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지역 감정'이 아니라 '전라도 혐오증'이라는 정신병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유시민의 글.txt
1,951 21
2026.07.03 17:23
1,951 21

우리나라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지역감정'이 아니라 다른지역 사람들이 모두 전라도 사람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수준을 넘어서 일종의 '편집증' 단계에 이른 '질병'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지역 감정' 이라는 말 대신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단어를 써야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겪은 대로 말하자면 사람들의 전라도 혐오감은 '전라도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형성된다. 주로 서울에 살거나 살다온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듣는 좋지 못한 이야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무개 집주인이 전세금을 띠묵었는데 전라도 사람이라 카더만' 이라든가, '아무개네 가게 경리직원이 돈을 빼돌리다가 들켰는데 전라도 어디 여자라 카더라'는 식의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화재로 오르면, 사실 여부나 그런 못된 짓을 한 '바로 그 사람'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만 부각된다.

 

 

 

'전라도 혐오증' 의 원인은 딱 하나, 전라도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돈 없고 '빽' 없고 배운 것 없이 객지에 가서 그 사회의 맨 밑바닥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특정 지역 출신이든 특정한 인종 집단이든 멸시를 받게 되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우리나라 텔레비전 연속극에서는 목욕탕 때밀이,작부,깡패,도둑놈,식모,사기꾼,노가다,노점상 등은 거의 예외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프로듀서가 전라도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실제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대학 신입생이던 1978년 여름부터 나는 구로공단 노동 야학에서 선생노릇을 했는데, '호남선 완행열차를 용산역에서 내려서, 길을 건너지 않고 버스를 타면 구로공단 행이요, 길을 건너서 타면 청량리 588' 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그맘때였다. 야학 학생이 약 40명 쯤 되었는데 거의 다 섬유,봉제,전자 공장에 다니는 열일곱에서 스물 사이의 내 또래 전라도 처녀들이었다.

 

 

학생들의 신상자료에는 월 평균 급여액이 나와 있었는데 매주 60시간 정도 일한 대가가 2만5천원 정도였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 식비로 내는 돈이 월 2만1천원, 신림9동 골목의 2인 1실 하숙비가 월 3만 5천원 이었고, 나는 고2짜리 남자아이에게 매주 여섯시간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일로 월 6만원을 버는 참이었다.

 

 

서울에 사는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출신도 마찬가지이지만) 보는 전라도 사람들은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행색이 초라하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가지고 악착같이 다투고, 대낮에도 술먹고 다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향에 가서 '그런 전라도 사람' 들에 대한 험담을 주저없이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에 뿌리박고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자기네가 본 전라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가난한지를 따져보지도 않는다.

 

 

나는 전라도 사람들의 '상대적 빈곤'이 박정희 시대에 진행된 지역적 불균등 발전의 결과라고 본다. 알다시피 8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공장이라는 공장은 거의 모두 수도권과 경남북에 몰려 있었다. 따라서 경기도와 경남북의 시골 사람들은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 수가 없는 경우에도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가까운 지역 공장에서 일하다가 유사사에는 언제든 고향집에 갈 수 있었고, 서울까지 가는 것은 확실한 일자리가 있는 경우뿐이었다.

 

 

 

'서울의 전라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전라도의 지세' 도 아니고 '전라도 사람의 타고난 근성'도 아닌 박정희 정권의 과격한 농촌 해체 정책과 경상도 위주의 불균등한 산업유치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라도 혐오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특히 경상도 사람에게는 치료하기가 매우 어려운 정신적인 '질병'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물론 다 그런것은 절대로 아니다) 자기네가 30년 동안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자랑하면서도, 그 대통령들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본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해 하기는 커녕 그들을 싫어하고 업신여긴다.

 

 

 

 

장기간에 걸쳐 반복해서, 주위의 충고와 권유를 무시하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보통 '저 사람 제정신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지역사람이라면 모를까, 경상도 사람이 스스로 '전라도 혐오증' 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으면서, 또 그것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기까지 한다면, 이것을 '정신병' 말고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전라도에도 요즘에는 공단이 생기고 있다. 중국경제가 번창하고 서해안 고속도로가 다 뚤리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전라도 혐오증'이 치유될 수 없다. 달동네에 몰려 사는 '서울 전라도 사람들'이 호화 빌라와 고급 아파트에 사는 '서울 경상도 사람들' 만큼 잘 살게 되어야 비로서 이 질병의 '발병 원인'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의 본질을 덮어둔 채 막연히 '우리 모두 지역감정을 청산합시다!'하고 외치는 분들께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주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런 개탄 보다는 속마음을 열고 소근소근 조용하고 끈기있게 토론하고, 팔도의 시민들이 저마다 다른 지역을 오가면서 그 곳의 실정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특히 전라도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호교류를 지원하는 것이 당장 효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문제 해결에 차근차근 다가서는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이 '집단적 정신병' 을 그 자체로서는 별로 해롭지 않은 '지역 감정' 수준으로 완화하는 데만도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유시민

댓글 2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라네즈X더쿠🩶여름에도 매끈보송한 피부 완성! 네오 쿠션 더 매트 체험단 모집(50인) 500 07.01 64,184
공지 이미지 서버 작업 관련 안내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경우) 07.01 27,352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668,877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098,031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566,049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343,839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73,651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0 21.08.23 8,637,226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5 20.09.29 7,540,192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36 20.05.17 8,757,76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3 20.04.30 8,645,231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650,250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08002 이슈 이번에 워너원이 모인 것도 궁극적으로는 앨범도 또 한 번 내고 콘서트도 하고 싶어서 시작한거라고.. 20:42 34
3108001 유머 리센느 원이의 이상형 2 20:39 656
3108000 이슈 [KBO] 위기 탈출하며 7이닝 111구 5K 무실점 QS+ 기록하는 오웬 화이트 6 20:37 298
3107999 기사/뉴스 환율 30원 급락 뒤엔 하이닉스 선물환 매도…당국도 출회 가능성 인정 20:37 369
3107998 기사/뉴스 "아이돌 외모 기대했는데, 2억짜리가 왜 이래" 불만 폭주에 결국 할인쿠폰까지 6 20:36 1,280
3107997 정치 이언주 의원 악의적인 합성사진 올린 범인 정체.gisa(예전 기사) 4 20:36 549
3107996 이슈 @@: 허접들여기까지오느라수고했고 늙크크스킬보여줄게 4 20:35 430
3107995 기사/뉴스 장윤기 수사 경찰, '리얼돌 DNA 보고서' 검찰에 안 보내 6 20:35 224
3107994 유머 부산시민 : 필릭스다 미친 16 20:33 1,418
3107993 이슈 수십년간 일방적으로 괴롭힘 당한 광주 사람들도 어린 학생이었는데 그 긴 세월동안 지켜주자고 한번로 나서지 않았던 인간들이 어쩜 가해자의 편만은 그렇게 쉽게 드는지 22 20:32 522
3107992 이슈 Ne-Yo: "So Sick" (Live from Apple Music Studios) 5 20:32 137
3107991 이슈 10주년 활동끝난 아이오아이 연기멤버들 차기작 4 20:26 1,395
3107990 기사/뉴스 "곧 봐요" 교도소서도 편지 스토킹…검찰 "항소심에 혐의 추가" 20:26 270
3107989 기사/뉴스 CJ CGV, 4DX 앞세워 투자 유치 나서…국민성장펀드도 투자 검토 9 20:22 432
3107988 이슈 (새주의) 새들은 왜 먹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은 거야??? 30 20:20 1,903
3107987 이슈 거제↗가면↘밥은↗줍니까? 밥도 주고 바다도 보여주는 리센느 원이픽🎯거제 코스 Ep.01 3 20:18 420
3107986 유머 도시가스 직원분이 방문하셨고 우리 고양이 ㄴㅇㄱ 됨 10 20:16 3,752
3107985 유머 오늘 뮤뱅에서 또 개큰무리한 MC 김재원ㅋㅋㅋㅋㅋㅋㅋ 30 20:16 3,495
3107984 유머 황민현이 아침에 일어나서 공복에 마시고 자기전에도 마시는것은? 7 20:15 1,885
3107983 기사/뉴스 메가박스 합병 무산된 롯데시네마, 지분매각 등 독자 생존 모색 2 20:15 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