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현의 자유는 원래 그런 방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가, 말이 나오기 전에 입을 틀어막지 못하게 하는 원칙이다.(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2항) 헌법이 사전 검열을 금지하는 이유이고, 붙잡혀 간 시인과 폐간당한 신문이 되찾으려 한 것이다. 핵심은 '사전'에 있다. 말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막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억압이다.
배재고 학생들의 입을 막은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자유롭게 외쳤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앞에서, 아무 사전 제지 없이. 표현의 자유는 완벽하게 작동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 자유의 침해가 아니라, 그 자유가 부른 결과다. 광주일고가 항의했고, 교육청이 조사했고, 협회가 징계했다. 자유롭게 외친 표현에 대한 응답이다.
그런데 홍석준의 어법에서는 이 응답이 억압으로 둔갑한다. 바로 여기서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껍데기만 남는다. 억압으로부터의 자유가, 결과로부터의 면제로 슬그머니 바뀐다. 말할 자유가, 말하고도 아무 일 없을 권리로 미끄러진다. 이 미끄러짐은 누구 한 사람의 잔꾀가 아니다. 장동혁은 커피 선택에 간섭하는 것을 '공산당'이라 불렀고, 홍석준은 조롱을 경계하는 것을 '공산주의'라 불렀다. 규제도 책임도 공산주의로 몰아가는 하나의 어법이, 반복되며 자리를 잡는다.
말이 이렇게 비어버리면, 함께 사라지는 것이 있다. 말의 무게다. 결과가 따르지 않는 말은 자유로운 말이 아니라 가벼운 말이다. 표현의 자유가 소중한 건 말이 힘을 갖기 때문이고, 말이 힘을 갖는다는 건 그 말이 누군가에게 가서 닿는다는 뜻이다. "스타벅스 가야지"는 광주에 닿았다. 닿은 무게만큼 책임이 따르고,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그 자유는 비로소 진짜 자유다. 책임을 지우면 자유도 함께 지워진다. 남는 것은 아무 데도 닿지 않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소음뿐이다.
하나 더 사라진다. 진짜로 입이 막힌 사람들을 지킬 힘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본래 억눌린 자의 편에 서라고 있다. 그 말이 조롱하는 자를 감싸는 데 거듭 쓰이면, 말의 신뢰가 바닥난다. 그래서 정작 사전에 입이 막힌 사람이 "이건 표현의 자유다"라고 외칠 때, 그 외침마저 또 하나의 방패처럼 들린다. 정작 지켜야 할 사람 앞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
7월 1일, 배재고 야구부는 6개월 출전 정지 중징계를 받았다. 다음 날 경기는 몰수패로 처리됐고, 봉황대기를 비롯한 남은 대회도 뛸 수 없게 됐다. 사실상 시즌이 끝났다. 무겁다. 홍석준의 눈에는 이것이 억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학생들의 입을 막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로웠고, 그 자유를 끝까지 행사했다. 지금 그들에게 도착한 것은 빼앗긴 자유가 아니라, 자유가 처음부터 지니고 있던 무게다. 자유란, 이만큼 무거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