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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반도체로 부유해진 대만 경제의 그림자: 대만병과 거지 슈퍼맨 [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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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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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대만의 1인당 GDP는 4만 달러를 돌파할 게 확실시됩니다. 이미 한국을 제쳤는데, 격차가 더 벌어지는 거죠. 동아시아 1위 자리를 더 굳건히 하게 됐고요.

주식시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이미 3년 연속(2023~2025년) 20% 넘는 상승률을 기록한 자취안 지수는 올해 들어서도 48% 올랐고요. 대만 증시 시가총액은 4월엔 캐나다, 얼마 전엔 인도를 제치며 세계 5위로 올라섰어요. 참고로 TSMC가 자취안 지수 시총의 42%를 차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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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만들어낸 대만 경제의 눈부신 성장.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데요. 이 놀라운 호황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를 체감하는 국민이 생각보다 적다는 점입니다. 최근 나온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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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나온 대만 취업포털 ‘예스123’의 설문조사 결과도 의외였는데요. 39세 이하 대만 직장인 중 약 40%가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재정적자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어요. 또 23%는 모아둔 저축이 아예 0이고, 72%는 현재 빚을 지고 있다고 답했고요. 무엇보다 무려 54.9%가 스스로를 “인생의 실패자”라고 여긴다는 우울한 답변을 내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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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경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그 온기를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역대급 호황을 주도하는 건 반도체 산업이고요. 거기에 속한 일부 선택받은 이들만 그 과실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TSMC를 포함한 반도체 산업은 대만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는데요. 이 분야의 고용인원은 고작 30만명. 대만 전체 노동자(1100만명)의 3%가 채 안 되죠. 범위를 IT 제조업으로 넓혀 잡아도 고용인원은 총 100만명 정도인데요. 서비스업이나 전통 제조업에서 일하는 나머지 90% 이상의 근로자엔 이 AI 붐이 딴 세상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를 실감할 수 있는 통계가 있는데요. 대만 경제가 그렇게 잘 나가고 1인당 GDP는 4만 달러라는 데도, 대만 통계청이 집계한 근로자 평균월급은 고작 4만6000대만달러(220만원)에 그쳤어요. 한국(월 383만원)의 60%에도 못 미치는 거죠. 중위 임금(일렬로 세웠을 때 가운데 수치)은 3만8000대만달러(182만원)으로 더 낮고요. 그나마 이게 지난 10년 동안 최저임금을 꾸준히 올려서 이 정도라는데요. 사실 대만은 한국보다도 평균 노동시간이 연간 100시간 이상 더 긴, 세계적으로 오래 일하기로 유명한 나라이거든요. 일은 많이 하는데, 손에 쥐는 건 보잘 것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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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대만은 물가가 싸니까 먹고살만 하지 않냐고요? 예전엔 그랬죠. 하지만 최근엔 이야기가 좀 달라졌습니다. 물가, 그 중에서도 특히 집값과 임대료가 유독 말도 안 되게 뛰었거든요.

우리가 흔히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라고 하면 홍콩을 떠올리는데요. 수도 타이베이의 최근 중위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15.41배로, 이미 홍콩(14.4배)을 넘어섰어요(참고로 서울은 13.9배). 보통의 근로자가 소득을 한 푼도 안 쓰고 15.41년 동안 모아야 겨우 집 한 채 장만한단 얘기죠. 이게 2년 전엔 16배였는데, 그나마 대만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강화하면서 좀 낮아진 겁니다. 한마디로 미친 집값이죠.


타이베이에 원룸이라도 얻으려는 사회 초년생이라면 부담은 더 큰데요. 대졸 초임(반도체 기업이 아닌 경우)은 약 3만5000대만달러(167만원)에 불과한데, 도심 원룸은 아무리 작고 낡은 방도 월 1만5000대만달러(70만원)은 줘야 해요. 월급 받아 월세 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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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따라 빈부 격차가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양극화가 심화하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여기서 꼭 해야할 질문이 있습니다. TSMC를 포함한 대만 반도체 산업이 이룬 놀라운 성공이 오로지 기업과 임직원의 역량으로 거둔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해 대만 국민이 감수해야 했던 희생과 부담은 없을까요.

바로 이 점을 지적해 큰 화제가 됐던 책이 있습니다. 4명의 대만 경제학자가 2021년 공동집필한 ‘치부의 특권(부자가 되는 특권, Privilege of Wealth)’인데요. 부제(지난 20년간 우리가 중앙은행 정책에 치른 대가)에 나와 있듯이 대만 중앙은행의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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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대만 중앙은행은 수출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대만 달러의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평가절하)하는 정책을 펼쳐왔어요.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과 비교해 비정상적으로 낮은 초저금리를 고수했고요.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으로는 미국 달러를 왕창 사서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쌓았죠(대만 외환보유액은 세계 6위로 12위인 한국보다 훨씬 많음).

통화가치를 낮추면 기업은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죠. 이런 중앙은행 정책이 수출 대기업엔 정부가 주는 일종의 보조금 혜택으로 작용했어요. 반면 수입물품을 사야 하는 일반 소비자엔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같았죠. 사실상 가계의 자산을 기업으로 이전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요.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장기간 초저금리로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쏠린 거죠. 살인적인 집값 폭등을 야기해서 국민의 삶의 질을 무너뜨리고 출산율까지 떨어뜨린 그 주범. 따져보면 바로 수출 기업 밀어주기에 올인해온 중앙은행이었던 셈입니다.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면서 대기업을 키워주는 왜곡된 정책이 이런 부작용을 낳은 거죠. 이 현상을 설명하면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를 “‘대만병’ 또는 ‘포모사 독감’이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60529/1340157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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