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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논단] 부모 돌봄, 도망치고 싶은 괴로움에서 존엄한 동행으로

무명의 더쿠 | 16:14 | 조회 수 960

https://n.news.naver.com/article/310/0000137723?cds=news_media_pc&type=editn

 

가족 내 돌봄 화두 중에서 여전히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것은 바로 '싱글 형제의 독박돌봄'일 것이다. 결혼한 형제들이 자녀 양육이나 시댁·처가 행사 등을 이유로 시간내기가 어렵다고 할 때, 당장 돌봐야 할 가정이 없는 싱글 형제가 그 역할을 고스란히 떠맡는 경향이 짙다. 혼자 살던 싱글이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 돌봄의 책임과 일상적 부담은 비교할 수 없이 커진다.

최근 읽은 조형근의 칼럼집 『앎과 삶 사이에서』(2026)에 따르면, 부모 돌봄은 형제 중에서도 아들보다는 딸이,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딸이 떠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가정 내에서 돌봄 노동을 숙련한 여성들이 다시 사회로 나와 요양보호사가 되고, 한국 사회의 돌봄 최전선을 떠받친다. 이는 돌봄이라는 행위가 결국 권력이나 자본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더 약하고 주변화된 존재에게 집중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돌봄의 사회적 가치가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단적인 예다. 이렇다 보니 노화와 질병을 겪는 부모를 돌보는 일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그래서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은 굴레'로 인식되곤 한다.

나 역시 삼남매 가운데 부모님 돌봄을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뒤늦게 박사과정을 밟느라 경제적으로는 여유롭지 못했지만, 시간은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었기에 나의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이 연세가 드시면서 먼 거리에 있는 대형 병원에 다니시는 게 문제가 되었고, 내가 운전대를 잡고 부모님을 모시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부모님은 삼형제 중에서 나에게 도움을 더 요청하셨고, 나 역시 부모님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챙기게 되었다. 한때는 속절없이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며 깊은 우울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 전 부모님 댁에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을 겪으며, 부모님의 노화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진행되고 있음을 체감했다. 그러는 사이 돌봄은 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중략)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돈'과 '생산성'을 향해 맹렬히 내달리고 있다. 생산적이지 않은 가치는 모두 뒷전으로 밀려난다. 미래의 생산 노동력이자 계급 재생산에 속하는 '자녀 돌봄'에 비하면, 삶의 저물녘에 위치한 '어르신 돌봄'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소모적이고 고통스러운 일로 치부된다. 회사에서도 자녀 양육을 위한 휴가 제도는 늘어가지만, 늙어가는 부모를 돌보기 위한 시간적 배려는 극히 드물다. 이 분위기 속에서 요즘 부모들은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겠다", "기대하지 않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의 무조건적인 돌봄 덕분에 성인으로 자라난 자녀가, 이제는 뜨거운 계절을 뒤로하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부모에게 돌봄을 되돌려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가 아닐까.

어르신 돌봄을 무조건 가족 안에서 독박으로 책임지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돌봄의 가치가 어디에 편중되어 있는지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노인 돌봄을 힘들고 피하고만 싶은 고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겪는 삶의 마지막 여정을 가장 가까이서 함께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배우는 과정으로 다르게 정의해야 한다. 노인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선행될 때, 비로소 돌봄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 나아가 그 돌봄을 묵묵히 떠안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사회적 시선 역시 비로소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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