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짤로 유명한 그 파란 비닐우산이 무슨 조선시대 구한말 개화기도 아닌데 대나무로 살이 되어있던 이유



비닐우산이 등장하기 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나무 살에 기름 먹인 한지를 붙인 ‘지(紙)우산’을 썼음
당시 전국에는 대나무를 쪼개어 우산대를 만드는 숙련된 기술자들과 공장 인프라가 이미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던 환경
60년대 들어 석유화학 산업의 발전으로 '비닐'이라는 아주 싸고 질긴 방수 신소재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자,
기존의 우산 공장들은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설비를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것.
기존 대나무 프레임은 그대로 계속 생산해내면서
비싼 기름종이 대신 값싼 비닐만 얹어서 찍어내기 시작함
대나무는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 흔하디흔해 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았고,
복잡한 기계 없이도 사람 손이나 간단한 도구로 쉽게 쪼갤 수 있어 인건비 비중이 컸던 당시 환경에 딱 맞았음
대나무는 또한 가벼우면서도 바람이 불면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휘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탄성이 있어서
현대 우산에 쓰이는 고급 유리섬유(FRP) 살대의 역할을 잘해냈고
처음 나왔던 1960년대 비닐우산은 대나무 살이 무려 30개나 들어가서 튼튼했다고 함
하지만 점차 가격 경쟁이 붙으면서 제조사들이 원가를 줄이려고
대나무 살의 개수를 24개, 12개, 나중에는 9개까지 줄여버리니까
바람만 불어도 뒤집히고 찢어지는 퀄리티로 전락해버림

1990년 12월 28일 당시에 대전시내 극장가에서 찍힌
파란비닐 우산 판매상인
80년대 이후로는 철제우산이 잘나와서 기존 대나무우산은 이제 일회용으로만 쓰게 되었고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저렇게 사람많은 곳에 쨘!하고 나타나서 게릴라 장사를 하는 식이었음


90년대 중반에 서울에서 팔던 저 대나무 우산을 보관하고있던 일본인과
이걸 보고 90년대 중반에 종로 극장에서 중경삼림 보고 나올 때
갑자기 비가 내려서 임시로 이거 샀다는 경험담
즉, 저 대나무 우산은 무려 90년대 중반까지도 볼 수 있었던것임
가끔 더쿠에서 이 우산으로 플 탈때 90년대 살았는데도 처음본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90년대쯤되면 이 우산은 이미 번듯한 가게에서 진열해놓고 정식으로 파는게 아니라
저렇게 서울이나 대전같은 큰 도시에서 사람들 많이 몰리는곳에 주로 출몰하며
(주로 보였던곳이 지하철역이나 극장가같은 유동인구 겁나 많은곳들임)
갑자기 비가 쏟아져내릴때 우산 안가져와서 우왕좌왕 당황하던 사람들을 타겟으로
임시 노점 게릴라장사 하던 물건이었다보니
똑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봤을수도, 못봤을수도 있는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