너무 큰 생존 문제였거든.
즉 사람들은 부족이던 국가던 "내가 속한 집단이 약하다" 를 순수 정보로 안 듣고, 자기 모욕 그리고 생존 위험 신호로 들음.
그도 그럴게 선사시대 약한 부족은 종종 식량을 빼앗기고, 가족이 납치당하거나 살해당했거든.
그래서 뇌는 약함을 중립 정보로 처리하지 않고 즉각적 생존 위협으로 처리함. 이렇게:
"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
" 우리 지위는 낮다 "
" 다음에도 또 당할 수 있다 "

[ 쓰나미에 휩쓸리는 서퍼 ]
그래서 안 약한데 당하거나 패배한건 아니지만 날 것 있는 그대로 사실을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현실 인식보다 굴욕, 공포, 분노로 반응.
게다가 위험이 있어도 개인의 통제 가능 범위면 도망을 가던 무장을 하던 뇌는 그나마 대응에 나서지만, 가장 문제는 위험이 있는데 구조적으로 개인이 바꿀수 없는 경우.
일개인이 도망을 가든, 열심히 싸우든, 도움을 외쳐도 자기 집단이 다른 집단에 압도당하는 상황 같은 것.
이러면 공포가 대응을 통해 해소되지 못하도 뇌에서 맴돌거나 증폭되고 그때 생기는 게 냉소, 분노, 무력감 또는 자기혐오 같은 감정들.
왜냐? 뇌의 생존 회로 기준 제일 견디기 힘든 상태라서. 위험은 확실한데, 내가 결과를 바꿀 방법이 없다는거니까.
이건 뇌에게 "뭘하든 소용없다" 는 신호를 줌. 그러면 에너지를 아끼려고 체념하거나, 반대로 통제감을 되찾기 위해 극단적 행동으로 전환.
왜냐면 뇌는 사실 판독 기계라기보다 생존 예측 기계라서, "우리는 약하다"란 단순 정보값을 곧바로 "다음에도 당할 수 있다"는 위험 신호로 번역함.
하지만 인간 뇌가 왜 바로 체념 못 할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음. 언뜻 보기에는 "바꿀 수단이 없다면 결과를 수용하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도 들법 하거든.
궁극적으로는 그게 맞음. 진짜로 바꿀 수단이 0이면 현실을 수용하는 게 에너지 낭비를 줄임.
그런데 뇌는 처음부터 깔끔하게 "소용 없음"을 확정하지 않음. 왜냐면 진화적으로 아무 소용 없다며 너무 빨리 현실을 수용하는 개체가 죽기 쉬웠기 때문.
위험 앞에서 뇌의 디폴트 값은 도주, 은폐, 기만 또는 싸워 승리할 가능성과 보복등의 대응법 마련.
즉 뇌는 "현실 수용" 전에 통제 가능성 스캔을 하며, 이게 생존상 유리했음.
만약 실제로 방법이 없는데도 계속 발버둥치면 에너지 낭비지만, 반대로 방법이 있는데 너무 빨리 체념하면 죽고 보통 후자가 생존 및 번식 확률이 더 낮았음.
그래서 뇌는 진짜로 방법이 없다는 게 확인되기 전까지는, 방법이 있다고 가정하고 찾는쪽으로 설계됨. 문제는 현대 국가 규모가 원시 부족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 한다는 것.
그 결과 " 국력이 약해서 당했다 " 는 설명은 인과적으론 사실이지만, 개인 뇌에는 " 그래서 어쩌란거야? 내가 뭘 해도 못 막고 또 당한단거고 법도 도덕도 없단거냐? " 로 들림.
너무 압도적인 격차 앞에서의 통제감 상실. 이게 인간의 뇌가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다른 설명을 찾는 것.
왜냐면 나와 내 가족이 소속된 국가가 다음에도 당하고 위험에 처할수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란 소리니까.
결국 이성적으로 "약해서 당했다" 고 인정해도, 뇌의 생존 회로는 " 그 약함에 의해 나와 내 가족이 죽을 수 있다 " 고 경보음을 울려서 이는 단순 정보값으로 끝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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