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76세 평론가, 젊은 영화 팬들의 ‘컬트적 아이콘’ 된 이유

“새 영화가 개봉하면 '평식옹' 별점은 무조건 보고 가죠. 영화를 진솔하게 평가한 거 같아 믿을 만하고, 직설적인 단어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대학생 A씨(26)는 극장을 찾기 전 반드시 박평식 영화평론가의 별점과 20자평을 확인한다. 쏟아지는 찬사 일색 평론들 사이 그의 가차 없는 평가가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관람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박 평론가의 짠물 별점은 때로 영화 마케팅의 전면에 나선다. 배급사 찬란은 2024년 6월 개봉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홍보를 위해 “박평식 평론가 10년 만에 나온 9점!”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좀처럼 호평을 내놓지 않는 까다로운 기준이 관객을 극장으로 이끄는 마케팅 포인트로 역이용된 것이다.
1950년생, 만 76세 원로 평론가의 한 줄 평은 이처럼 젊은 관객들의 영화 관람 여부를 결정짓는 지침서로 자리 잡았다. 2020년 영화 전문 매체 씨네21이 10대 관객 6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한민국 10대 관객 리포트’에 따르면, 가장 신뢰하거나 참고하는 영화 전문가 2위가 박평식 평론가였다.
작품 퀄리티가 미달할 때 직설적인 그의 20자평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이다’ 대리 만족을 안겨준다. 영화 ‘나가라’에 “나가라”며 1점을 주고, ‘차라리 죽여’에는 “죽여주마”라는 평과 함께 1점을 매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독립영화에는 “제발 떼쓰거나 강요하지 마. 독립영화”라는 날 선 비판을 남기기도 했다. 작품 소재를 활용한 언어유희도 돋보인다. 영화 ‘포크레인’에는 “호미질 수준”, 마술 범죄를 소재로 한 ‘나우 유 씨미 3’에는 “시건방진 초짜 야바위꾼들”이라며 촌철살인을 날렸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다른 평론가들이 세련된 표현을 활용하는 데 반해, 박 평론가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며 속 시원한 느낌을 주기에 젊은 층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진다”며 “20자평이라는 짧은 틀 안에서 임팩트를 남기는 데 탁월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른 이들에 비해 평점이 짜다 보니 조금만 높은 점수를 줘도 사람들이 열광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통상 평점 5~6점이 평작을 의미하는 것과 달리,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박평식이 6점을 주면 수작, 7점을 주면 명작”이라는 불문율이 통용된다. 무조건적인 호평이 넘쳐나는 시대에 눈치 보지 않고 팩트만 짚어내는 노련한 시선이 젊은 세대의 취향을 관통했다.
외부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 고수’ 같은 행보도 컬트적인 인기에 불을 지폈다.
대중에 알려진 그의 얼굴은 1997년과 2001년 찍힌 증명사진 몇 장이 전부다. 2010년 씨네21과 진행한 인터뷰를 제외하면 대외활동도 전무하다. 여기에 1970년대 천재로 불린 고(故) 하길종 감독의 제자라는 이력과, 20년 넘게 영상물등급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영화를 섭렵한 내공이 더해졌다. 베일에 싸인 정체와 압도적인 관람 편수가 빚어낸 신비주의가 그를 대체 불가한 평론가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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