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호암 이병철 회장의 첫 ‘공수래공수거’ 글씨 경매 나왔다
샘터, 소장품 등 60점 경매 출품

호암 이병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종이에 먹, 32.5×134.5cm. 1981. /샘터
호암 이병철(1910~1987) 삼성그룹 창업주가 1981년 ‘샘터’ 창립자인 김재순(1923~2016) 전 국회의장에게 써준 서예 작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뜻)’가 경매에 나왔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즐겨 썼던 ‘공수래공수거’ 붓글씨의 1호이자 계기가 된 작품이라 눈길을 끈다.
국내 최장수 교양 잡지 월간 ‘샘터’의 소장 컬렉션과 표지화 등 60여 점이 21일 마감하는 케이옥션 온라인 경매에 출품됐다. 이번 경매의 대표 출품작이 호암의 ‘공수래공수거’다. ‘샘터’는 올해 1월호(통권 671호)를 끝으로 창간 56년 만에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 상태. 김성구 샘터 발행인은 5일 본지 인터뷰에서 “오직 샘터를 살려야겠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모든 것을 내놓는다”며 부친이 생전 아꼈던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는 심경을 밝혔다.
호암의 ‘공수래공수거’는 샘터 이사장실 한가운데 걸려 있던 작품으로, 샘터의 역사와 철학을 품은 상징적 소장품이다. 김 발행인은 “샘터 창립자인 부친과 호암은 오랜 인연이 있는 사이”라며 글씨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샘터 창간 10주년인 1980년 부친이 이병철 회장의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서예 거장 일중 김충현 선생의 글씨 ‘공수래공수거’가 걸려 있는 것을 봤다. 부친은 ‘대한민국에서 이 글씨를 쓸 만한 사람은 회장님밖에 없다. 최고 부자가 ‘공수래공수거’를 말해야 설득력이 있는 것 아니겠냐’며 글씨를 요청했고, 호암은 1년 동안 글씨를 연습해 마음에 드는 글씨를 완성하자 글씨와 함께 먹과 벼루를 샘터에 보내왔다”는 것이다.
가로 134.5㎝, 세로 32.5㎝. 글씨는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공수래공수거’ 옆에 ‘辛酉春爲 샘터 社長 金在淳雅兄 湖巖(신유춘위 샘터 사장 김재순아형 호암)’이라 쓰고 낙관 두 점을 선명하게 찍었다. 신유년(1981년) 봄에 샘터 사장 김재순 아형(친구의 높임말)에게 호암이 써서 보낸다는 뜻이다. 김 발행인은 “호암은 이후 ‘공수래공수거’를 즐겨 썼고 재계 인사나 주변 인물에게 선물을 많이 했다”며 “이 글귀를 쓰게 된 계기가 바로 부친의 권유였고, 1호가 된 작품”이라고 했다.
호암은 집무실에 늘 지필묵을 갖춰 놓고 하루 일과를 서예 작업으로 시작할 만큼 붓글씨를 즐겼다. 그를 지도한 서예가 송천 정하건은 “호암의 글씨는 오랜 수련을 통해 다져진 담백하고 기품 있는 글씨”라고 평했다. 호암은 자서전에서 “무심히 그은 일 획, 일 점의 운필(運筆)이 마음에 들 때의 희열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다”며 서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특히 ‘공수래공수거’라는 글귀를 좋아해, 이 글귀를 쓴 170점 이상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도 호암이 쓴 ‘공수래공수거’가 걸려 있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도 자신의 집무실에 부친이 쓴 글씨를 걸어 놓고 늘 가까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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