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리뷰] 오래된 체념 여전한 위로, 연극 ‘반야 아재’
699 1
2026.06.02 19:10
699 1

‘그럼에도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로 요약되는 소냐의 긴 대사가 여전히 사무치는 것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이 빤한 세상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불안을 확인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인내력을 기르는 것뿐, 언제나 실패하더라도 살아내야 하는 슬픈 인생에 대한 저 오래된 대사는 관객 각자에게 필요한 형태로 손을 내민다.


AeWmeU

19세기 말 러시아, ‘숲의 정령’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남자 ‘바냐’가 ‘이보’라는 이름을 얻고 1930년대 조선으로 왔다. 멀고 넓은 땅 러시아에 대한 신체적 경험이 없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이름을 갖고 되돌아온 체호프의 인물들은 더욱 선명해졌다. 연극이 말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시대의 구현이 아니라 그 구조 속에서 세상과 불화하는 인간의 삶일 것이다. 개인의 이상이나 의지는 쉽게 좌절되던 1930년대, 어두운 시기에 갇힌 인간의 답답함은 체호프 인물 특유의 무기력과 잘 어울린다. 관객은 어느 시골 정미소에서 평생을 허비했다고 믿는 한 인간의 초라함을 목격하게 된다.


‘순사들의 용돈벌이가 되는 곳’ 정미소에서 무료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보, 은희, 기진, 의사 해일, 유모 점점, 이보의 어머니 말례는 늙은 교수 병후와 그의 젊은 아내 영란이 오고부터 내적 변화를 겪게 된다. 은희의 말을 빌리자면 지루함과 게으름이 전염됐다. 이보는 영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의사 해일은 자기 숲과 의술을 던져버린 채 매일같이 찾아오며, 은희 역시 새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일을 내려놓는다.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는 병후가 류머티즘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이 사랑의 작대기가 사방으로 남발된다. 저마다의 체질대로 앓고 있는 중이다. 


uKaRNc

서병후가 정미소와 재산 처분을 언급하면서 이보는 분노해 총을 들지만 이는 한바탕 해프닝으로 지나가고 남은 건 수치심뿐이다. 아슬아슬하게 감추고 외면해왔던 속내들이 한바탕 휘저어지고 난 후 변하는 것은 없고 둔중한 정미소의 기계 소리와 함께 삶의 쳇바퀴는 다시 돌아간다.


이 삶을 설득력 있게 굴리는 것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비장함 대신 생활의 질감으로 풀어낸 연기에는 인물들이 견뎌온 시간의 무게가 배어 있다. 모든 배역들에게서 그들의 시간이 읽혔고, 고통이 보였다. 늙음을 두려워하는 무능한 지식인의 초조함,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받아들인 듯 농담과 익살로 지탱하는 삶, 모든 현실을 알면서도 선의를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 등이 체호프 특유의 정서를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안착시킨다.


이 지리멸렬한 인생을 다루는 연극 ‘반야 아재’는, 의외로 사랑스럽다. 콤플렉스 덩어리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엇박자와 유머가 애틋하다. 창작진의 삶에 대한 애정과 너그러움에서 비롯된 위트는 그럼에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우리가 살면서 언젠가 짓게 될 이보의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조광화 번안·연출. 장한 번역. 손숙, 남명렬, 조성하, 심은경, 정경순, 기주봉, 임강희, 김승대, 심완준, 민재완, 김신효 등 출연. 2026년 5월 22일~2026년 5월 31.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https://www.mhj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52430


댓글 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디즈니·픽사 영화 <토이 스토리 5> 애착 토이와 함께 보는 시사회 초대 이벤트 376 06.01 63,290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275,856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2,572,631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193,90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866,395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28,633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6 21.08.23 8,582,806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2 20.09.29 7,490,853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28 20.05.17 8,708,706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2 20.04.30 8,595,949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560,242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85421 이슈 유튜버 샤머호의 동물학대를 막아주세요 21:42 47
3085420 이슈 1200만명이 본 데이식스 원필 대추노노 1 21:41 202
3085419 이슈 김우석 new 프로필 사진 3 21:40 374
3085418 유머 헐 낼이랑 모레 일콘 중계해준데 6 21:40 369
3085417 이슈 [KBO] 김성윤 역전 적시타 1 21:39 221
3085416 이슈 [KBO] SSG 랜더스 13연패 (구단 역사 최다 연패) 16 21:38 774
3085415 이슈 [KBO] 김성윤의 역전 적시타ㄷㄷㄷㄷㄷㄷ 2 21:38 281
3085414 정치 같은 지역에서 만나는 동명이인 1 21:38 223
3085413 유머 듣고 보니 틀린말 1 21:38 164
3085412 이슈 한국어 공부하며 드라마 보는 멋진 신세계 해외팬들ㅋㅋ 1 21:38 682
3085411 정치 고향 충남 찾은 장동혁 '울컥'…"국힘 패배하면 대한민국 망가져" 3 21:38 92
3085410 기사/뉴스 “300만원 간다더니 이게 맞나요?”…고점에 올라탄 개미들 비명 터졌다 7 21:36 1,297
3085409 이슈 [KBO] 짜맞춘 안무같은 정수빈&박찬호의 비판요청 2 21:36 491
3085408 이슈 언더월드 칠봉지 막내 칠복이 현재 모습 8 21:35 1,088
3085407 이슈 젠슨 황 질문기회를 날려먹는 한국 언론사 사례. 13 21:34 1,298
3085406 이슈 투바투 챌린지 함께한 유준이 ㅋㅋ 7 21:34 395
3085405 유머 진돌에 이어 정신줄 놔버린 가나디 작가 21 21:33 2,773
3085404 이슈 거의 중단발 수준의 장발 싹 다 자르고 숏컷으로 나타난 오늘자 더쇼 남돌 21:33 574
3085403 이슈 만달로리안 그게 뭔데 씹덕아.......싶은 덬들을 위한 우주쑥떡이 심화편 💚 (영화 <만달로리안과 그로구>) 6 21:32 322
3085402 이슈 [KBO] 8회말 박승규 동점 쓰리런 19 21:31 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