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금리 차이와 글로벌 강달러 돌풍 속에서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 가치가 마치 쌍둥이처럼 나란히 추락하고 있다. 특히 역대급 ‘슈퍼 엔저’에 발목 잡힌 원화는 연일 연고점을 경신하며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원화 약세의 가장 큰 외부 요인은 일본 엔화의 기록적인 폭락이다. 같은 시각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장중 162엔을 넘어서며 1986년 이후 약 40년 만에 최저치(엔화 가치 하락)를 기록했다.
한국과 일본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 경쟁국이자,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 아시아 신흥국·준선진국 포트폴리오로 묶이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화 가치도 함께 하락하는 ‘동조화(Coupling) 현상’이 뚜렷해진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현재 엔화와 원화의 환율 상관계수는 0.95에 달할 정도로 두 통화가 사실상 같이 움직이고 있다”며 “미국 달러의 독주 속에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이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원화 역시 방어선이 무너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환율 불안이 단순한 일시적 충격이 아닌 구조적 변화, 즉 ‘고환율 뉴노멀(New Normal)’의 서막일 수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독주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미국 본토에 집중되면서 글로벌 자본이 미국 기술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6.37 선을 기록하며 견고한 하방경직성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도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최근 3개월 간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규모는 약 75조원에 달한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역외 자본을 중심으로 한 달러 매수세가 워낙 강하게 유입되다 보니 외환당국의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 물량이 나와도 상단이 쉽게 꺾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여기에 국내 서학개미들의 해외 주식 투자 열풍과 수입업체의 결제 수요까지 겹치면서 하방 경직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엄 패스파인더 단장은 “과거 아베노믹스 이전 100엔당 1600원대였던 원·엔 환율이 현재 940원 안팎까지 떨어진 상태”라며 “일본의 관세 및 환율 경쟁력에 밀리지 않기 위해 원화도 엔화를 따라 약세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착수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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