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로 요약되는 소냐의 긴 대사가 여전히 사무치는 것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이 빤한 세상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불안을 확인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인내력을 기르는 것뿐, 언제나 실패하더라도 살아내야 하는 슬픈 인생에 대한 저 오래된 대사는 관객 각자에게 필요한 형태로 손을 내민다.

19세기 말 러시아, ‘숲의 정령’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남자 ‘바냐’가 ‘이보’라는 이름을 얻고 1930년대 조선으로 왔다. 멀고 넓은 땅 러시아에 대한 신체적 경험이 없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이름을 갖고 되돌아온 체호프의 인물들은 더욱 선명해졌다. 연극이 말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시대의 구현이 아니라 그 구조 속에서 세상과 불화하는 인간의 삶일 것이다. 개인의 이상이나 의지는 쉽게 좌절되던 1930년대, 어두운 시기에 갇힌 인간의 답답함은 체호프 인물 특유의 무기력과 잘 어울린다. 관객은 어느 시골 정미소에서 평생을 허비했다고 믿는 한 인간의 초라함을 목격하게 된다.
‘순사들의 용돈벌이가 되는 곳’ 정미소에서 무료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보, 은희, 기진, 의사 해일, 유모 점점, 이보의 어머니 말례는 늙은 교수 병후와 그의 젊은 아내 영란이 오고부터 내적 변화를 겪게 된다. 은희의 말을 빌리자면 지루함과 게으름이 전염됐다. 이보는 영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의사 해일은 자기 숲과 의술을 던져버린 채 매일같이 찾아오며, 은희 역시 새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일을 내려놓는다.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는 병후가 류머티즘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이 사랑의 작대기가 사방으로 남발된다. 저마다의 체질대로 앓고 있는 중이다.

서병후가 정미소와 재산 처분을 언급하면서 이보는 분노해 총을 들지만 이는 한바탕 해프닝으로 지나가고 남은 건 수치심뿐이다. 아슬아슬하게 감추고 외면해왔던 속내들이 한바탕 휘저어지고 난 후 변하는 것은 없고 둔중한 정미소의 기계 소리와 함께 삶의 쳇바퀴는 다시 돌아간다.
이 삶을 설득력 있게 굴리는 것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비장함 대신 생활의 질감으로 풀어낸 연기에는 인물들이 견뎌온 시간의 무게가 배어 있다. 모든 배역들에게서 그들의 시간이 읽혔고, 고통이 보였다. 늙음을 두려워하는 무능한 지식인의 초조함,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받아들인 듯 농담과 익살로 지탱하는 삶, 모든 현실을 알면서도 선의를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 등이 체호프 특유의 정서를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안착시킨다.
이 지리멸렬한 인생을 다루는 연극 ‘반야 아재’는, 의외로 사랑스럽다. 콤플렉스 덩어리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엇박자와 유머가 애틋하다. 창작진의 삶에 대한 애정과 너그러움에서 비롯된 위트는 그럼에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우리가 살면서 언젠가 짓게 될 이보의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조광화 번안·연출. 장한 번역. 손숙, 남명렬, 조성하, 심은경, 정경순, 기주봉, 임강희, 김승대, 심완준, 민재완, 김신효 등 출연. 2026년 5월 22일~2026년 5월 31.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문화저널21 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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