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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삼박자라고 하는 인물·구도·바람에서 김부겸은 모두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거의 무대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대구는 긴 세월 보수의 굳건한 아성이었지만, 33년째 1인당 GRDP(지역총생산) 전국 최하위를 기록한 2026년의 대구는 ‘이번만은 바꿔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꿈틀댔다.
6월2일 저녁, 대구시 중구 종로에서 만난 50대 후반 은행원은 도시의 쇠락이 하루하루 피부에 와닿는다고 말했다. “여기 반월당역(대구 지하철 1·2호선)에 큰 지하상가가 조성돼 있다. 얼마 전 지하상가를 지나가는데 너무 더워서 한 가게 사장님한테 물어봤다. 장사가 너무 안되고 매출이 안 나오니까 공동 관리비로 내는 냉방비를 부담스러워하는 상인이 많아 에어컨을 못 켜고 있다고 하더라. 내가 대구 토박이인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여기가 대구 중심가인데도 이런 상황까지 왔다.”
김부겸 찍으면 2등 시민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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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바꾸고, 나아가 한국 정치사를 새로 쓸 다시없는 기회라는 기대감이 무르익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선거 문법에서 호재로 풀이되는 조건들이 대구에서는 반대로 작용했다. 국정 지지율에 힘입어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둘 거라는 전망, 국민의힘이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는 위기감은 보수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집결시켰다. 김부겸 후보가 얻은 58만6927표는 민주당 계열 후보가 대구시장 선거에서 득표한 가장 많은 숫자이지만, 추경호 후보에게 쏟아진 70만2000여 표는 역대 대구시장 선거를 통틀어 제일 많은 숫자였다.
6월2일 대구시 북구 팔달시장. 오후 2시로 예정된 추경호의 유세를 보기 위해 취재진과 지지자들이 시장 남쪽 입구로 모여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한 살 많다”라는 이수자씨(가명·75)는 새벽 장사를 마치고 집에 갔다 일부러 다시 시장에 나왔다. 이씨는 대구라도 보수를 지켜야 한다며 “나라를 위해서”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김부겸 못하는 거 아이지(아니지). 잘하지. 잘하지만 시퍼런 게 맨 천지잖아. 전라도도 몰표, 수도권도 몰표, 대구조차 뺏기면 우예 되노. 보수도 있어야 평등 나라가 되지. 아야들 얘기가 (김부겸이) 돈 땡겨서 대구에 해준다 카는데, 나라를 생각해야 된다. 먹을 거 없어도 된다. 나라가 잘돼야지. 막말로 누구 덕에 우리가 사노. 박정희 대통령 덕에 살잖아. 김부겸이도 어제 아침 7시에 시장 왔다. 나도 악수했다. 김부겸이 나쁘다 카는 게 아이다. 되면 대구에 좋지. (그래도 추경호를 뽑는 건) 나라를 생각해서 그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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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 결과는 과거 여러 차례 선거가 그랬듯 대구 시민들과 국민의힘 사이 공고한 ‘정당 일체감’을 다시금 확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북대 한국 민주주의 센터에서 진행해 〈시사IN〉을 통해 처음 공개하는 ‘대구 시민의 정치의식 조사’는 의외의 결과를 보여준다.
지난해 9~10월 대구 거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이 조사에서 연구팀은 ‘정치적 대표성’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대구 시민의 50% 이상이 국민의힘이 정책과 이념에서 자신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답했다(〈그림2〉 참조). 지역구 국회의원이 자신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답변한 비율은 정책과 이념 문항에서 각각 38.6%와 39.1%로 같은 질문을 전국 시민들에게 했을 때보다 더 높았다(〈그림〉 1·2 참조). 대구 지역구 국회의원은 12석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함께 조사를 설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박인술씨(경북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는 이렇게 설명했다. “연구팀이 비슷한 기간 진행한 전국 조사와 비교하면 정치적 대표성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평가가 전반적으로 더 부정적이다. 대구는 ‘국민의힘 1당 체제’라고 할 수 있는데, 양당 혹은 다당이 경쟁하는 다른 지역보다 정치적 대표로부터 얻는 효용감이 낮다고 해석 가능하다.” 연구팀에 따르면 유권자의 선택이 지금의 대구 정치를 만들었다는 해석은 보완이 필요하다. ‘정치의 공급’이 보수정당 일변도로 이루어졌기에, 겉보기에는 ‘묻지마 투표’ 같은 행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박인술씨는 “대안을 공급할 수 있다면 시민을 설득할 수 있고, 변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구 자영업자가 국힘 입당하는 까닭
‘대구 정치’에 익숙하게 붙은 ‘지역주의의 벽’은 이제 달리 보인다. 긴 세월 다양한 층위의 힘이 빽빽하게 교차하며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결과다. 이번 선거에서 김부겸이 받은 45.05%, 58만6927장의 표는 이토록 조밀하게 조성된 국민의힘 우위의 생태계를 비집고 올라왔다. 한 표 한 표에 담긴 절실함과 열망의 밀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손수 고친 ‘낙선 인사’ 원고
6월4일 0시50분. 전날 밤, 캠프에서 개표방송을 보다가 저녁 7시쯤 수성구 자택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김부겸은 본인을 데리러 온 수행 차량을 타고 다시 달서구 두류네거리 선거사무소로 향했다. 차에 탈 때는 1만 표가량을 앞섰는데 캠프에 도착하니 전세가 역전돼 있었다. 보통은 참모들이 마련해준 원고를 잘 고치지 않지만, 그날은 준비된 ‘낙선 인사’ 원고의 여러 곳을 손수 고치고 새로 썼다. 새벽 2시20분, 취재진 앞에 마이크를 든 김부겸이 섰다.
“존경하는 대구 시민 여러분, 제가 부족했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걸어주신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시민들이 주신 선거 결과에 겸허히 승복합니다. 선거 기간 동안 믿어주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의 패배이지 변화를 열망하는 대구 시민 여러분의 패배가 아닙니다. 좌절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이만큼 오기까지 너무 잘했다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줍시다. 우리 대구에 경쟁이 벌어지고, 여야가 서로 시민께 잘 보이려 노력하는, 서비스로서 정치의 가능성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저와 끝까지 경쟁해오신 추경호 후보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끝까지 저를 믿어주신 대구 시민들께 감사드립니다. 저와 함께해주신 모든 동지 여러분, 지지자 여러분,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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