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140% vs. 정기예금 0.3%” 은행서 돈 빠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머니무브 뉴웨이브]
코스피지수 9000 돌파 기점 자금이동 새물결
가계 정기예금 5조 줄 때 투자자예탁금 14조 증가
예금 만기 시 재예치하던 70대 고객도 자금 빼
‘안정성 자금’ 가계 예금 이탈, 은행권엔 리스크
[헤럴드경제=서상혁·유혜림 기자] 사상 처음으로 코스피 지수가 9000선을 돌파하면서 은행에서 증시로 자금이 대거 움직이는 머니무브가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구천피’ 돌파 기점 이후 머니무브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물결’로 재편될 전망이다.
과거 코로나 불장 시 주가 상승기에도 꾸준히 가계 정기예금이 늘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은행 정기예금을 대거 해지하고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자금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안전자산 비중을 대폭 줄이고, 수익성 중심의 위험자산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적금의 든든한 고객층이었던 시니어 금융 소비자마저 만기가 되자마자 증시로 자금을 옮기는 현상도 나타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머니무브 물결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가계 정기예금 5조 줄 때 투자자예탁금 14조 증가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6월 말 455조6857억원에서 지난 16일 기준 431조771억원으로 약 24조6000억원 감소했다. 가계 정기예금은 지난해 9월 말 458조788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12월 말 438조9068억원, 올해 3월 말 436조2861억원으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3개월간 줄어든 잔액은 5조원이 넘는다.

코스피 불장이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너도나도 정기예금을 해약하고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에 자금을 묶어두기보다 주식 투자로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실제 한국거래소 데이터마켓플래이스에 따르면 주식시장 대표 지수인 코스피200은 지난해 6월 말부터 올 4월 말까지 140.39% 상승했다. 그런 반면 은행권의 정기예금 1년 만기 금리는 지난해 6월말 연 2.73%에서 올 4월말 3.04%로 0.3%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은행권 정기예금이 감소하는 동안 주식 대기자금은 불어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해 6월말 68조9724억원에서 지난 16일 124조5516억원으로 약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3개월 새 늘어난 금액은 14조원 이상이다.

머니무브의 신호는 예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금융당국의 ‘2025년 우리나라 연금저축 투자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연금저축 적립금 가운데 펀드 비중은 30.9%로 전년보다 8.2%포인트 상승했다. 올해 3월 말 기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운데 주식시장 등에 투자하는 투자중개형 ISA 잔액은 약 45조원으로, 은행권 신탁형 ISA 잔액 15조7000억원의 약 3배에 달했다.
은행 대출을 활용한 이른바 ‘빚투’ 열기도 이어지고 있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해 5월 말 103조3145억원에서 1년 만에 106조5153억원으로 증가했다. 마이너스 통장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예금 만기 재예치 70대 고객도 자금 빼
최근 금융권에 나타나고 있는 머니무브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가가 상승하고 있음에도 가계 예금이 꾸준히 늘었던 과거와 다르게, 지난 1년 동안 머니무브는 안전자산보다 높은 수익성을 향해 일방적으로 자금이 빠져 나가는 양상이다.
단적인 예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제로금리 수준이 유지됐던 2021년이다. 당시 빚투 열풍으로 코스피 지수는 2800대에서 한 때 3200선까지 치솟았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월말 기준 가계 예수금(정기예금·요구불예금)은 742조4257억원에서 그해 6월말 757조1402억원, 연말 787조7506억원으로 늘었다. 1년 사이 45조3249억원 증가했다. 이중 정기예금은 16조5018억원 증가했다.
반면 이재명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해 5월 말부터 올해 4월 말까지 가계 예수금은 5조3792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기간 가계 정기예금은 오히려 8874억원 감소했다. 코스피 지수가 단 기간 3배 이상 치솟는 ‘역대급 상승장’이 이어지면서 과거와 다르게 주식시장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이 기대치가 과거보다 높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돈은 기본적으로 수익을 좇는 성질이 있는데, 지금처럼 수익까지 꾸준히 뒷받침되는 상황에선 안전 자산보단 리스크를 감당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 창구에서는 예·적금 해지 바람이 무섭게 불고 있다. 5대 은행의 올 1월부터 5월까지 개인 예·적금 중도해지 건수는 총 256만 936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만43건 증가했다.

최근에는 60대 이상 고령층 투자자들까지 주식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024년말 기준 상장법인 주식 소유자 중 60대 이상 비중은 21.3%에서 2025년말 22.8%로 늘었다. 모 시중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통상 70대 이상 노인 고객들은 정기예금 만기가 다가오더라도 그 자리에서 재예치를 하는데, 요즘에는 그런 고객들도 정해진 예치 기간이 끝나면 곧장 자금을 빼고 있다”며 “최근 모 70대 고객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에 어떻게 가입하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머니무브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AI와 반도체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투자자들이 직접 체감하면서 위험자산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본이 충분히 쌓이게 되면 그 다음은 투자가 늘어나는 양상이 나타난다”며 “과거와 다르게 인공지능 등 기술이 발전한 만큼, 머니무브가 디폴트 현상이 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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