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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은 멜로 아니면...” 영화계 편견 깨고 장르영화 개척한 여성 감독들

무명의 더쿠 | 19:10 | 조회 수 564

명작 멜로 영화로 오래 사랑받은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이정향)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왜 이렇게 말(대사)이 많냐. 여자 감독은 역시 이상하다”는 말을 들었다. 여성 스포츠 영화의 지평을 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임순례)은 “아줌마들이 주인공인 스포츠물을 임순례가 한다고? 차라리 장르 영화를 잘 만드는 남자 감독이 연출하면 어떻겠냐”는 제작사·투자사 내부 반대를 뚫고 만들어졌다.

 

남성 중심적인 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은 편견 어린 시선 속에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올해 30회를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1997년부터 2026년까지 개봉한 영화 중 엄선한 ‘한국 장르영화 33’에 여성 감독 연출작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단 한 편뿐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포스터. 시네마서비스, 싸이더스 제공

 

중략

 

“(10여 년 전만 해도) ‘여자 감독은 멜로 아니면 데뷔하기 힘들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현실적인 연애와 이별을 그려 호평을 받은 <연애의 온도>로 장편 데뷔한 노덕 감독이 지난 5일 경기 부천 CGV 소풍에서 열린 ‘여성에게 장르를 허하라’ 포럼에서 말했다.

 

노 감독이 또 자주 들었던 건 “여자 이름 같지 않아 덕을 볼 것”이라는 말이었다. <연애의 온도>가 공개되고 나서는 “경험담이냐”는 질문에 힘이 빠지기도 했다. 그는 “에피소드를 구하려 ‘이별 후 복수 카페’를 들어가는 등 나름대로 취재하고 노력했는데, 영화적 성취로 평가받지 못하고 개인적인 서사를 영화로 만들었을 거라는 추측을 받곤 했다”고 말했다. 여성 감독의 역량을 한정 짓는 사회적 시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도시의 사랑법>(2024), <미씽: 사라진 여자>를 연출한 이언희 감독도 “장르를 보는 시선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선배 감독으로부터 ‘너처럼 가볍고 말랑하게 만들면 쉽게 작품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런 평가를 들으면, 다음 작품을 편하게 선택하지 못하게 되더라”고 했다.

 

여성영화인모임이 선정한 11편 중 호러·스릴러 장르는 5편, 로맨틱 코미디는 3편이다.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장르에 편중된 것이 여태까지의 흐름이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앞으로는 더 다양하고 규모 있는 여성 감독의 연출작 및 여성 서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김선아 여성영화인모임 이사장은 “세계적으로는 그레타 거윅의 <바비>(2023), 코랄리 파르쟈의 <서브스턴스>(2024), 쥘리아 뒤크르노의 <티탄>(2021) 등 규모 있는 영화에서도 여성 감독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고 했다.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여성영화인모임이 선정한 ‘한국 여성 감독 장르영화 11편’ 리스트. 여성영화인모임 제공

 

한국에서도 <파일럿>(471만명)의 김한결 감독, <만약에 우리>(260만명)의 김도영 감독, <시민 덕희>(171만명)의 박영주 감독, <그녀가 죽었다>(123만명)의 김세휘 감독 등이 최근 상업 영화로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독립영화인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2025)도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영화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여성이 만든 장르영화는 분명 다른 시선을 갖는다. 장르 영화가 점점 천편일률적으로 되어가는 시대에 오히려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이어 심 대표는 “데이터가 쌓일수록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누적 관객 수 10만이건, 30만이건, 100만이건 관계없이 여성 감독들이 성공 사례를 계속 만들어 나가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객석을 찾은 임순례 감독도 “새로운 것을 소비하고자 하는 요즘 관객들을 고려했을 때, 여성 감독이 그렇게 불리하지만은 않겠다는 희망이 생긴다”고 긍정했다. 다만 그는 “독립영화 감독이나 영화 전공 학생 중 여성이 많지만 이들이 이후 경력을 쌓을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라며 “산업으로의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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