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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여성들의 예비할머니 프로젝트③ 나의 취미를 소개합니다

노후 준비와 생활공동체 만들기가 단지 ‘생존’을 고려하는 것만은 아니다. 서로 취향과 취미를 알고 이해하고 공유하면 삶을 더 풍요롭고 즐거울 것이다. 예비할머니모임에서 자기만의 취향·취미 진(Zine)을 만들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출처-예비할머니모임)
“우리 크면 같이 살자”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취향과 취미를 공유하며 하우스메이트를 약속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선택하며 떠나간다. 가치관이 비슷한 친구들과 만나 “나이 들면 같은 동네에 살며 안부도 묻고, 같이 밥도 먹고, 산책도 하며 살자” 말하지만 본격적인 작당모의를 하기엔 쉽지 않다.
그렇게 막연하게 노후를 걱정만 하다가 예비할머니 프로젝트를 만났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주거, 돌봄, 생활공동체에 대해 공부하고, 결혼과 혈연 외에도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수 있는 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프로젝트 회차가 늘어날수록 어쩌면 이곳에서 노후를 함께 준비할 생활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들었다. 한편으론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기엔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후 준비와 생활공동체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생존과 직결된 것들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주거와 돌봄의 불안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아플 때 서로를 돌볼 수 있을지 같은 문제들 말이다. 하지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생존을 위해 주거와 비용을 나누는 일만은 아니다. 함께 밥을 먹고 생활하는 ‘식구’가 어떤 하루를 보내고,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알고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것. 이 사소해 보이는 일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지속하는 바탕이 된다. 삶을 이루는 기본 토대가 돌봄이라면, 이를 더 풍요롭고 즐겁게 만드는 것은 취향과 취미 아닐까.
취향과 취미를 공유하는 관계는 공동체를 조금 더 부드럽고 다정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윤활제 같은 역할을 한다. 실제로 올해부터 근황을 나누는 것으로 모임을 시작하면서, 서로에 대한 허들이 낮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근황을 나눌 때 새롭게 도전하게 된 취미나 요즘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되도록이면 일 외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다양한 관심사가 나오면서, 이를 계기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과 취미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취미·취향 진(Zine) 만들기를 통해 가까워지기
진(Zine)은 개인(작가)이나 소규모 그룹이 형식과 규격에 구애 받지 않고 사진, 글, 그림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롭게 담아내는 독립 출판물이다. 공공기관, 독립서점 등 다양한 곳에서 (원데이) 클래스 등을 진행하는 활동으로 인터넷 검색 시 다양한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작가의 기획과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의 진이 있지만, 우리는 가장 쉽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방식의 진으로 각자의 취미와 관심사, 취향을 한 권의 작은 책으로 만들고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진(Zine) 만들기 모임을 위한 세팅 (출처-예비할머니모임)
(중략)
“다 쓰셔도 돼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가 취미인 A는 모임이 시작하자마자 집에서 가져온 갖가지 종류의 스티커와 엽서를 책상에 펼치고, 후한 인심으로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 글쓰기가 취미인 그는 블로그, 뉴스레터 등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훗날 할머니 밴드를 꿈꾸는 B는 일주일 만에 피아노를 때려치운 대신 기타를 배우는 중이다. 아직 코드 2개를 반복하며 연습 중이지만 손끝의 알싸한 느낌과 굳은살이 생기는 감각이 좋다고 한다. 배드민턴 4년 차, 격투기 6개월 차. 운동에도 진심인 그의 또 다른 취미는 매년 새로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이드 프로젝트(작은 시도)를 취미 생활로 하면서 새로운 우정을 나눠보면 좋겠다는 B는 지금 진행 중인 2개의 프로젝트 외에 또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중이다.
동그란 시간표 안에 오전, 오후, 자기 전 마시기 좋은 차를 그려 넣은 C는 요즘 차 마시기에 푹 빠져 있다. 템플스테이와 불교박람회에 다녀온 계기로 조금씩 차에 스며들어 다구를 종류별로 사기 시작한 그는 다구와 어울리는 패브릭 제품을 만들어 차(tea) 플리마켓 셀러로 참여한 이력까지 생겼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 야외에서 벚꽃 다회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 그의 SNS에 야외 찻자리 영상이 올라왔을 때 얼마나 반갑던지!

각자 만든 취향·취미 진(Zine) (출처-예비할머니모임)
“9번 찔려도, 한 번 찌르면..! 그 맛이 기가 막혀요!”
펜싱에 큰 재미와 희열을 느꼈던 D는 펜싱을 그만 둔 이후 흥미를 돋우며 몸에 딱 맞는 운동을 찾는 중이다. 그가 찍먹한 운동으로는 등산, 수영, 풋살, 필라테스 등이 있다. 운동 외에도 통기타, 일렉 기타, 텅 드럼, 트럼펫 등 여러 악기와 취미 생활을 거친 D에게 언제나 가장 재미있고 질리지 않는 취미는 반려고양이와 노는 것이다.
모임 이후 본인이 만든 진(zine)을 여기저기 보여주며 자랑한 E는 2022년에 훌라에 입문했다. 기후정의행진 오픈 마이크를 통해 데뷔 무대에 선 이후, 직접 지원사업에 공모해 주차장 등 서울 골목골목에서 훌라 공연을 펼친 E. 할머니가 되어서도 훌라를 하는 삶을 살고 싶어 올해 4월, 훌라 전문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고 훌라 강사 자격을 얻었다.
이 외에도 클라이밍, 마라톤, 수영, 기구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있지만 새로운 걸 배우는 재미를 평생 느끼고 싶어 65세까지 종목을 바꿔가며 취미 생활을 하고 싶다는 F, 속해 있는 축구단의 5060 언니들을 보며 훗날 할머니 조기 축구단을 만들고 싶다는 G, 템플스테이에 다녀와서 5일간 매일 집에서 108배를 했다는 H까지. 다양한 취미·취향 일대기를 공유하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취향은 한 사람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고, 취미는 현재 어떤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설명한다. 각자의 진을 살펴보며 서로의 하루와 일주일, 1년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자신을 돌보는 방식과 타인과 연결되는 방식을 짐작해 볼 수도 있었다. 서로에 대해 알게 된 게 많아진 만큼 우리는 이전과는 또 다른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 할머니
“(결혼 안 하고) 나이 들어서 혼자면 외롭다.”
평소에도 큰 타격 없었던 누군가의 걱정 섞인 핀잔이 우려스럽지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하나의 취미를 파고들어 강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부터 안 해본 취미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취미를 찍먹 해본 사람까지. 이토록 많은 취미 부자 할머니들이 나와 가까운 곳에 산다고 생각하면 외롭기는커녕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흐를 것 같은 예감마저 든다. 운동부터 악기, 글쓰기와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서로가 서로의 취미 선배이자 선생님이 되어준다면, 아마도 내 노년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갈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C가 추천한 보이차를 우려 마시며 차분히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7시, 동네 요가원에 가서 몸을 풀고, 집으로 돌아와 시원하게 몸을 씻어낸다. 은퇴 없이 가능한 오래 일 하고 싶은 (예비) 할머니로서 이른 오후까지 일을 하고, 초저녁엔 동네 할머니들을 만나 악기 연습을 한다. 어느 날엔 요가 대신 수영을 가고, 또 어느 날엔 악기 연습 대신 삼삼오오 모여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갈 수도 있겠다. 또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할머니 조기 축구단에 나가서 축구를 하고, 어느 주말엔 완주를 목표로 F가 나가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도 있다.〉

작년에 함께 모여 만든 65세 생활 시간표 (출처-예비할머니모임)
어쩌면 지금보다 더 부지런을 떨어야 소화할 수 있는 스케줄. 이것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상상하면 노년의 삶이 기대되고 설레기까지 하다.
서울 은평구 ‘살림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이 들고 싶은 동네』(유여원, 추혜인 공저, 2025)에는 7080 여성 주축의 근력운동 모임 ‘흰머리 휘날리며’, 등산 속도가 가장 느린 사람에 맞춰 산을 타는 건강 소모임 ‘오투’,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풋살팀 ‘살림FC’ 등 살림의 다양한 모임이 소개된다.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협동조합에서도 생활요가부터 쿠킹 클래스, 뜨개방 등 다양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 공동체 구성원이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모임이다. 주축이 되는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을 이끌거나 선생이 되어 가르친다.
이들이 공동체를 만들고 운영하며 구성원들의 역량과 관심사에 따라 모임을 하나씩 만들어갔다면, 아직 생활공동체를 공부하고 시도해 보는 과정의 우리는 역으로 취미 모임을 주축으로 생활공동체를 만들어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20명의 인원 중 취향과 취미로 모인 4~5명이 각각의 소모임을 만들고 교류하다가 어느 날 다 같이 모이는 날 또 다른 교류를 만드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이라면 아직 낯설고,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생활공동체 만들기’가 조금은 가깝게 느껴지고, 쉽게 접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모임 이후, 취미 생활에 진심인 예비 할머니들이 모인다면 지금 당장 대단하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함께 모여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꼭 생활공동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목격한 적이 있다. 수영장에서, 산책로에서, 카페에서. 함께 걷고, 먹고, 마시며 서로를 챙기는 할머니들을. 우리가 목격한, 너도 나도 한 번씩은 떠올렸을 주변 할머니들의 취미생활을. 다 같이 둘러앉아 화투를 치는 할머니들, 식당과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떠는 할머니들, 같이 절도 다니고 등산도 다니는 할머니들. 한 모임원은 우정여행으로 바다에 놀러 가 서핑 수업을 듣는 60대 할머니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이미 어디에든 존재하는 그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그리는 미래의 취미 생활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각자가 만든 취향·취미 진(Zine)을 소개하는 모습 (출처-예비할머니모임)
취미를 함께 하는 게 돌봄이 될 수 있을까
취미를 함께하며 한 가지 더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돌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책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김현경, 2022)에서 돌봄은 특별한 사람이나 특정한 순간에 필요한 게 아닌, 존엄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로의 감정을 살피는 것이 일상생활을 움직이는 중요한 축이며, 같이 밥을 먹는 ‘밥 돌봄’이 일상에서 갖는 의미를 강조한다. 이렇게 서로의 상태를 살피고 안부를 묻고 끼니를 확인하는 것이 돌봄의 한 영역이라면 함께 취미 생활을 하는 것 또한 보살핌을 주고받는 일이 될 수 있다.
예비할머니 모임 중 누군가 “서로를 잘 아는 관계에서 더 나은 돌봄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취향과 생활리듬,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혼자 있고 싶은 순간과 함께 있고 싶은 순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절대 사소한 부분이 아닐 것이다. 결국 공동체에서 돌봄을 주고받는 행위는 갑자기 발생하는 역할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위에서 가능한 일 아닐까. 우리는 취향과 취미를 공유하는 사이가 지속되고 발전해 65세에도 함께 모여 재미있는 취미 활동을 하고, 밥을 먹고, 근황을 나누며 요즘 아픈 곳은 없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살피는 관계가 되길 기대하며 이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서울과 경기 곳곳에서 모인 예비 할머니들이 두터운 우정과 신뢰를 쌓아 함께 생활 공동체를 만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 그저 지난 1년 동안 만난 선례에 힌트를 얻어 느슨하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오래오래 천천히 만들어 가길 바랄 뿐이다. 이제 막 만들어진 모임인 만큼 함께 살 동네도, 구체적인 계획도 부족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번뜩 또 다른 추진력이 생길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며.
그때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매월 만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더 잘 살필 수 있는 건강한 몸과 체력일 터. 예비 할머니들과 진짜 할머니가 되어서도 함께 건강하고 다채로운 취미 활동을 하기 위해 오늘부터 근력 운동을 시작해 본다.
[필자 소개] 파랑. 우연히 예비 할머니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 노후를 함께 할 생활 공동체를 꿈꾸게 되었다. 비슷한 친구들과 같은 동네에 모여 살며 나이 드는 미래를 상상하며 꾸준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