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길바닥에 나뒹군 프로포폴 약병…식약처, 의료용 마약류와 전면전
신고자가 경찰에 전한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여성이 길바닥에서 비틀거리며 주사기에 있는 하얀 액체를 꺼내 자꾸 (몸에) 꽂으려 했다는 것이다.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도 직접 주사를 투약하려 했다는 목격담도 잇따랐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여성의 정체는 인근 피부과 직원으로 확인됐다. 엄격히 통제되어야 할 의료용 마약류가 병원 문을 넘어 강남 한복판 길바닥에 그대로 노출된 순간이었다.
지난 14일 밤, 서울 서초구 신논현역 8번 출구 앞 도로변. 30대 여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곁에 떨어진 쇼핑백에서는 전신마취제 '프로포폴' 약병과 주사기가 쏟아져 나왔다.
의료용 마약류 유출과 그로 인한 비극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에는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빼돌린 40대 간호조무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2월에는 간호조무사가 무단 반출한 프로포폴을 투약한 운전자가 포르쉐 차량을 몰고 반포대교 아래로 추락하는 대형 사고를 냈다.
실제 정부의 단속 실적도 이러한 심각성을 뒷받침한다. 19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프로포폴 등 오남용이 의심되는 의료기관 57개소를 집중 점검한 결과, 23건을 수사 의뢰하고 20건에 대해 행정처분을 요청했다. 마취제와 식욕억제제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점검 대상 307곳 중 75곳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적발된 행태는 은밀하고 대담했다. 한 의원은 환자에게 체중이나 투여 시간 등 아무런 근거도 없이 1년간 13회에 걸쳐 프로포폴을 반복 처방했다. 또 다른 강남의 피부과 의사는 별다른 시술 근거 없이 단 10개월 동안 한 환자에게 프로포폴 2000ml를 10회에 걸쳐 무차별 투약하기도 했다. 이 환자는 해당 의원을 포함해 무려 18개 병원을 돌며 '의료 쇼핑'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치과 시술 대신 영양수액에 미다졸람과 프로포폴을 섞어 투약해 준 치과의사도 적발됐다.
'징벌적 과징금·명단 공표'…하얀 가운 뒤의 불법 거래 끊는다
이처럼 '하얀 가운' 뒤에서 일어나는 오남용과 불법 유출의 고리를 단호히 끊어내기 위해 지난 18일 식약처는 '2026년 하반기 마약류 안전관리 추진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단순한 사후 적발을 넘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묻고 상시 감시망을 촘촘히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가장 강력한 카드는 '징벌적 과징금제도'의 도입이다. 식약처는 치료 목적 외에 고의로 투약하거나 마약류를 외부로 무단 유출하는 등 중대한 위반 행위를 저지른 의료기관에 대해 기존 업무정지 처분 외에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불법 행위로 얻은 경제적 이익을 웃도는 수준의 과징금을 물려 범죄 유인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식약처는 연내 국회 통과와 시행을 목표로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이와 함께 중대한 위반 행위를 저지른 마약류 취급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명단 공표 제도'도 도입된다. 도난·유출 등 종업원 관리가 미흡한 의료기관에 대한 처분도 강화된다. 종업원 지도·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 업무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려 책임을 강화할 방침이다.
수사 역량을 높이기 위한 장치도 마련된다. 현재 최대 3억 원인 신고보상금은 범죄 발각 이전 신고자뿐 아니라 범인 검거에 필요한 중요 단서를 제공하거나 수사에 협조한 사람까지 지급 대상이 확대된다.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 도입에 맞춘 세부 절차도 마련된다.
분석 기간 '3주에서 3일'로…365일 멈추지 않는 AI 감시망
정부 대책의 또 다른 핵심 축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촘촘한 감시망 구축이다. 식약처는 연내 마약류 오남용 통합감시시스템(K-NASS) 구축을 완료할 예정이다. K-NASS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에 축적된 10억 건 규모의 처방·유통 데이터를 분석해 마약류 오남용과 불법 사용·유통을 사전에 탐지하는 시스템이다.
그동안은 분석 요원이 직접 데이터를 선별·분석해야 해 감시 대상을 선정하는 데만 2~3주가 소요됐다. 하지만 K-NASS가 도입되면 AI가 마약류 전 성분을 동시에 분석해 단 3일 만에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게 된다. 분석 빈도 역시 연간 여러 차례 모니터링에서 벗어나 365일 실시간 연속 모니터링 체계로 전환된다.
현장 기동대 역할을 할 전담 조직도 뜬다. 식약처는 지방자치단체 마약류감시원, 특별사법경찰, 중앙조사단 등 약 50명 규모로 구성된 '의료용 마약류 특별감시단'을 다음 달 1일 공식 출범시킨다. 이들은 프로포폴을 비롯해 페티딘, 케타민 등 수면마취제를 중심으로 집중 점검을 실시하고 불법 행위 적발 시 즉시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환자들의 '의료쇼핑'을 원천 봉쇄하는 빗장도 더 단단해진다. 의사가 약을 처방하기 전 환자의 과거 마약류 투약 이력을 확인해야 하는 대상에 졸피뎀과 프로포폴이 연내 차례로 포함된다. 오는 12월부터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와 연계해 처방 당일의 투약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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