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콩 영화계의 사대천왕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사대천왕은 가수 영역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 사실 이 말이 처음 생겨난 시점(1992년)에는 이 넷이 같은 천왕으로 묶일 비슷한급은 아니었다.
장학우, 유덕화는 이미 슈퍼스타였고 여명도 이제 막 탑가수의 반열에 올랐지만
곽부성은 긴 무명끝에 1990년 오토바이 CF로 반응이 오며 한창 라이징하던 시점이었다.
- 1992년 미스홍콩 선발대회에 이 넷이 하객으로 한 자리에 모였는데
이때부터 이 넷을 묶어서 4대천왕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바다 건너 한국으로도 그대로 수입되어 스포츠신문과 주간지에서 굳어졌다.

- 한국에서는 장국영이 4대천왕이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장국영의 전성기는 80년대이기 때문에
90년대인 4대천왕들에 비해 한세대 정도 이전이라 할 수 있다.
- 대신 장국영은 80년대 홍콩가요계를 씹어먹었던 3명의 가수라는 뜻으로
매염방, 알란 탐과 함께 '무적 3인방'으로 이미 불리고 있었다.

- 국내에서 홍콩영화가 워낙 인기였던 시절이다보니 이미 배우로서도 존재감이 컸던 유덕화가
한국에서는 가장 많은 팬과 인기를 누렸고, 인지도로도 4대천왕 중에서 제일 유명했다.
유덕화는 한국에서 초콜릿 광고에도 출연했으며 본인 생애 첫 콘서트를 한국에서 할 정도였고, 한국의 예능프로에도 출연했다.
- 반면, 저 4대천왕 중에서 가수로서 제일 커리어가 짱짱하고 성공한 장학우는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저 중에서 떨어지는 편이었다.
"4대천왕이 누구더라? 유덕화, 여명, 곽부성, 나머지 한명이 그... 장국영인가?" 이런 경우들이 많았다

- 같은 90년대 가요계를 휩쓸었던 대만가수 주화건도 저 4대천왕에 버금가는
국민적인 인기와 메가히트곡들로 휩쓸었기에 이 분까지 포함해서 5대천왕으로 가야한다 말까지 나왔으나 결국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그 대신 주화건은 홍콩 4대천왕을 이길 수 있는 대만의 자존심이라는 뜻으로 별명이 '4대천왕 킬러(천왕살수)'였다.
- 2000년대에 들어 본격적인 가요계의 황금기 르네상스가 열린 대만에서는
90년대 홍콩의 사대천왕을 본 따서 대만버전 신 4대천왕으로 '주걸륜, 왕리홍, 도철, 임준걸'을 묶었지만
이미 아시아에서의 가요계 패권이 한국으로 넘어오던 시점이다보니 90년대 원조 4대천왕에 비해 인지도는 안습...
- 사대천왕의 좀 더 어리고 아이돌스러운 버전으로 '사소천왕'도 있었다.
소유붕(황제의딸 오왕자), 오기륭(보보경심 쓰예), 임지령, 금성무가 바로 그들이었는데
발라드 위주였던 사대천왕에 비해 사소천왕은 댄스곡, 아이돌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