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매거진=윤나애 작가] 갑작스런 휴일 일정이 생겨 아이들과 근처 계곡이라도 가볼까 생각 중이다. 어느덧 날이 이렇게 더워져서 계곡을 찾고 있으려니 작년 여름 친정 간 김에 놀러 갔던 월출산 계곡이 생각난다. 그때 유치원생인 막내부터 칠십 중반의 아버지까지 총 여섯 명이 시원한 계곡을 즐기다 갑자기 예쁜 돌 찾기 시합을 시작했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동그란 것, 납작한 것, 반짝이는 것, 줄무늬가 선명한 것. 저마다의 이유로 손에 집어 들게 만드는 돌들이 지천이었다. 아이들의 성화에 여러 번 예쁜 돌 찾기를 반복한 후에 마지막으로는 못생긴 돌을 찾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도 자신 있게 돌아오지 못했다. 나부터도 못생긴 돌이라는 걸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게 정말 못생긴 건지 갸웃거리게만 만들었다. 색깔이 다른 것도, 모양이 일그러진 것도, 흠이 있는 것마저도 계곡에서는 그냥 개성 있는 하나의 돌멩이였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었던 못생긴 돌 찾기는 끝내 승리자를 찾지 못한 채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자연은 못생긴 게 없었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은 발로 걸어 다닌 화가였다. 당시 조선 화가들은 대부분 중국의 산수화를 본보기로 삼아 가본 적도 없는 중국의 이상적 풍경을 상상하거나 배운 그대로를 화폭에 그려냈다. 하지만 정선은 달랐다. 그는 금강산을 직접 오르고 한강 변을 걷고 인왕산 자락에서 살며 그 풍경들을 두 눈으로 먼저 담았다. 그리고 나서야 붓을 들었다. 그가 남긴 사백여 점의 작품은 관념이 아니라 발바닥의 기록이었다.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751년)’는 정선이 일흔다섯 살에 그린 그림이다. 평생지기 친구 이병연이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들은 그해 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직후의 인왕산을 그렸다. 친구의 쾌유를 빌며 붓을 잡아 그린 그 그림 속 인왕산은 아름답게 정돈된 산이 아니다. 비에 흠뻑 젖은 바위는 먹을 가득 묻힌 굵은 붓으로 아래로 쭉쭉 그어내려 무겁고 육중하다. 산 아래는 안개와 구름이 뭉텅하게 깔려 있고 나무들은 선명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청명한 날의 인왕산이 아니라 비가 막 그친 직후의 날것 그대로의 순간이다.
그런데 바로 그 ‘거칠음’이 이 그림을 압도적으로 만든다. 정선은 산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고치지 않았다. 비에 젖어 무겁고 험한 그대로 자연이 스스로 말하게 두었다. 중국 산수화의 격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비평도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에게 아름다운 산수는 관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끝으로 느낀 조선의 흙과 바위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못생긴 것을 만들어 낸 건 자연이 아니라 우리의 기준이었다.
우리는 지금 계곡 옆으로 콘크리트를 쌓고 굽이치던 물길을 반듯하게 편다. 자갈밭을 고르고 잡풀을 뽑으면서 불규칙한 것들을 균일하게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을 우리는 자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이 아닌 그저 우리가 원하는 자연의 모양일 뿐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낸 것들이 혹시 못생긴 것이 아니었을까. 울퉁불퉁한 돌과 제멋대로 자란 풀, 구불구불한 물길. 우리가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치워버린 것들이 참 많다.
정선은 평생 붓을 닳게 했다. 여행하면서 써온 붓을 묻으면 무덤을 이룰 정도라고 전해진다. 그 수고로움은 자연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지금 그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기준을 앞세우기 전에 먼저 오래 바라보고 계곡의 돌 하나를 손에 들고 ‘이것이 왜 이렇게 생겼을까’ 생각해 보는 것. 거기서부터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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