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재현도 문제다. 드라마는 희주를 ‘21세기’에 걸맞은 진취적 여성으로 제시하는 것 같지만, 거침없이 욕망을 드러낸다고 다 진취적인 것은 아니다. ‘대군부인’이라는 제목처럼 신분제 문제를 왕족과의 혼인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낡은 사고방식이다. 평민·혼외자·여성이라는 복합적 열외성을 가진 인물이 그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왕족과의 결혼이라면, 이는 신분제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신분제의 논리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왕실 행사인 대진연 장면에서 “서열에 맞게 걷기”를 강요당해온 희주는 당의를 입은 여성들 사이에 흰 슈트를 입고 등장한다. 이 장면은 혁명의 기호처럼 쓰이지만, “앞서 걷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관종’적 행위를 부각할 뿐이다. 희주는 신분제 사회에서 낮은 신분, 혼외자 출신, 여성이 경험해야 했던 차별에 대한 감각을 적극 활용하되, “앞서 걷는 것”으로 개선하기보다는, 그것을 앞세워 신분 상승에 성공하고 재벌로서 자신의 상징 자본과 물적 자원도 유지한다.
이런 문제는 희주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비 윤이랑(공승연)은 명문가 집안에서 어릴 때부터 왕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온 여성으로, 극 중 유일하게 왕실의 근원적 존재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대비의 이미지는 사용하되, 권위는 격하한다. 수렴청정을 대비가 아닌 대군이 맡고, 대군이 대비를 하대하고, 대비가 대군 앞에서 소복 입고 석고대죄하는 설정은 역사적 오류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지위를 낮게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대비의 행동이 짝사랑한 대군을 향한 미련과 오르지 못한 왕비 자리에 대한 한으로 귀결되는 것도 ‘20세기’에나 어울릴 법한 재현이다.
이런 여성들의 역할은 같은 소재를 다룬 과거 드라마들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며 탈권위적 행보를 보인 혜명공주가 여왕으로 즉위한 ‘궁’(2006년 MBC)도, 파격적인 설정 때문에 ‘막장 드라마’로 조롱받았지만 평민이 황후가 되어 불의한 황실을 폐지하고 황궁을 박물관으로 만든 ‘황후의 품격’(2018년 SBS)도, 저마다 한계를 지녔지만 진취적 상상력을 보여준 드라마였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어떤가. 군주제 폐지를 “혁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그 자리를 대체한 자본주의적 계급을 당연하게 승계한 여성 시이오(CEO)와 궁을 벗어나 무한 경쟁 체제에서 아들의 미래를 설계하며 학원 라이딩을 하는 엄마만 남았을 뿐이다.
물론 이런 비판을 가볍게 즐기는 로맨스물에 어울리지 않는 과잉 비판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입헌군주제라는 상상력을 동원해 역사를 끌어들였다면, 그 소재가 지금 이 시대에 굳이 왜 소환돼야 하는지 이해시키는 것도 드라마의 역할이 아닐까? 로맨스 장르라고 해서 모두 “뇌 빼고” 봐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런 점에서 타임슬립 설정을 통해 조선을 보여주는 ‘멋진 신세계’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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