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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이집트와 경기를 앞둔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아마두 오나나가 쓴 「이민자의 이야기」

무명의 더쿠 | 21:02 | 조회 수 746

아마두 오나나

출생: 2001. 8. 16

국적: 벨기에, 세네갈

소속: 아스톤 빌라 FC

포지션: 미드필더

신장: 19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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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주입식 매트리스.

 

그게 제가 새로운 나라에 왔을 때 가진 첫 번째 기억입니다.

 

처음 몇 주 동안, 우리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어요. 그저 아무것도 없는 아파트 하나뿐이었죠. 깜빡거리는 불안한 전등. 낡은 소파 하나. 난방은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고요. 당연히 침대도 없었죠. 그래서 엄마는 백화점에 가서 우리를 위해 그 싸구려 공기 주입식 매트리스를 하나 사 오셨어요.

 

그 매트리스가 부풀어 오르던 모습을 기억해요. 바람이 들어가면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거 아시죠? 정말 멋졌어요. 마치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2분 뒤에는 뭔가가 생긴 것 같았어요. 이게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 수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건 알지만, 그 장면은 제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 침대에 누우면 꼭 왕이 된 기분이죠, 안 그래요?

 

엄마는 우리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기 위해 저와 세 살짜리 여동생을 데리고 세네갈에서 브뤼셀로 오셨어요. 저는 11살이었죠. 저는 벨기에에서 몇 년째 살고 있던 아버지 덕분에 벨기에 여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엄마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거셨어요. 우리가 도착했을 때, 아무도 우리에게 아파트를 빌려주려 하지 않아서 일주일 동안 형의 대부 댁에 머물렀어요. 그분 이름은 조지였고, 브뤼셀에서 의사로 일하셨죠. 그분이 우리가 월세를 낼 거라고 보증하려고 직접 아파트 계약서에 서명까지 해 주셨어요. 그분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첫 번째 천사예요. 앞으로 더 많은 천사들을 만나게 될 거고요.

 

우리는 사회복지 서비스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말 그대로 맨바닥에서 시작한 거죠. 아직 제대로 된 가구도 없었고, 공기 주입식 매트리스는 우리 셋이 눕기에는 너무 작았어요. 그래서 처음 몇 주 동안 엄마는 저와 여동생이 매트리스를 쓰도록 작은 소파에서 주무셨어요. 다행히 여동생은 아직 콩알만 했죠. 저는 이미 키가 꽤 컸거든요. 우리는 매일 밤 그 매트리스 위에서 몸을 웅크려 함께 누웠고, 그렇게 버텨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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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가난을 피해 도망친 게 아니라는 게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운이 아주 좋았죠. 고향 다카르(*주: 세네갈의 수도)에서 우리는 소박하지만 좋은 삶을 살았어요. 조부모님 댁에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살았죠 — 대가족 전체가요. 그런데 잉글랜드에서 말하는 대가족이 아니에요. 3층짜리 집에 스무 명이 사는 그런 거예요. 스무 명쯤이었던 것 같아요. 고향 사람한테 물어보면 아마 서른 명이라고 할걸요. (아니야, 마흔 명이야, 브로! 마흔!!!)

 

사촌들, 이모들, 삼촌들, 말 그대로 온 가족이 다 있었죠. 할아버지는 (당연히 저는 그랑-페레grand-père라고 불러요) 제게는 두 번째 아버지 같은 분이셨어요. 제 진짜 아버지는…… 음, 좀 복잡한 이야기예요. 그냥 아직도 상처가 많이 남아 있다고만 해 두죠.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안쓰럽기도 해요. 아버지도 고향에서 백만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온 아프리카 이민자였고, 그저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보려 애쓰셨던 거니까요. 저와 형은 여름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갔고, 같이 본 축구는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우리 관계는 어려웠죠.

 

어느 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깨닫게 돼요. 아, 우리는 다시는 한 가족이 될 수 없겠구나, 그렇지? 여기서 아버지는 아버지의 삶이 있고, 서로 분리된 두 개의 인생을 사는 거죠.

 

제겐 아직도 그 빌어먹을 일로 상처가 남아 있어요. 거짓말은 못 하겠네요.

 

다행히 제 그랑-페레는 장정 열 명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분이셨어요. 올드 스쿨이고 알파 같은 분이셨죠. 팟캐스트에서 접하는 그런 거 말고요. 진짜 알파를 말하는 거예요. 목소리가 어찌나 깊은지 벽이 다 울릴 정도였어요.

 

말씀을 하실 필요도 없었어요.

 

그저 깊게 한숨 한 번 쉬시면, 다들 자세를 바로 했죠.

 

할아버지는 축구를 사랑하셨어요. 집이 너무 시끄러워지고 모두에게 짜증이 나시면, 맨 위층으로 올라가 버리셨죠. 거기엔 테라스가 딸린 방이 있었는데, 그곳이 할아버지의 성역이었어요. 초대받지 않으면 거기엔 올라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항상 초대받았죠. 무슨 이유에선지 저는 할아버지를 한 번도 성가시게 한 적이 없었거든요. 우리는 거기 앉았고, 할아버지가 제게 책을 읽어 주시며 지혜를 나눠 주시곤 했어요. 어떤 때는 코란이었고, 어떤 때는 책이나 신문이었죠. 그분의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우리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저녁을 먹었어요. 할아버지는 반드시 양파 소스를 곁들인 밥과 생선을 드셔야 했어요.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껏 멋을 내셨죠. 이 덩치 큰 양반이 세네갈 전통 카프탄을 입고 향수를 뿌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랑-페레, 축구 보는데 왜 그렇게 좋은 냄새가 나야 해요?”

 

제 생각에 그건 할아버지 나름대로 경기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결혼식에 정장을 차려입고 가는 것처럼요.

 

할아버지에게는 커다란 갈색 의자가 있었는데, 그게 할아버지의 왕좌였죠. 그 의자엔 감히 아무도 앉지 못했어요. 저는 카펫에 누워서 경기를 봤죠. 지금도 그 카펫 냄새가 생생해요. 세네갈에서는 향을 많이 피우는데, 향 냄새와…… 오래된 냄새가 어우러진 그 아름다운 향기가요.

 

저는 늘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축구 선수가 되려면 벨기에로 가야 해요!”

 

저와 형은 매일같이 엄마를 졸라 댔어요.

 

“제발, 제발, 제발, 우리 가요!”

 

하지만 엄마는 오랜 세월에 걸쳐 본인의 물리치료 사업을 일궈 온 분이셨어요. 성공한 여성이었죠. 상상해 보세요. 열한 살짜리 아이가 “꿈을 좇을 수 있게 엄마가 가진 걸 전부 포기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어떻게 하셨는지 아세요?

 

우리가 꿈을 좇을 수 있도록 모든 걸 포기하셨어요. 진짜 모든 걸 전부요.

 

지금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네요. 그때는 엄마가 무엇을 각오하신 건지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냥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는 어린애였죠. 저는 특별하지 않았어요. 다카르에서 축구 좀 하는 애였을 뿐이에요.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애였죠.

 

그런데 어느 날 밤, 엄마가 무너지셨던 게 기억나요.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희 정말 진심이야?”

 

우리는 말했어요. “진심이에요! 우리 할 수 있어요!”

 

엄마는 말씀하셨어요…… 하하하…… 이거 말하면 엄마한테 혼나겠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벨기에까지 가는 거라면, 헛짓거리(bullshit) 하려고 가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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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페레에게 말하는 게 가장 힘든 부분이었어요.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반대하셨죠. 우리가 없으면 심심하실 거란 걸 아셨던 것 같아요.

 

이제 누구랑 축구를 보지? 모두에게 짜증 날 때는 누구랑 이야기하지?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보시고는 허락해 주셨어요. 세네갈에서는 할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끝이에요. 절대 안 돼요. 결국 형은 학교를 마치려고 세네갈에 남게 됐고, 그래서 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만 새로운 나라에서 삶을 시작하게 됐죠.

 

떠나기 전에 그랑-페레가 제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요. “이제 네가 이 집의 가장이다. 어머니를 지켜라.”

 

저는 열한 살이었어요.

 

우리는 가방만 챙겨서, 다른 건 아무것도 없이 비행기에 올랐어요.

 

바로 그때 큰누나 멜리사가 이 이야기에 등장해요. 제 두 번째 천사죠. 누나는 저보다 열두 살이 많아요 —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는 다른 누나죠. 누나는 거의 평생을 벨기에에서 살았어요. 처음엔 낯선 사람 같았지만, 제 구원자가 됐죠. 그녀는 늘 저를 축구장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병원에 좋은 직장이 있었던 누나는 포크, 숟가락, 담요, 뭐든지 가져다줬어요. 그리고 놀라운 건 누나의 어머니까지 도와주셨다는 거예요. 흔히 말하잖아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요. 그렇게 하루하루, 우리는 보금자리를 만들어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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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처음 갔을 때가 기억나요. 저는 바지가 다섯 벌 있었어요. 요일마다 한 벌씩이었죠. 그래서 신발 두 켤레랑 잘 매치해서 입는 데 정말 도가 텄어요.

 

좋아, 오늘은 꽤 잘 입은 것 같아. 다들 모르겠지만 사실 오늘은 월요일인데 나는 목요일 바지를 입고 있지.

 

이민자 아이라면 누구나 월요일에도 몰래 입고 가는 ‘목요일 바지’ 같은 게 있어요. 어쨌든 우리는 어떻게든 해내죠.

 

문화 충격이었어요, 거짓말은 못 하겠네요. 저는 새 친구를 사귈 생각에 정말 신났어요. 세네갈에서는 사람들이 정말 개방적이라서, 전학을 가면 첫날부터 모두가 다가와 말을 걸고, 하루가 끝날 무렵엔 새 친구가 스무 명은 생기거든요.

 

그런데 벨기에에서는……

 

이거 험담은 아니고요, 그냥 다른 거예요.

 

첫날, 저는 교실에 늦게 들어갔는데, 교실에서 흑인 무슬림 아이는 저 혼자였어요. 모두가 그냥 저를 이렇게 쳐다보더라고요……

 

😐

 

정말 좋은 학교였어요. 벨기에에서 손꼽히는 학교 중 하나였죠. 그게 우리나라의 멋진 점이에요. 부자가 아니어도, 이전 학교 성적만 좋으면 입학할 수 있고, 게다가 전부 무료예요. 문제는, 다들 이미 서로 아는 사이였다는 거죠. 점심시간이 됐는데, 누군가 제게 처음 건넨 질문이 — 인사도 없이, 뜸도 안 들이고, 영어로 —

 

이 애가 묻더라고요. “너 사는 데, 거기 사자 있어?”

 

저는 이랬죠. “사자? 나 도시에 살았거든. 너 다카르 몰라? 우리 스카이프도 쓴다, 친구.”

 

그건 악의가 있는 무지가 아니었어요. 걔는 정말로 세네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거예요. 제가 프랑스어로 말하기 시작하니까, 애들은 모두 “오. 멋진데. 좋아.”라는 반응이었죠.

 

그 주가 끝날 무렵엔 우리는 완전 친해졌어요. 그중 몇 명은 지금까지도 좋은 친구예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실제 삶보다 축구에 적응하는 게 훨씬 어려웠어요. 축구에 대해 늘 듣던 얘기랑은 정반대인 셈이죠. 그 홍보용 문구요. “축구장 위에서는 우리 모두가 똑같다.”

 

진실은 그보다 복잡해요.

 

열다섯 살에 저는 첫 정식 클럽으로 쥘터 바레험(SV Zulte Waregem)에서 뛰기 시작했어요. 벨기에의 네덜란드어권 지역에 있는 팀인데, 저는 네덜란드어를 못했죠. 그리고 사람들은 절대 그 사실을 잊게 해 주지 않았어요! 솔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다들 저를 이런 눈으로 봤어요. “네덜란드어 못하는구나, 그렇지? 🙄 그래, 우린 너를 모른다.”는 식이었죠.

 

저는 생각했죠: 좋아, 난 4개 국어를 하지만 아직 네덜란드어는 못해. 그래. 난 최선을 다하고 있어, 친구.

 

경기에 나갈 수조차 없었어요. 제 앞에서 뛰던 선수는, 그 아빠가 구단의 스폰서 중 한 명이었거든요. 저랑 감독은 잘 안 맞았어요. 감독은 일부러 저를 경기 시작 1분부터 몸을 풀게 했어요. 말 그대로 89분 동안 사이드라인에서 스프린트만 했죠. 그러다 운이 좋으면 2분쯤 교체로 들어가는 거예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세상에…… 엄마가 이것 때문에 자기 삶을 포기하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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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더는 어두워질 수 없을 것 같던 그때, 어느 날 밤 훈련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모든 게 칠흑처럼 캄캄해졌어요.

 

그때 저와 멜리사 누나에게는 이런 루틴이 있었어요. 제가 진흙투성이에 흠뻑 젖은 채로 집에 오면, 누나는 담요를 포근하게 덮고 침대에 누워서 〈카다시안 따라잡기〉를 보고 있었죠. 누나에게는 그게 세 시간 동안 얼어붙는 빗속에서 저를 기다린 뒤 먹는 위로 음식(comfort food)같은 것이었어요.

 

그러면 저는 TV 옆에 서서, 안 보는 척하면서 사실은 보는 그 짓을 하곤 했죠.

 

“에이, 진짜? 카다시안?”

 

어떤 건지 아시죠. 그냥 TV 옆에 서서, 뒷짐 지고, 완전히 빠져들진 않은 척하는 거요.

 

누나는 저를 곁눈질로 보며 이러죠. “왜 이래, 너도 앉고 싶잖아.”

 

저는 끝까지 가짜 알파였어요. 모든 걸 부인했죠.

 

“알았어, 근데 나 그냥 추워서 그래. 담요나 줘. 클로이는 어떻게 됐어?”

 

허세였어요. 이제는 인정할 수 있어요. 카다시안 가족 모두에게: 사과드립니다. 사실 저 여러분을 몰래 좋아했어요. 완전 푹 빠져 있었죠. 하하하.

 

훈련을 마치고 집에 오는 그 순간엔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 그렇죠? 특히 춥고 비참한 날엔 더요. 축구 선수라면 제 말을 이해할 거예요. 온몸이 쑤시고 지쳐 있지만 — 그건 기분 좋은 쑤심이에요. 그냥 거기 앉아서 가족과 함께 시답잖은 걸 보고 싶은 거죠. 그럴 자격을 내가 스스로 벌었다는 걸 아니까요. 머릿속으로 그날의 하이라이트를 돌려 보면서요. 발을 녹이고요. 그게 하루 중 최고의 순간 아닌가요? 저는 그게 정말 좋아요. 그게 그 시절 우리의 루틴이었죠.

 

어느 날 밤, 평소처럼 쉬고 있는데 누나가 뜬금없이 말했어요. “있잖아,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어. 사실 몇 주 동안 너한테 말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어.”

 

우리 가족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거든요. 누나가 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대사를 던진 거예요. 저는 그냥 멍해졌어요. 어렴풋이 알았죠. 야, 내 인생이 바뀌려나 보다.

 

누나가 말했어요. “응 ………. 나 암이야.”

 

“뭐? 장난치지 마.”

 

“나 암이야. 다음 주에 항암 치료 시작해.”

 

이걸 말하기 정말 부끄럽지만, 저는 축구 선수잖아요? 그래서 곧장 ‘축구 선수 모드’로 들어갔어요. 마치 누나가 경기에서 승점 3점을 날렸다고 말한 것처럼 굴었죠. 저는 말했어요. “암? 씨*. 정면으로 맞서는 거야. 우린 싸운다.”

 

그게 제가 늘 저 자신을 지키는 방식인 것 같아요. 명심하세요, 누나는 이 모든 걸 울면서 말하고 있었어요.

 

저는 말했죠. “어쩔 수 없지 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정신으로. . 우린 계속 간다.”

 

(누나의 주석: 사실 걔가 실제로 한 말은 “왜 이래, 우리가 겁쟁이도 아니고”였어요.)

 

😂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누나가 웃기 시작했어요.

 

누나는 이랬죠. “내 동생 진짜 미쳤네.”

 

웃음에 눈물이 섞이고, 거기에 또 웃음이 섞였어요. 누나는 곧바로 비즈니스 모드로 돌입했죠.

 

“항암 치료받는 동안엔 너 훈련에 못 데려다줘. 그래도 방법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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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계속 살았어요. 주말에 토너먼트가 있던 게 기억나요. 눈이 와서 기차가 다 취소됐죠. 경기장까지 90분 동안 운전하여 데려다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누나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분이 도와줬어요.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차가 몇 대 없었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제시간에 도착했다는 것은 이미 10분 늦은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누나 친구가 차를 돌려 집으로 가 버리기 시작했어요.

 

문은 잠겨 있었어요. 주변엔 아무도 없고요. 저는 눈 속에 서서 기다렸죠. 팀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어요.

 

한 20분쯤 지나서 감독이 문을 열었어요.

 

네덜란드어로 그가 말했죠. “어이, 아마두, 너 여기서 뭐 해?”

 

저는 말했어요. “네? 우리 토너먼트 있잖아요.”

 

그가 말했죠. “아, 너한텐 안 알려 줬나?”

 

그는 부모들 한 명 한 명에게 전부 전화를 돌렸더라고요. 우리 어머니한텐 안 했어요. 우리 누나한테도 안 했고요. 우리만 빠진 거예요.

 

근데 뭐, 괜찮아요. 그가 한 말이나 행동이 문제가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면, 그 얼굴에 떠오른 *같은 함박웃음이었어요. 그건 숨길 수가 없죠. 저는 죽는 날까지 그 미소를 기억할 거예요.

 

그 일을 평생 정신적 영수증으로 간직해 왔어요. 막 축구를 포기하고 싶었던 바로 그 순간, 오히려 그게 제게 연료가 됐죠.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고, 저는 눈 속에서 데리러 올 차를 기다리며 계속 이런 생각을 했어요. “좋아. 복수해 주지. 언젠가 당신이 TV로 국가대표팀에서 뛰는 나를 봐야 할 때, 누가 웃게 되는지 두고 보자.”

 

가장 힘들었던 건 사실 감독들이 제게 던지는 그 어떤 것도 아니었어요. 누나가 두 번째 항암 치료를 시작하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걸 지켜보는 거였죠. 그게 저를 무너뜨렸어요. 저는 모두에게 그걸 숨겼어요. 겉으로는 밝은 아이였죠. 하지만 누나가 숨을 헐떡이고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걸 보면, 매일 울고 싶었어요. 우리는 가족을 보러 세네갈로 여행을 갔고, 조부모님 댁 테라스에서 누나의 머리를 밀기로 했어요. 저는 누나가 직접 밀 줄 알았어요. 그런데 누나가 저를 보더니 말했죠. “네가 해 줬으면 좋겠어.”

 

저는 거의 무너질 뻔했어요. 하지만 누나가 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말로 마음에 든다는 듯 웃는 걸 보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숨을 쉴 수 있었어요. 정말 안도감이 들었죠. 고향에 돌아와 있는 것, 그게 우리에게 계속 나아갈 힘을 줬어요. 그냥 바닥에 누워서 카펫 냄새를 맡던 게 기억나요. 향과 옛 시절의 냄새요.

 

우리는 벨기에로 돌아왔고, 저는 몇 경기에 출전했어요 — 잔디를 밟은 게 한 대여섯 경기쯤 됐던 것 같아요. 누나가 아프기 직전에 휴대용 카메라를 하나 샀는데, 사이드라인에 서서 저를 찍어 주곤 했어요. 누나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전공이 국제경영이었거든요. 그런데도 컴퓨터 앞에 몇 시간씩 앉아서 유럽 모든 구단 스카우트들의 이메일을 검색했어요.

 

하룻밤 사이에 누나는 슈퍼 에이전트로 변신했죠.

 

누나는 그들에게 자기가 만든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이메일로 보냈어요. 그것도 비즈니스 이메일처럼요.

 

“안녕하세요. 아마두 오나나를 아시나요? 한번 연락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을 담아, 멜리사 드림.“

 

저는 이랬죠. “아, 그렇게 막 보내면 안 돼!”

 

누나는 말했어요. “왜 안 돼? 클릭.”

 

그리고 뭐, 솔직히,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유럽 모든 클럽의 스팸 폴더에는 우리 누나가 보낸 이메일이 있어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레알 베티스. 울버햄튼. 번리. 모두들, 스팸함 확인해 보세요. 여러분에겐 제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저를 영입할 기회가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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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에서 돌아오고 몇 주 뒤, 소식을 받았어요.

 

“호펜하임(*주: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 프로축구단 TSG 1899 호펜하임)에서 너를 한번 보고 싶어 해.”

 

만 18세 미만일 때는, 트라이얼을 보러 갈 수 있도록 소속 구단에서 방출 동의서에 서명을 해 줘야 해요. 우리 감독은 그 서류에 서명하는 데 몇 를 끌었고, 마침내 서명해서 제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벨기에에서도 출전 시간을 못 얻는 놈이 독일까지 테스트를 받으러 가겠다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군.”

 

네, 좋아요. 영수증 또 하나 챙겨 둡니다.

 

멜리사 누나는 목발 없이는 거의 걷지도 못했지만, 저와 함께 기차를 타고 호펜하임까지 같이 갔어요. 무지 추웠어요. 영하 12도였죠.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했는데, 헷갈렸어요. 기차에서 내려서 짐을 다 들고, 다음 기차가 어디서 출발하는지 물어볼 사람을 찾으려고 앞서 달려갔던 게 기억나요.

 

뒤를 돌아봤는데 — 이 장면은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 누나가 보였어요. 검은 코트에 빨간 넥워머, 그리고 짙은 자줏빛 모자를 쓰고 있었죠. 빡빡 민 머리. 목발. 누나는 승강장을 가로질러 걷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절뚝거리며 숨을 헐떡였죠. 너무나 약해진 채로요. 하지만 싸우고 있었어요…… 싸우고 있었죠.

 

그리고 누나가 그냥 저를 바라봤어요.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 순간이 제 인생을 바꿔 놓았어요.

 

저는 그냥 깨달았죠: 너는 절대 실패할 수 없다.

 

누나가 내가 꿈을 좇을 수 있도록 저 승강장을 말 그대로 온몸을 끌다시피 건너고 있는데, 그렇다면 내가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어?

 

그 순간 이후로, 저는 축구장 위에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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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우리는 호펜하임에 도착했고 그들은 저를 풋보노트(Footbonaut)에 집어넣었어요. 미래에서 온 것 같은 큐브예요. 전부 로봇으로 돼 있고, 공이 여러 각도에서 날아오면 그걸 컨트롤해서 불이 켜지는 칸 안으로 패스를 넣어야 해요. 무슨 〈오징어 게임〉 같았죠. 제가 잘했는지 못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어요.

 

끝나고 나서 코치 한 명이 멜리사 누나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방금 본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훈련시켜 볼 것도 없어요. 저 친구를 원합니다.”

 

그 코치의 이름은 다니 갈름(Danny Galm)이에요. 지금까지도 저는 그분에게 문자를 보내요. 프리미어리그에 입단했을 때도,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고 편지를 썼죠. 1년 사이에 저는 쥘터 바레험에서 거의 그만둘 뻔하고, 눈 속에 홀로 서 있던 처지에서, 독일로 이적하는 데까지 온 거예요.

 

어느 날 제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어요.

 

그랑-페레에게서 온 전화였죠.

 

저는 말했어요. “그랑-페레! 어떠세요? 오늘 심술난 날이에요?”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이건 시작일 뿐이다. 길을 잃지 마라.”

 

그러고는 전화를 끊으셨죠.

 

할아버지 말씀이 옳았어요.

 

호펜하임. 함부르크. 릴. 에버튼. 아스톤 빌라. 그건 그냥 축구일 뿐이에요. 좋은 축구 이야기를 원한다면, 좋은 축구 경기를 보면 돼요. 제가 말하는 건 인생이에요. 우리가 소홀히 하는 게 바로 이거죠. 이런 이야기들, 이런 장면들 ― 그게 제 이키가이(生き甲斐)예요. 제가 좋아하는 일본어인데요. 제 ‘’예요. 제가 존재하는 이유죠.

 

우리가 공기 주입식 매트리스에서 자는 동안, 작은 소파에서 잠들던 엄마.

 

승강장을 절뚝이며 건너던 누나.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때 저를 곁에 둬 주셨던 그랑-페레.

 

이 모든 게 제 이키가이예요. 힘들었던 일들까지도요. 저는 그 고통을 잊지 않아요.

 

홀로 추위 속에 있던 저를 보고 면전에서 웃던 감독의 그 고통.

 

관중석에서 “야, 얘는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던 모든 부모들의 그 고통.

 

저는 모든 영수증을 가지고 있어요. 절대 원한에 사로잡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절대 잊지도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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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25/26 시즌, 오나나가 속한 아스톤 빌라 FC가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함)

 

 

결국 이 나라는 제게 모든 걸 줬어요. 벨기에 사회복지 서비스는 우리가 절박했을 때 식탁에 음식을 올려 줬어요. 병원은 멜리사 누나의 목숨을 살렸고요. 학교는 평생 친구들을 줬죠. 축구 아카데미는 제 꿈을 살아 낼 기회를 줬고요. 저는 벨기에에 많은 빚을 졌어요. 그리고 제 상처들도요.

 

아름답지 않나요? 저는 열한 살에 흑인이자 무슬림 이민자로 이 나라에 왔어요. 축구를 통해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됐죠. 월드컵에서 모로코를 상대로 선발 출전했을 때가 기억나요.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저는 우리 가족이 앉아 있는 관중석을 올려다봤어요. 카타르의 관중은 90%가 빨간색을 입은 모로코 사람들이었어요 — 그들의 빨강이었지, 우리의 빨강이 아니었죠. 그래서 오히려 우리 어머니와 누나들을 단번에 찾을 수 있었어요. 그들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죠.

 

그 순간 드는 생각은 오직 이거예요. 이게 말이 돼??? 우리가 여기 와 있다니!!!!!!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지금도 전율이 일어요.

 

그랑-페레는 고향에서 본인의 왕좌에 앉아 이렇게 말하고 계셨겠죠. “집중해, 응? 집중하라고, 얘야.“

 

제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는, 그 월드컵 이듬해에 케빈 더 브라위너가 처음으로 제게 주장 완장을 건네줬을 때였어요. 친선 경기 막바지에, 단 몇 분 동안이었죠. 하지만 제겐 월드컵 선발 출전만큼이나 큰 감격이었어요. 정말 가슴 깊이 사무쳤죠. 케브가 경기장을 둘러보다가 저를 봤고, 무슨 이유에선지, 저를 선택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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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2023년 3월 독일과의 친선전에서 주장 완장을 착용한 오나나)

 

 

저도 축구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벨기에도 완벽하지 않죠. 하지만 그게 가진 힘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어요? 그게 바로 이민자 이야기예요. 사람들이 들려줬으면 하는 바로 그 이야기죠.

 

있잖아요, 그 일은 우리 그랑-페레마저 감정에 북받치게 만들었어요. 제가 주장 완장을 차고 몇 달 뒤에, 제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는데, 한 기자가 할아버지와 인터뷰를 했어요. 도대체 어떻게 할아버지를 찾아냈는지도 모르겠어요. 할아버지도 나이가 드시면서 마음이 약해지셨나 봐요. 아무튼 그들이 할아버지에게 저를 위한 영상 메시지를 녹화하게 했어요. 자라면서 저는 할아버지가 저를 사랑한다거나 자랑스러워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감정들은 우리 일상의 말투에는 사실 존재하지 않거든요. 그냥…… 암묵적으로 이해되는 거죠. 저는 그걸 느꼈지만, 한 번도 직접 들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날 전까지는요.

 

할아버지 목소리는 제가 늘 기억하던 것보다 부드러웠어요. 머릿속에서 조부모님은 절대 나이를 먹지 않잖아요. 제게 할아버지는 여전히 왕좌에 앉은 왕이에요. 할아버지가 곧 아흔이 되신다는 걸 저는 계속 스스로에게 일깨워야 해요. 물론 할아버지는 흰색 카프탄에 흰색 쿠피(이슬람 모자)를 쓰고 계셨죠. 아마 향기도 끝내주게 좋으셨을 거예요.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아마두? 음, 행복한 아이였어요. 아주 느긋하고. 예의 바른 녀석이었죠.”

 

그러더니 축구 선수로서 제 장점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셨어요. 하하하. 역시나요!

 

“기술이 아주 좋고. 시야도 넓고. 항상 팀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돼 있었지……”

 

전형적인 그랑-페레.

 

그런데 그다음에 할아버지는 평생 제 마음에 남을 말씀을 하셨어요.

 

“그 애는 꿈을 좇아 집을 떠났고, 지금 그 자리에 오기까지 모든 걸 스스로 일궈 내야 했죠. 좋은 녀석이에요. 그리고 난 그 애가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그렇게 펑펑 울어 본 적이 있었나 싶어요. 지금 이걸 떠올리며 이 페이지 위에 눈물을 흘리고 있네요.

 

그게 바로 제가 평생 좇아온 거였어요.

 

그랑-페레, 모든 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를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https://www.theplayerstribune.com/amadou-onana-world-cup-soccer-epl-premier-league-aston-villa-belgium

 

 

❤️ 멜리사 누나는 건강을 되찾았고 오나나의 에이전트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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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나나가 월드컵을 앞두고 발표한 노래 <We are Belgium>

https://youtu.be/2x2NIEoyoyU

 

 

🎶 팬들과 노래를 즐기는 오나나

https://x.com/BelRedDevils/status/2063289954516537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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