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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나를 망친 구원자…좋은 부모는 점차 ‘필요 없어지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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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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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임에서 전문직 출신의 70대 여성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외국 유학을 마치고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들이 귀국했지만, 40대 중반이 넘도록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지금까지도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사이 아들은 결혼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녀는 네 식구의 생계를 위해 매달 수백만 원씩 지원하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까지 이렇게 지원해야 하는지 한숨을 쉬었다.

 

평생 필요하도록

 

그 자리에서 누군가는 “40대 중반이 되도록 일자리를 못 구했다면 앞으로는 자리 잡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며 “어머님이 능력이 되시니 계속 지원해야지 어떡하겠냐”고 말했다. 다른 이는 “아들이 믿을 구석이 있으니까 열심히 일자리를 구하지 않은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생활비 지원을 끊어버리면 정신 차리고 택배 일이라도 하지 않겠냐”고 조언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뜻밖의 분석을 내놓았다. “어쩌면 어머님께서도 아드님이 자신으로부터 분리되고 독립하는 것을 두려워하셨던 건 아닐까요? 아들이 경제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들면 평생 어머님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무의식 속에 그런 욕구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보세요.”

 

그녀가 그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분석이 지닌 관점의 전복에 적잖이 놀랐다.

 

세상에 ‘돈’만큼 상대를 통제하고 조종하기 쉬운 도구도 드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거부하기 어려울 정도의 풍족한 금전적 지원으로 상대의 의존성을 키운다. 반면 대다수는 마땅히 줘야 할 돈을 주지 않거나, 돈에 조건을 달아 상대를 조종하고 통제한다.

 

전업주부인 아내로 하여금 사사건건 애원하면서 돈을 타 쓰게 만드는 남편, 자녀에게 마땅히 제공해야 할 기본적인 교육비마저도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 인색하게 구는 부모들이 그렇다. 그들은 돈을 쥔 사람이 ‘갑’의 위치에 선다는 사실을 십분 활용해 상대를 ‘을’로 만들고 굴종하게 만든다.

 

사랑한다면서 망치는 사람

 

만약 노부인이 정말 자녀의 독립과 분리를 두려워해 평생 경제적으로 지원해온 것이라면, 이는 전형적인 ‘인에이블러’(enabler)의 모습이다.

 

심리학에서 ‘조장자’로 번역되는 인에이블러는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해결해 줌으로써 오히려 상대를 무능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게 조장된 사람은 성장과 책임을 배울 기회를 잃고, 평생 인에이블러를 떠나지 못한 채 그 곁에 머물며 살아가게 된다.

 

인에이블러는 겉으로는 돕고 희생하는 ‘구원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 행동을 지속시키는 ‘조장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희생과 헌신의 대가로 ‘나는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 ‘나 없이는 안 된다’는 우월감과 도취감, 통제감 등의 심리적 이득을 얻는다. ‘사랑한다면서 망치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인에이블러는 부모와 자녀 사이뿐 아니라 연인, 부부, 친구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인에이블러는 일종의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적 성향과도 연결된다. 주변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병들게 하거나 무력하게 만든 뒤, 극진히 돌보는 역할을 자처하는 게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인물이 스티븐 호킹 박사의 두 번째 부인이다. 간호사 출신이었던 그녀는, 이미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루게릭병 환자인 호킹 박사를 더욱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켜 의존성을 심화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윌북)는 자신이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엄마라고 믿어왔지만, 실상은 인에이블러였음을 깨달은 한 여성의 고백이다. 남편과 자녀의 손발이 되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해결해주던 행동이 사실은 가족을 돕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모두를 통제하고 싶었던 욕구의 발현이었음을 뒤늦게 발견한 처절한 반성문이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인에이블러의 가장 큰 문제는 조장하는 사람도, 조장을 당하는 사람도, 주변 사람들도 그것이 사랑과 배려, 봉사로 포장돼 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를 구별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의 도움이 상대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하지만 상대가 점점 더 퇴행하고, 더 의존적으로 변하고, 스스로 책임질 능력을 잃어간다면 그것은 조장이다. 건강한 의존에는 감사와 기쁨이 남지만, 기생적 의존에는 소진감과 분노, 원망이 남는다.

 

돌부리에도 넘어본 적 없는 아이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네 신발을 집어주고 네 배낭을 져 나르고 네 교통 위반 벌금을 납부하고 네 상사에게 거짓말로 핑계대고 네 숙제를 해주고 네 앞길에서 돌멩이를 치우고 ‘내가 직접 했어!’라고 말하는 기쁨을 네게서 뺏겠지.”

 

직접 하는 것, 독립하는 것, 성장하는 것, 책임지는 것. 그것에 삶의 기쁨이 있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컷은 “좋은 부모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점차 필요 없어지는 부모”라고 보았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에게 평생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최근 심각한 교권 추락의 원인 중 하나로 ‘헬리콥터 맘’을 넘어선 ‘불도저 맘’의 등장이 지목되고 있다. 헬리콥터 맘이 자녀 주변을 맴돌며 끊임없이 간섭하고 통제하는 부모라면, 불도저 맘은 아이가 걸어갈 길에 놓인 작은 돌부리 하나까지 미리 치워버리는 부모다.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불편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불도저 맘들이 그 돌부리를 다 치우기 위해 교사와 학교를 상대로 온갖 민원과 신고, 소송을 제기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좌절도 실패도 실수도 상처도 없는 삶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삶이라기보다 진공에 밀봉된 삶에 가깝다. 그런 삶에는 성장의 기쁨도, 자립의 자부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가장 충만한 선물인 ‘스스로 해냈다’는 감각만 사라질 뿐이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648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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