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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고 고궁 걷는 외국인들… K관광 ‘보는 여행’에서 ‘입는 여행’으로 [김지선의 세계는 한국여행 중]

무명의 더쿠 | 09:08 | 조회 수 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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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의 고궁 사랑은 뜨겁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의 70% 이상이 고궁을 방문한다. 명동에서 쇼핑하고 홍대에서 밤을 보내더라도 한복을 빌려 입고 고궁을 거닐며 사진 찍는 일정은 이제 서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무더운 한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화려한 치마폭과 갓, 노리개를 갖춘 관광객들이 근정전 앞마당을 걷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중에서도 경복궁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붉은 기둥과 넓은 월대, 광화문 너머 북악산의 선은 한복을 입은 이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배경이 되어준다. 그래서 경복궁에서의 한복체험은 단순한 의상 대여가 아니다. 여행자가 조선의 궁궐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장면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일이다. 고궁은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이고, 한복은 그 문화유산을 오늘의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매개가 된다. 여행자는 그 순간 관람객이면서 배우가 되고, 궁궐은 역사책의 배경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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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름의 출발점에는 2013년 시작된 한복 착용자 무료입장 제도가 있다. 한복으로 고궁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2025년 한 해 경복궁·창덕궁·덕수궁·창경궁·종묘를 한복 차림으로 찾은 입장객은 207만 명을 넘었다. 2022년 54만여 명과 비교하면 3년 사이 260% 이상 늘어난 셈이다. 외국인만 따로 떼어낸 수치는 아니지만, 고궁 앞 한복 대여점과 관광객의 긴 줄이 이 숫자를 말해주고 있다. 

고궁의 인기는 K콘텐츠와도 맞닿아 있다. 궁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은 한국의 궁궐을 세계인의 눈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방탄소년단(BTS) 역시 이 흐름에 강한 장면을 남겼다. 2020년 BTS는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한복을 차용한 의상으로 '아이돌(IDOL)' 무대를 선보였다. 저고리 깃과 고름, 노리개 같은 전통 요소가 현대적 무대 의상으로 재해석된 장면이었다. 올해 3월에는 컴백 공연 ‘아리랑’이 경복궁 앞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경복궁은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K팝의 리듬과 함께 세계로 송출되는 현재의 무대가 됐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한복과 갓의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경복궁 일대에서는 작품 속 캐릭터를 따라 검은 한복과 갓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등장했다. 외국인 관광객은 이제 고궁을 ‘보러’ 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한 K드라마, K팝, K애니메이션 속 장면을 현실에서 다시 입고 걷는다. 한복은 전통문화를 설명하는 교과서가 아니라, 한국을 몸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참여형 관광의 도구가 된다. 말하자면 고궁투어는 ‘보는 관광’에서 ‘체험하는 관광’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복체험은 결국 ‘전통문화 소비’라기보다 ‘자기 연출형 관광’에 가깝다. 관광객은 한복을 입고 궁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한국 여행의 주인공이 된다. 그 사진 한 장은 다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세계로 퍼진다. K콘텐츠가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게 했다면, 한복은 그 여행을 사진과 몸의 기억으로 남기게 한다. 그래서 한복은 무료입장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복은 한국의 시간을 입고, 서울의 공간을 걷게 하는 경험의 언어이다.


물론 논쟁도 있다. 외국인이 즐겨 입는 한복 가운데는 드레스처럼 풍성한 치마, 과도한 금박 장식, 국적을 알기 어려운 장신구가 뒤섞인 디자인도 적지 않다. 사진에는 화려하게 남을지 몰라도 자칫 한복이 지닌 단아한 선과 품격을 흐릴 수 있다. 한복은 외국인에게 한국문화를 처음 입어보는 경험이다. 그렇다면 그 경험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는 관광정책의 영역이기도 하다. 고궁 주변 대여점의 ‘국적 없는 한복’을 시장의 취향으로만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최소한의 기준과 안내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복생활’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고, 203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한 등재추진단도 출범했다. 올해 3월 국회를 통과한 '한복문화산업 진흥법'은 한복의 일상화·산업화·세계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제 한복은 명절에만 꺼내 입는 옷이 아니다. 고궁을 걷는 외국인의 발걸음 속에서, 세계와 대화하는 한국의 문화적 언어가 되고 있다.


https://naver.me/G4dtmd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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