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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시스템의 설계자들이 강사에게만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시공간의 본질은 ‘돌봄’이면서, 강사에게 요구하는 책임과 평가는 ‘교육’의 잣대를 들이댄다. 가시적인 결과물이 도출되지 않으면 수업의 유효성 자체가 부정당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해야 하고, 그것은 시각적으로 그럴듯해야 하며, 매번 참신해야 한다.

무명의 더쿠 | 15:21 | 조회 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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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초등 저학년 대상의 맞춤형 미술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이 끝나면 교실을 청소한다. 책상 밖으로 넘어간 색연필과 물감의 흔적을 닦아내고, 바닥에 떨어진 풀과 가위, 색종이 조각을 줍는다. 아이들이 쓰다 남은 재료들을 색깔별로 분류하고 정리한다. 공간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놓고 나서야 그날의 노동이 끝난다. 문을 나서며 드는 생각은 매번 비슷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수행하고 있는 걸까.’

작년부터 초등 저학년 대상의 돌봄 교실과 맞춤형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돌봄 강사’라는 직함은 지독히 직관적이다. 말 그대로 아이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 즉 가정이 공백인 시간 동안 아이들을 보호하고 예속하는 일이다. 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개인 작업을 병행하는 동안, 여러 회의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결과적으로 돌봄으로 귀결되지만, 그 구조적 자리에 ‘수업’과 ‘교육’이라는 거창한 명목이 얹힐 때, 그 내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모순적인 순간들을 마주한다.

학교라는 공교육 시스템에 강사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잘 짜인 수업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상의 연령별 발달 단계와 인지 능력을 고려해 1년치 차시별 커리큘럼을 설계해야 하고, 매 수업마다 명확한 교육 목표를 도출해야 한다. 현장에 투입되면 결과물을 아카이빙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학부모 참관 하에 공개수업을 진행하며 교육 서비스 공급자로서의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제도적 요구 사항들은 완벽히 ‘교육’의 프레임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교실이라는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은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수업 중간에 학생이 하나둘 이탈한다. 사설 학원 스케줄에 맞춰 가방을 챙기는 아이, 콘텐츠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거부하는 아이, 또래와 장난을 치느라 도화지를 방치하는 아이. 이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연속성 있는 ‘수업의 흐름’이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은 아동 개인이 비난받아야 할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이 공간과 시간의 본질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규 교육과정이 끝난 뒤, 보호자가 올 때까지 빈 시간. 그 빈 공간을 임시로 채우기 위해 미술 강사라는 흥미로운 매개자가 존재할 뿐이다. 학습자의 문제도, 학부모나 학교의 문제도 아니다. 이 자리 자체가 처음부터 그렇게 ‘돌봄의 외주화’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시스템의 설계자들이 강사에게만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시공간의 본질은 ‘돌봄’이면서, 강사에게 요구하는 책임과 평가는 ‘교육’의 잣대를 들이댄다. 가시적인 결과물이 도출되지 않으면 수업의 유효성 자체가 부정당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해야 하고, 그것은 시각적으로 그럴듯해야 하며, 매번 참신해야 한다. 이전 수업의 경험을 축적하여 내면화하는 ‘성장 중심 교육’은 이 단절된 구조 안에서 작동하지 못한다. 결국 강사는 매주, 매달 가시적인 성과(결과물)를 급조해 내는 단기 생산자로 전락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착취적인 결과물들은 다시 나의 포트폴리오가 되어 내년 면접장의 평가지표가 된다. 생존을 위해 시스템의 모순을 자발적으로 내면화해야 하는 굴레에 갇힌 것이다.

(중략)

 

그럼에도 이 모순적인 노동을 중단하지 못하는 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아동들이 가끔 제도적 설계를 벗어나는 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기획된 커리큘럼이 완전히 무너진 날, 무력감에 잠겨 있던 아이가 갑자기 도화지 한가득 자신의 내면세계를 폭발적으로 쏟아낼 때가 있다. 그 해방의 순간은 정형화된 교육 목표와 무관하게 찾아온다. 


https://www.munwh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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