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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명나라 때의 사대부가 죽은 딸에게 보냈던게 아직 남아있는 편지

무명의 더쿠 | 14:18 | 조회 수 3112

전근대 사회의 부모들은 딸들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꺼리는 면이 있었습니다.

딸은 시댁 식구들과 살아야 했기에 결국엔 남이 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까지 남은 몇몇 묘지명을 보면,

일부 아버지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딸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명나라 만력제 시절, 그러니까 400년 전. 
 

명나라의 한 아버지는 천연두로 두 명이나 되는 딸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동생이 죽고, 그 다음에는 언니까지 죽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죽은 큰 딸의 묘지명을 직접 쓰며, 딸의 어린 시절을 담담히 추억했습니다.

400년 전 명나라 시절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은, 현대의 눈으로 보기엔 어땠을까 보시면 되겠습니다.

 

 

 

cfhIwd

 

 

기미년(己未年) 겨울, 10월 23일

 

 

차마 붓을 들지 못하다가 3·7일이 되어

제물을 올리며 글을 지어 곡(哭)한다. 

생전에 아이가 뛰어놀던 곳에서 이 글을 태운다.

 

 

 

애통하구나. 너의 이름은 아진(阿震)이다.

네가 태어났을 때, 사실 나는 기쁘지 않았다.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기 때문이지.

 

 

허나 네가 돌이 되기도 전에

너는 참으로 가련(可憐, 사랑스럽다)하였다. 

턱짓으로 너를 부르면 너는 벙글벙글 웃곤 했지.

 

 

그때 유모가 너를 보살폈는데,

옷띠도 풀지 못한 채 하룻밤에 열 번도 더 일어나야 했다.

 

유모는 너 때문에 온갖 고생을 다 했다.

젖은 기저귀는 마른 것으로 갈아주고, 헌 살을 도려내고 새 살을 돋게 하듯 정성을 쏟았지. 

네가 보채면 어미는 화를 냈지만, 조금만 덜 보살펴도 너는 울어댔으니까.

 

 

작년 무오년(戊午年), 

내 운수가 사나워 과거 시험을 보러 자주 집을 비우며 너를 두고 떠나야 했다.

그 사이 유모 주씨는 죽었고, 나는 과거에 또 불합격하였지. 

집에 돌아오니 너는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물건을 달라고 조르더구나.

네가 곁에 있으니 근심이 있어도 마음이 즐거웠다

 

 

 

너는 날이 갈수록 자랐고, 지혜도 날마다 늘었다. 

아빠, 엄마를 부르는 소리도 조금도 틀리지 않았지. 

항상 손으로 문을 두드리고는

 

"거기 누구세요?"

 

라고 스스로 묻곤 했지.

 

 

내 큰형님이 오면 주인처럼 나서서 술잔을 올리며

 

"드세요(請)"

 

라고 하여 우레와 같은 웃음을 자아냈지.

 

 

네 조부가 시골에 가 계실 때

일년이 넘도록 뵙지 못했음에도

 

"할아버지를 아느냐?" 물으니

 

"흰 모자에 흰 수염 난 분(백모백수, 白帽白鬚)이요"

 

라고 말하였지

 

 

 

올해 유월(六月), 

 

네가 종기를 앓았을 때

아픈 곳을 문지르니 매우 애처로웠으나

감히 울지를 않더구나.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두려워했던 게지. 

 

 

과자나 먹을 것을 들고 있을 때도

반드시 부모의 뜻을 살피고

주지 않으면 입에 넣지 않았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실수로 손상을 입혀 

내가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면

손을 모으고 뒤로 물러나 숨곤 했지.

 

 

 

네 어미는 너무 엄격해서 수시로 빗을 빗기고 머리를 묶으며 단정히 하라 했지. 

네가 자라서 버릇이 굳어질까 걱정해서였지

 

내 뜻도 그러했지만, 몰래 어미에게 부탁하곤 했다.

 

'영해(嬰孩, 어린애)가 뭘 알겠소. 그저 하고 싶은대로 두구려."

 

 

 

얼마 전 네가 소주에 있다가 

우리 부부가 돌아올 때

너를 달래기도 하고 겁주기도 하고,

가면을 쓰고 바보 흉내도 내고, 

작은 바구니에 대추를 담아 밥상에 앉아 죽을 먹고,

입으로는 대학(大學)을 외우고

손으로는 부처님(阿彌)께 절을 했지. 

가지를 쥐고 내기를 하여 이기면 집을 돌며 달리기 시합을 하고

깔깔거리며 손뼉을 치고, 스스로 기이하다 여기며 좋아했지.

 

 

그런데 반달도 채 지나지 않아 네가 죽을 날이 닥칠 줄이야. 

하늘(天)인가 운명(命)인가,

신선도 알지 못할 일이로다.

 

 

 

네가 죽기 전...

말을 참 잘하던 네가, 

그 즈음엔 말을 못 하고 목소리는 쉬고 숨은 끊어질 듯한데

눈만 크게 뜨고 있을 뿐이었지. 

우리가 너를 둘러싸고 우니, 너도 눈물을 흘렸지. 

 

 

비통하구나. 이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느냐.

세상 풍습을 논하자면

딸이 죽었다고 어찌 울겠느냐마는 

귀신이 나를 학대함이 너무도 가혹하구나, 누가 알았겠느냐.

 

 

너보다 열흘 앞서, 두 살 어린 네 누이동생 아손(阿巽)도 

너와 같은 병을 앓다가 사흘 만에 죽었지

네가 평소에 친압(狎, 친하게 지냄)하던 동생이다.

 

 

 

이제 너는 짝이 없으니

마땅히 동생과 함께가거라. 

 

너는 조금 걸을줄 알지만 

동생은 아직 서는 것도 불안하니

오고 갈 때 손을 꼭 잡고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다투지 말거라.

 

 

만약 너를 키워준 유모를 만나면 다시 안부를 묻고,

저승에는 조부, 조모가 계시니

그분들께 의지하거라.

반드시 너희를 이끌어주실 게다.

 

그래서 조부모 묘소 곁에 너희를 권조(權厝, 임시 매장)하는 것이다. 

동생은 작으니 네가 이끌고, 

너도 작으니 할아버지가 보살펴 주시겠지.

 

 

 

나는 지금 네 생각에 

마음에서 너를 떨쳐낼 수가 없구나. 

네가 만약 안다면, 부디 꿈 속에 자주 나타나 다오. 

 

 

 

혹시 인연이 다하지 않았다면, 

다시 내 자식으로 투태(投胎, 환생)하거라.

금강경과 여러 주문을 외우고

국을 끓이고 지전을 태워 너에게 보내니 명심하거라.

 

 

 

네가 저승의 염왕(冥王, 염라대왕)을 보거든,

 

"제 나이는 실로 어립니다.

귀신들이 업신여겨 괴롭히더라도 신(神)께서 도와주십시오."

 

단지 이와 같이 말하고, 울거나,시끄럽게 굴지 말거라.

저승은 집과 같지 않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글을 지어 너를 부르는데

글자는 따지지 말거라. 

 

다만 '아진(阿震)아'하고 부르니, 네 아비가 여기 있다. 

너를 위해 한 번 곡(哭)하고 너를 한 번 부르노라."

 

 

 

 

심승(沈承), 제진녀문(祭震女文)

 

명나라의 관리, 심승이 죽은 어린 딸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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