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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도장만 쿵쿵" 선관위 전현직들 입 열었다… "신의 직장, 괜히 나온 말이겠나"

무명의 더쿠 | 11:22 | 조회 수 1693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936043?ntype=RANKING

 

선관위 전현직 인사가 폭로한 조직 실태
위원회 장악력↓... "사무처, 보고도 안 해"
'선거 시즌 휴직' 등 기강 해이... 견제도 없어
"정치인 자문 혈안... 정작 본연 업무는 소홀"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3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청사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시스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3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청사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시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모한 판단이었다."

현직 중앙선거관리위원 A씨는 9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부른 용지 인쇄 비율 하한 조정(유권자 60%→50%)은 사무총장 전결로 이뤄졌지만, A씨를 비롯한 중앙선관위원들도 경찰에 고발된 상태다.

A씨는 사태의 전말을 확인한 뒤 '조직 내 다중 부실'을 뼈아프게 반성했다. A씨는 "사용하지 못하고 남는 용지가 부담이 돼 최소 인쇄 기준을 50%로 줄이는 무모한 판단을 했다"며 "투표용지 부족을 대비한 현장 매뉴얼조차 없어, 결국 초유의 사태에 우왕좌왕하다 투표 중단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3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시민들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3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시민들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이번 사태는 형식적인 의사결정과 안일한 리스크 관리, 무능한 현장 대응이 겹친 결과였다. 선관위는 대체 어떻게 운영돼 왔던 것일까. 복수의 전현직 선관위 관계자가 한국일보에 그 실태를 전했다.
 

 

"도장만 쿵쿵"... 제 역할 못하는 선관위원



선관위원들은 선거법 조항에 대한 유권해석을 하고 선거 규칙을 만들 때 위원회를 열어 의결권을 행사한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지만 대부분 비상임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우 위원 9인 중 상임은 1명뿐이다. 한 전직 상임위원은 "비상임은 '파트타임', 즉 부업이다"며 "부업으로 선거 업무를 다루는데 무슨 책임 의식을 갖겠냐"고 꼬집었다.
 

시각물=박종범 기자

시각물=박종범 기자

대법관이 위원장을 겸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선관위 회의에 참석하다 보니 조직 내부 사정이나 선거 제도 운영에 대한 이해도는 물론, 조직 장악력도 떨어진다. "사무처에서 대부분의 결정을 내리고 위원회는 결재 서류에 도장만 찍는다"는 게 전현직 위원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선관위 사무총장 출신의 한 인사는 "'스타벅스 탱크 사건'처럼 진지한 검토 없이 업무가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중략) 6·3 지방선거 전 투표용지 최소 인쇄 기준을 기존 선거인 수의 60%에서 50%로 낮추는 과정 역시 별도 회의를 거치지 않고 내부 결재로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박종범 기자

그래픽=박종범 기자

선관위 근무 당시를 이렇게 기억하는 선관위원도 있었다. "상임위원에게 주어진 5급 이상 인사권도 사무처에서 쥐고 있는 등 조직 운영이 엉망이라 개선해보려 했더니 사무총장이 '편하게 지내다 조용히 나가시죠'라고 얘기하며 노골적으로 저지했다. 수십 년간 방치된 부패한 조직이란 인상을 떨칠 수 없었다."
 

 

견제받지 않은 채.. "조직 전체가 기강 해이"

2023년 6월 2일 오전 노태악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고위직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취재진에게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뉴시스

2023년 6월 2일 오전 노태악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고위직 간부 자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취재진에게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뉴시스

견제 장치가 없다는 점은 조직을 더욱 곪게 만들었다. 2023년 감사원이 선관위 사무처 고위직의 자녀 채용 특혜와 관련해 직무 감찰을 한 것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하자 선관위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경남의 한 지역 선관위에서 위원장을 역임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신의 직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선거가 없을 때는 할 일이 없고, 선거 때는 이런저런 핑계로 휴직하는 사람이 많다. 특정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기강이 굉장히 해이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중앙선관위로부터 받은 10년(2016년 1월~2025년 12월)간 선관위 내 휴직자 현황을 보면, 선거 때는 휴직자가 늘고 끝나면 줄어드는 일이 반복됐다. 20대 대선(3월 9일)과 제8회 지방선거(6월 1일)가 연달아 열린 2022년에는 휴직자가 처음으로 200명을 넘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그해 7월부터 휴직자는 다시 100명대로 내려갔다. 휴직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지만, 업무가 몰리는 선거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조직문화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게 선관위 안팎의 지적이다.
 

그래픽=박종범 기자

그래픽=박종범 기자

선관위 직원들의 부패 및 실책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됐지만 조직 내부에선 반성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자녀 채용 특혜 사건 당시 중앙선관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데도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보다 '우리를 왜 이렇게 범죄인처럼 취급하냐'는 불만을 터뜨릴 뿐이었다. 잘못을 지적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권이 우릴 미워한다'며 합리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선관위가 논란이 일 때마다 자체 태스크포스(TF)나 혁신기구를 꾸리지만 여론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도 불신이 쌓인 영향이 크다. 책임을 인정하고 조직문화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비판 여론을 넘기기 위한 형식적 대응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공생 '혈안'... 현장 인력난 '방치'



선관위가 선거 관리라는 본연의 업무보다 정치인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는 유권해석에 치중해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출신의 한 인사는 "조직에서 출세하려면 선거 사무 분야가 아니라 법제 해석 분야에서 눈에 띄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며 "선관위가 정치인에게 법적 면죄부를 주는 '로펌' 역할을 해온 것 아닌가"라고 자조했다.

정치권과 선관위의 기묘한 공생관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선거법 위반 여부를 결정하는 선관위의 유권해석 권한 때문에, 정치인들은 선관위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강력한 개혁이나 비판을 주저해 왔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의 전 중앙선관위원은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인 중에서 생사여탈권을 쥔 선관위를 정면으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규탄 및 선거관리 제도 전면 개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규탄 및 선거관리 제도 전면 개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선관위 내부에 문제가 쌓이다 보니,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실한 현장 관리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인력 부족 문제가 대표적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던 송파구선관위에선 선관위 직원 10여 명이 140여 개 투표소의 개표를 맡다 보니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다. 김규범 국가공무원노조 선거관리위원회지부 위원장은 "기획 역할을 하는 중앙선관위 (사무처) 인원을 절반으로 줄여 지역에 재배치하라는 요구가 노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에는 전국 선관위 직원 3,000여 명 가운데 10% 정도가 집중돼 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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