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단독] 수원 ‘파란대문 장미’ 집주인 노부부 눈물… “23년의 시간 잘려나가”
4,089 24
2026.06.30 10:06
4,089 24

수원의 장미 꽃 명소인 남수동 ‘파란 대문집’ 주인 정모(70대)씨가 빨간 끈으로 표시된 절단 지점을 손으로 살며시 짚어보고 있다. 잘려나간 가지 자리마다 붉은 끈이 매달려 있었다. 2026.6.2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수원의 장미 꽃 명소인 남수동 ‘파란 대문집’ 주인 정모(70대)씨가 빨간 끈으로 표시된 절단 지점을 손으로 살며시 짚어보고 있다. 잘려나간 가지 자리마다 붉은 끈이 매달려 있었다. 2026.6.2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그날 대문 밖에 나가 텅 빈 장미 덩굴을 보고 울었어요. 내 팔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어요. 꽃 몇 송이가 아니라, 23년의 시간이 잘린 거예요.”

29일 오전 11시30분께 찾은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의 ‘파란 대문집’. 집주인 홍모(70대)씨는 잘려나간 덩굴을 가리키다 말을 멈췄다.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홍씨와 남편 정모(70대)씨 부부가 이 장미를 키운 시간은 자그마치 23년. 누군가에게는 사진 한 장의 배경이었지만, 부부에게는 매일 아침 죽은 꽃을 털어내고 가지를 다듬으며 자식처럼 돌봐온 존재였다

이 집은 SNS에서 ‘남수동 파란대문 장미’로 불리며 명소가 된 곳이다. 매년 5월이면 전국 각지에서 사진을 찍으러 온 시민들이 몰렸고, 외국인 관광객과 인근 아주대·경기대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최근 이곳은 절도 사건 현장이 됐다. 지난 24일 자정께 이 주택 담벼락에 심어진 장미꽃과 가지가 잘려나갔다. 수원팔달경찰서는 60대 남녀 2명을 절도 혐의로 특정해 이번 주 내 출석을 통보한 한편, 현재 범행 동기와 정확한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다.

파란 대문 앞 장미덩굴에는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한때는 대문 앞에 선 사람이 장미 가지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 덩굴이 풍성하게 내려왔지만, 잘려나간 자리에는 구멍이 뚫린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빨간 끈으로 표시된 절단 지점은 어림잡아 10곳이 넘었다.

절도 사건과 별개로 이 집은 또 다른 갈림길에 서 있다. 주택 일대가 수원화성 문화재보호구역 정비사업 대상에 포함돼 향후 철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발걸음이 이어지고 수원의 명소로 자리잡았지만, 행정 서류 위에서 ‘남수동 파란 대문 장미’는 철거해야 할 지장물이다.

■우연히 명소가 된 집 앞… “예쁘게 찍고 가세요”

홍씨가 처음부터 이곳을 명소로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분홍색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색의 장미를 사다 심었고, 녹색이던 대문이 마음에 들지 않아 흰 페인트를 섞어 칠하다 지금의 파란빛이 나왔다. 우연히 겹친 분홍 장미와 파란 대문은 어느 순간 사람들의 사진 속 배경이 됐다.

이들 부부와 아들, 며느리는 아침마다 가지를 정리했다. 진 꽃을 털어내고 죽은 부분을 잘라냈다. 홍씨는 “아침마다 나와서 꽃이 지면 다 털어줘야 이렇게 깨끗하게 유지된다. 그냥 두면 장미가 풍성하게 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집 앞이 명소가 되면서 불편함도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대문 앞을 오래 차지하면서 집을 드나들기 조심스러워졌고, 인사 한마디 없이 대문 안쪽을 들여다보듯 가까이 다가서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홍씨는 “예쁘게 찍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SNS 계정을 운영하며 장미 개화 소식을 전하고, 방문객들에게 사진이 잘 나오는 방향과 촬영 시 주의할 점도 안내했다. 개인 주택 앞 풍경이었지만 부부는 찾아오는 이들을 막지 않았다. 홍씨는 “돈을 받으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며 “사람들이 장미를 예뻐해주고 수원에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가는 게 그저 고마웠다”고 이야기했다.

파란대문집 인스타그램 계정에 피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남긴 댓글. “장미가 사라지는 게 너무 아까워서 꽃도 다 졌고 가지치기도 필요한 상태라 밤중에 가지를 잘라 삽목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오른쪽 사진은 절도 피해 이후 빨간 끈으로 잘린 지점을 표시해둔 장미 덩굴의 모습이다. /SNS 캡처

파란대문집 인스타그램 계정에 피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남긴 댓글. “장미가 사라지는 게 너무 아까워서 꽃도 다 졌고 가지치기도 필요한 상태라 밤중에 가지를 잘라 삽목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오른쪽 사진은 절도 피해 이후 빨간 끈으로 잘린 지점을 표시해둔 장미 덩굴의 모습이다. /SNS 캡처


■말 한마디면 나눠줬을 장미… 편지는 바닥에 남았다

몰래 잘라갈 필요는 없었다. 부부는 해마다 가지를 정리할 때 원하는 사람들에게 장미 가지를 나눠주곤 했다. 충청도, 서울에서 연락이 오면 전화번호를 받아뒀다가 때가 되면 챙겨줬다.

이날 차를 타고 대문 앞을 지나던 한 시민도 잠시 차를 세우고 부부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정씨 부부에게서 예전에 받은 장미 가지를 삽목해 키우고 있다며 “한 가지 얻어가 예쁘게 키우고 있었는데, 이렇게 많이 잘라갔다는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다”고 황당해 했다.

29일 오전 수원시 남수동의 ‘파란대문 장미’ 명소 앞. 인근 주민이 차를 세우고 집주인 정모(70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씨 부부에게서 받아간 장미 가지를 삽목해 키우고 있다는 이 주민은 도난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와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2026.6.2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29일 오전 수원시 남수동의 ‘파란대문 장미’ 명소 앞. 인근 주민이 차를 세우고 집주인 정모(70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씨 부부에게서 받아간 장미 가지를 삽목해 키우고 있다는 이 주민은 도난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와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2026.6.2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부부는 이번 일을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장미를 잘라간 것으로 지목된 60대 남녀는 직접 찾아와 사과하지 않고 한밤중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돌아갔다. SNS에는 “장미가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삽목하려 했다”는 취지의 댓글도 올렸다. 홍씨는 “이 장미를 어떻게 관리하고 남길지는 주인이 책임질 일”이라며 “꽃이 아까웠다면 낮에 와서 말 한마디라도 했어야 했다. 필요한 이유를 이야기했다면 그냥 모른 척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편지는 이날까지도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바닥에 놓여 있었다. 홍씨는 마음이 아파 읽어볼 수 없다고 했다. 앞서 동네 한 어르신이 장미 가지를 몰래 잘라간 뒤 매일 찾아와 사과하고 보상 의사를 전하자, 부부는 보상을 받지 않고 일을 마무리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잘려나간 범위부터 달랐고, 직접 찾아와 사과한 적도 없었다. 부부에게 이번 일은 가지 몇 개가 줄어든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켜온 장미의 모습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일로 남았다.

절도 피의자 부부가 한밤중 남기고 간 편지봉투가 바닥에 놓여 있다. 홍씨는 끝내 편지를 열어보지 못했다. 그는 마음이 아파 손이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2026.6.2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절도 피의자 부부가 한밤중 남기고 간 편지봉투가 바닥에 놓여 있다. 홍씨는 끝내 편지를 열어보지 못했다. 그는 마음이 아파 손이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2026.6.29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집은 철거 대상, 장미는 수원 명소… 보존 갈림길에 선 ‘남수동 파란 대문집’

정씨 부부의 걱정은 이번 절도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남수동 파란대문 집’이 있는 주택 일대는 수원화성 문화재보호구역 정비사업 대상에 포함돼 있다. 보상 절차가 마무리되면 집은 철거될 수 있다. 장미도 지장물로 분류돼 철거 대상이다.

부부는 4년 전 철거 소식을 들은 뒤부터 수원시에 장미를 보존해달라고 꾸준히 요청했다고 한다. 개인 주택의 담장을 타고 자란 장미였지만,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장소가 됐다.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아드는 수원의 현대 관광 명소 역할을 해왔다.

홍씨는 “우리가 이사를 가더라도 오랜 시간 가꿔온 장미가 여기 그대로 남아 있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두고 가면 다 잘라 없애야 할까 봐 그게 제일 마음 아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도 “이 장미 때문에 수원에 오는 사람들이 있다”며 “우리 욕심으로 붙잡고 싶은 게 아니라, 수원시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털어놓았다.

장미는 지금 꽃이 지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5월의 절정처럼 사람들이 몰리지는 않지만, 파란 대문 앞을 지나는 이들은 여전히 한 번씩 고개를 돌린다. 잘린 흔적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홍씨는 그 마음이 고맙다고 했다. 오랫동안 열어둔 집 앞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기억이 됐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원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장미도 분명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예뻐해줬으니까, 우리가 떠나도 여기 남아서 사람들이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지난 2024년 5월 촬영한 수원시 남수동의 ‘파란 대문집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모습. 2024.5.2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지난 2024년 5월 촬영한 수원시 남수동의 ‘파란 대문집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모습. 2024.5.21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https://v.daum.net/v/20260629141024990

댓글 24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tvN <오싹한 연애>의 레이나 호텔 체크인🔑 초대권 이벤트 👻🏨 115 06.29 21,661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603,133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028,603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511,864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270,961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70,73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9 21.08.23 8,628,391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5 20.09.29 7,533,458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35 20.05.17 8,756,38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3 20.04.30 8,638,651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641,703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05104 이슈 소싯적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이미 까먹은지오래라 수지 언니가 걍 내 첫사랑임 14:18 2
3105103 이슈 그로구 음식앞에서 저렇게 귀 축 처져있는거 첨 봄 ㄹㅇ 망연자실 1 14:18 182
3105102 정보 딱히 쓸모는 없지만 넵킨 하나로 귀여워지기 14:17 56
3105101 이슈 원덬 기준 썸머송 스펙트럼 제일 넓은 그룹 2 14:14 291
3105100 기사/뉴스 [단독] 도수치료 관리급여 앞두고 사경증 환아 부모들 ‘치료 공백’ 우려 4 14:13 549
3105099 이슈 2026 워터밤 부산 전소미 출연 14:13 325
3105098 이슈 누가 박지훈 목소리 들려달라고 하면 이거 보여줄거임 3 14:12 305
3105097 기사/뉴스 [공식]방탄소년단, 빌보드 박스스코어 1위..누적 매출 3158억원 15 14:09 477
3105096 이슈 야구덬들이 진돌같은 팬 스트리머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유 21 14:08 2,119
3105095 기사/뉴스 "나 이사했어" 말하면 전입신고 안내…정부24, AI 민원창구로 바뀐다 3 14:07 391
3105094 기사/뉴스 여고 화장실 창틀에 설치된 '몰카폰' 충격…남학생들 "여자가 범인" 조롱 15 14:06 1,125
3105093 이슈 [MLB] 맞자마자 홈런이네 싶은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 시즌 18호 홈런 1 14:06 146
3105092 이슈 방탄소년단 월드투어 'ARIRANG' 마드리드 콘서트 비하인드 포토 📷 4 14:05 326
3105091 이슈 [KBO] 두산베어스 7월 1일(수) 홈경기 시구자 - 인피니트 엘(김명수) 12 14:03 391
3105090 이슈 태연 '만찬가' 멜론 일간 70위 진입🆕 12 14:02 420
3105089 이슈 일본 축구가 뭔가 이상한 이유.jpg 85 14:01 7,057
3105088 이슈 이 목소리 듣고 어떻게 안우냐고.. 14:00 1,030
3105087 이슈 이번 배재고 사건 관련해서 충암고vs광주일고 "내란의 요람" 관련 잘못알려지고 있는 사실 정정 21 13:59 2,276
3105086 이슈 인생 망한 사람 특.. 1 13:58 1,843
3105085 이슈 부산 난이도 헬 교차로 5 13:58 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