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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중세라는 것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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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에보리가 필리프2세 험담 안 한 이유?
우리는 중세인이 아니지만 일단 남편은 아내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의식이 있었고 잉에보리는 덴마크의 왕녀란 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어 고귀한 내가!!!! 이 내가!!!!! 결혼한 게 찌질하다는 걸 인정하라고? 절대 안 해 이건 내가 떨어지는 거지
그 ×××는 일단 내 남편이니 경건왕이어야 해 찌질왕이라고 말하면 나도 그 수준이야라는 의식이 강했던 거 같아
잉에보리한테 남편분을 얼마나 아세요? 하면 우아하고 나긋나긋하게
세상 그 무엇보다 잘 알아요라고 했을거야(아마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긴 할 거야 21년간 이를 갈며 생각했겠지 복위만해봐라)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세요 하면 어머 당연히 왕비로서(만).사랑하죠하고 말할듯...(기다리고 기다린.atm이요)
반대로 필리프2세는 왕비전하를 폐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겠지 내가 못 이긴 유일한 사람이 저 지독한 마누라니....
온갖 권모술수가 다 튕겨나가니...
저 사람은 타고난 왕녀야 그 누구에.비견할 수 없는....이라고 답했을거야 한편으론 마음 속 허영도 있었겠지
저 고결한 여자의 단 하나뿐인 남자.
그.첫날밤에.뭐가 있었는지 우린 모르는데 그게 필리프2세에게 뭔가.큰 영향을 준 것만은 확실해
잉에보리야 정상적인 관계로 기억하니 물어봤자고....
아마 어떤 여자랑 육체관계를 맺어도 필리프2세는 그 첫날밤기억을 이기진 못 한 거 같아
복위 후 10년동안 필리프2세가.잉에보리가 거부하던가말던가 보석은 꾸준히 갔고 선물은 엄청 보냈어
그리고 친정 오빠의.덴마크는 발트제국을 건설하고 있었지
하늘에서 전쟁중 덴마크에게 내려줬다는 국기 단네브로
아마.필리프2세는 처조카들을 보면 속이.미어졌을거야
처남쪽의.왕자들도 뛰어난 전사 소리 듣는데 처형쪽 애들도 화려해
1. 에리크 11세 (Erik XI, 스웨덴 국왕) — "절름발이 왕의 반전"
- 관계: 둘째 언니 리키사의 아들 (친조카)
- 활약상: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편하여 '절름발이이자 성가신 자(Erik läspe och halte)'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왕위에서 쫓겨나는 등 유년기는 불우했으나, 성인이 된 후 왕위를 되찾아 스웨덴의 중앙 집권화를 다지고 영토를 확장(제1차 핀란드 십자군)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후사가 없이 사망하며 에리크 가문의 마지막 국왕이 되었습니다.
2. 잉게보르드 에릭스도테르 (Ingeborg Eriksdotter) — "새로운 왕조의 어머니"
- 관계: 둘째 언니 리키사의 딸 (친조카딸)
- 활약상: 당대 스웨덴 왕실에서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여성입니다. 스웨덴 역사상 최고의 명재상이자 수도 스톡홀름을 건설한 비르예르 얄(Birger Jarl)과 결혼했습니다. 남편과 힘을 합쳐 자신의 아들들(잉에보리의 외종손)을 차례로 스웨덴 국왕(발데마르, 망누스 3세) 자리에 올리며, 중세 스웨덴의 황금기를 이끈 '비엘보(Bjälbo) 왕조'의 사실상 시조가 되었습니다.
3. 카타리나 수네스도테르 (Katarina Sunesdotter) — "스웨덴의 성녀이자 위대한 왕비"
- 관계: 첫째 언니 헬레나의 딸 (친조카딸)
- 활약상: 사촌 관계였던 위의 에리크 11세와 결혼하여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사망한 후, 엄청난 막달레나 성당 지분과 재산을 교회의 자선 사업에 모두 기부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때문에 중세 스웨덴 민중들에게 '성스러운 왕비'로 추앙받으며 종교적으로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4. 오토 1세 (Otto I,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 "벨프 가문의 구원자"
- 관계: 막내 언니 헬레나의 아들 (친조카)
- 활약상: 막내 언니 헬레나는 독일의 명문가인 벨프(Welf) 가문의 뤼네부르크 공작과 결혼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오토 1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와 치열한 정치적 협상을 벌여, 가문의 영지를 합법적인 공국(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으로 인정받아냈습니다. 훗날 영국 왕실(하노버 왕조)의 직계 조상이 되는 가문의 기틀을 다진 뛰어난 정치가였습니다.
나도 저런 아이들을 가질 수 있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진짜 이상한 것은 중세 왕들에게 정략결혼은 감정을 드러낼 일이 아니었어 서로의 육체는 영토나 같은 거니까
실제로 후계자만 낳고 서로 진작 쇼윈도한 경우도 있어서...
필리프.2세가 정략이나 계략 같은 거 생각하지.않고 그렇게 격렬하게 행동한 건 잉에보리의 건뿐이야
그래서 학자들도 기묘한 집착이라고 이야기하는 거고....
말년되면서 필리프는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해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오귀스트)는 1223년 유언장을 작성하며 덴마크의 잉에보리(잉게보르크)를 합법적인 왕비로 인정하고 그녀에게 상당한 연금과 영지를 남겼으며, 평생 자신을 괴롭혔던 혼인 무효 시도를 철회하고 그녀의 지위를 확고히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아내라 라틴어로 적으면서 받았던 지참금 이외에 핵심영지들을 목록화해 엄청난 규모의 땅을 남겨
그 부분에 매우 신경 썼는데 잉에보리를 통해 유일한 적자인 루이8세를 보호하고 그리고 잉에보리의 고결한 명성도 얻고 이렇게 내가 재산과 영지 다 주고 가니 날 용서하라는 중세인다운 계산도 있었을지도 모르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죽기 전까지도 읊어대던 거랑 얼굴이 생각난 건 잉에보리였던가봐
아들인 루이8세에게 잉에보리를 잘 챙기고 대우해야한다고 직전 당부하고 세상을 떠나
잉에보리는 남편의 장례식에 참여했고 받은 유산과 토지로 프랑스 제일 가는 영주가 됨
남편 사후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데 그래도 프랑스의 대비로 할 일은 다 했어
남편이 죽고도 약 14년을 부유하고 편안하게 영주로 잘 살았어
이후부터는 진짜 해피라이프임
아 현금유산은 바로 찾아갔대 다 계산해보면 시집올 때 지참금의 2배이상이었다는 말도 있더라
아 잉에보리의 화려한 싱글라이프는 내일 적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