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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씽' 흥행 실패와 바이럴의 종말

무명의 더쿠 | 11:57 | 조회 수 71186

나는 정말 '와일드 씽'이 잘될 줄 알았다. 강동원, 엄태구와 박지현이 1990년대 혼성 그룹으로 분한 뮤직비디오를 보자마자 확신했다. 이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이럴 마케팅 성공 덕분이다. 기막힌 콘셉트였다.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지만 실수 한 번으로 하루아침에 해체된 3인조 혼성 그룹이 재기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미 이런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슈가맨'이다.


아마도 '슈가맨'이 만든 최고의 스타는 양준일일 것이다. 그는 오로지 바이럴로 다시 인기를 얻은 가수다. 유튜브 옛 영상이 ‘탑골 GD’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은 뒤, 양준일은 '슈가맨'에 출연했다. '슈가맨'은 오래전 명성을 얻은 뒤 잊힌 가수들을 다시 소환하는 프로그램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양준일이 인기 있던 시절에도 그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노래방에서 히트곡인 '레베카'와 '가나다라마바사'를 부른 적은 있다. 양준일 음악은 이를테면 90년대 미국 뉴잭스윙 장르의 아주 노골적인 카피였다. 90년대 가요계는 참 카피가 많았다.


카피 이야기를 하려고 양준일을 소환한 건 아니다. 그는 '슈가맨' 방송 직후 다시 스타가 됐다. 팬 미팅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광고와 예능 출연이 줄을 이었다. 짧은 인기를 누리고 흘러간 가수가 미국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다는 스토리까지 더해지자, 양준일은 일종의 신드롬이 됐다. 이후의 이야기도 아름다웠더라면 참 좋았을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숏폼 중독이라 여전히 양준일 쇼츠가 타임라인에 뜬다. 요즘 그는 소규모 공연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원래 히트곡이 별로 없고 음악적 완결성도 없던 가수다. 유튜브 바이럴과 '슈가맨' 출연은 그를 잠깐의 '바이럴 스타'로 만든 뒤 다시 추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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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준일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 법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지난 몇 년간 90년대는 대중문화 중심으로 귀환했다. 요즘은 홍대에 가면 내가 대학 시절을 보낸 90년대가 다시 눈앞에서 펼쳐진다. 90년대 패션이 돌아왔다. 폴로 셔츠에 헐렁한 배기바지를 입고 오클리 선글라스를 쓰고 키링을 주렁주렁 단 20대 패션은 내가 대학 시절 입던 스타일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음악도 그렇다. 요즘 아이돌들은 새로운 사운드를 찾으려 애쓰다가 슬그머니 90년대 사운드를 흉내 내곤 한다. 지난해 코요태 신곡 '콜 미'가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쓰는 걸 보고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슬픈 내게로 다가와 다시 90년대 뽕끼 댄스곡을 들려주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와일드 씽'의 마케팅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90년대를 소환하는 바이럴이다. 모든 것이 바이럴이 된 시대다. 영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무조건 바이럴을 잡아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바이럴은 갑자기 영화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틱톡, 릴스, 유튜브 숏폼이라는 것이 발명되자 홍보 마케팅의 오랜 원칙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은 영화사들의 이름 모를 영화들이 숏폼을 활용한 바이럴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두는 동안, 대가들의 전통적인 블록버스터들은 판돈을 크게 잃었다. 당연히 팬데믹이 큰 영향을 미쳤다. 배우들이 직접 예능이나 인터뷰에 나와 홍보를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자 그 자리를 숏폼이 장악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배우들이 나오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영화들이 바이럴을 통해 입소문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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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시대는 끝나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와일드 씽'의 바이럴 마케팅은 전례 없는 성공이었다. 강동원이 90년대 아이돌로 분장하고 찍은 뮤직비디오는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주제곡 '러브 이즈'는 실제 음원 사이트 상위권에 올랐다. 조연인 오정세도 전성기 조성모를 패러디한 듯한 '니가 좋아'로 숏폼의 세계를 쓸었다. 흥미롭게도 '와일드 씽'의 성공적인 바이럴은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종 관객 수는 125만 명 남짓이다. 손익분기점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독자 여러분 중에서는 "결국 영화가 재미가 없으니까"라고 결론 내리는 분도 계실 것이다. 맞다. 문제는 결국 콘텐츠다.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있다. 지난 몇 년간 바이럴 성공은 곧 영화의 성공을 의미했다. 오로지 숏폼 바이럴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들을 한 번 떠올려보시라. 다시 보아낼 자신이 없는 영화가 한두 편이 아니다. '와일드 씽'은 관람객 평가 지수도 나쁜 편은 아니다. 문제는 어쩌면 바이럴 마케팅의 지나친 성공일지도 모른다. '와일드 씽'은 바이럴에 모든 것을 쏟았다. 배우들은 예능이나 인터뷰에 거의 등장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바이럴, 바이럴, 바이럴이었다. 수백만 조회수 숏폼이 이어졌다. 숏폼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은 극장에 가질 않았다. 바이럴 숏폼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내 세대 관객에게 숏폼은 미끼였다. 새로운 세대 관객에게 숏폼은 그냥 숏폼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다. 오정세의 뮤직비디오는 그냥 오정세의 웃기는 바이럴 비디오다. 영화와 숏폼의 경계는 사라졌다. 유튜브에서 10분짜리 '결말 포함 영화 리뷰'를 보고 다시 본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은 없다. 둘은 그냥 각각 하나의 콘텐츠다. 바이럴 마케팅을 탄 입소문이 흥행을 만드는 시대도 어쩌면 끝나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관객들은 이제 바이럴 마케팅을 위한 숏폼을 숏폼 자체로 즐길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를 두 시간짜리 영화와 똑같은 하나의 콘텐츠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인스타그램 릴스 광고를 보고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샀다. 더는 사지 않는다. 그렇게 산 물건들은 거의 쓰지도 않고 잊혔다. 이젠 "샤갈!"이라 외치는 숏폼 광고를 보는 순간 그냥 스크롤을 넘긴다. 양준일도 다시 스타가 될 수는 없었다. 그의 새로운 인기는 바이럴의 세계 속에서 잊혔다. '와일드 씽'은 바이럴의 압도적인 성공과 흥행이 점점 연결고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그래서 다음은 대체 뭔가를 고민하며 "샤갈!"이라 외치고 있을 홍보 마케팅사 직원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9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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