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qoo

고증 오류·역사 왜곡 ‘21세기 대군부인’의 또 다른 문제들

무명의 더쿠 | 03:23 | 조회 수 29739
고증 논란 너머 드러난 낡은 사회관, 혁명인 척한 재벌 판타지

그리고 ‘멋진 신세계’가 던진 질문



“아무리 이 헬조선에서 강상의 도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해도 역사 고증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멋진 신세계’에서 300년의 시간을 초월해 조선에서 현대사회로 건너온 강단심(임지연)이 고증이 엉망인 채로 진행되는 사극 촬영 현장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비슷한 시기에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문화방송(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을 겨냥한 것처럼 읽히며 회자됐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종영됐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초반부터 고증 오류와 역사 왜곡, 무리한 설정 문제가 제기되다가 ‘동북공정’ 논란으로 번졌다. 결국 제작진과 배우들이 공식 사과하고 해당 장면들을 삭제해야 했다. 물론 대체역사물에 고증의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21세기 대군부인’은 왕실 의례와 호칭 등 현실 역사의 상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음에도, ‘대체역사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방패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이런 요소는 편리한 대로 가져다 쓰는 예쁜 장식이 아니다. 그 세계관 안에서 서사의 개연성을 만드는 매개다. 역사의 상징을 빌려오는 순간, 그게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책임도 따라온다. 대체역사물이라고 해서 모든 게 허용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증 오류와 역사 왜곡 문제만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괜찮았을까?



재벌의 선의로 메운 세계


‘21세기 대군부인’의 진짜 문제는 이 드라마가 보여준 사회관에 있다. 입헌군주제 사회에 관한 상상은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기에 좋은 소재로, 그간 여러 드라마에서 시도해왔다. ‘21세기 대군부인’도 시작은 창대했다. “600년 조선의 굳건했던 왕권은 입헌군주제 아래 바래졌지만, 권위는 남아 명예가 되었고, 힘은 계급으로, 계급은 세습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21세기 대군부인’은 초반부터 뼈대 없이 지어진 건물처럼 덜컹인다. 입헌군주제라는 토대는 개인의 기회 박탈 복원, 가족애 회복, 연애 관계 진전을 위한 극적 장치로 전락한다. 이런 문제는 이 드라마의 핵심 서사 중 하나인 군주제 “완결”을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도 드러난다.


이안대군 이완(변우석)은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군주제 폐지를 논의하고, 총리 민정우(노상현)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입헌군주제가 폐지되면 행정 권한이 강화될 위치에 있는 총리가 왜 폐지에 반대하는지 이 세계 안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총리는 성희주(아이유)와 이완 사이를 질투해 이완을 죽이려 한 빌런의 자리에 배치될 뿐이다. 왕이 군주제 폐지를 선언하자 총리는 왕실 예산 지급을 보류하며 맞선다. 이 국가적 공백을 메우는 것은 제도도, 사회적 논의도 아닌 희주의 사유재산이다. 1년치 예산을 웃도는 금액을 기부하며 희주는 이렇게 말한다. “돈 많은 외척 뒀다 뭐 해요, 이럴 때 써먹는 거지.” 드라마는 이 장면을 통쾌한 반격인 것처럼 보여주지만, 국가의 역할을 재벌의 선의로 손쉽게 대체한 것이다. 게다가 왕실 재산도 군주제 폐지 뒤 국고로 환원되지 않고 왕의 신분을 벗은 이완의 주도 아래 재단을 만드는 것으로 정리된다. 신분제를 끝냈다지만 특권은 그대로 챙긴 것이다.


이런 국가에 대한 관점은 국민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완과 희주의 열애설이 터지자, 총리는 “최저임금 동결 때문에 욕먹던 거 싹 사라질 테니까” 논란에 대응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총리의 인식처럼 드라마에서 국민은 기업이나 권력층의 여론몰이에 쉽게 휩쓸리거나 대군을 향한 팬덤으로만 존재할 뿐, 유의미한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을 내세우지만 정작 공적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적 사안이 사적 감정과 개인 욕망의 문제로 수렴되는 세계에서, 국민에 의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생략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9389.html

[주의] 이 글을 신고합니다.

  • 댓글 230
목록
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 디즈니·픽사 영화 <토이 스토리 5> 애착 토이와 함께 보는 시사회 초대 이벤트 255
  • [공지] 언금 공지 해제
  •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6
  •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2
  •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25
  •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2
  •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 모든 공지 확인하기()
    • SK증권, 삼성전자 61만원·하이닉스 400만원..목표가 또 파격 상향
    • 14:52
    • 조회 720
    • 기사/뉴스
    17
    • 할리우드는 20년 동안 Z세대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 14:51
    • 조회 613
    • 기사/뉴스
    • KBS 노조 "부산 보도국장이 국힘 캠프에 여론조사 사전유출"
    • 14:51
    • 조회 272
    • 정치
    3
    • 불법 논란에도 효과는 확실? 서울아산병원 ‘약국 셔틀’ 1년
    • 14:49
    • 조회 782
    • 기사/뉴스
    3
    • 강동서, 여성 살해한 20대 남성 긴급체포…교제살인 정황
    • 14:49
    • 조회 573
    • 기사/뉴스
    8
    • 오피셜) 제 2대 공통령 대선 결과 발표
    • 14:49
    • 조회 977
    • 유머
    8
    • “스드메 가격을 왜 공개하죠?”…‘과태료 1억’ 비웃는 결혼업체 92% 달해
    • 14:47
    • 조회 1163
    • 기사/뉴스
    15
    • [속보] 사설구급차 요양원 이송 중 신호위반하다 사고로 환자 사망
    • 14:47
    • 조회 2237
    • 기사/뉴스
    35
    • 이정후, 한 경기 5안타... MLB 데뷔 후 첫 기록
    • 14:46
    • 조회 142
    • 기사/뉴스
    1
    • 이영표 “옌스·이기혁 전술 가치 확인...본선 경쟁력 더 지켜봐야"
    • 14:44
    • 조회 47
    • 기사/뉴스
    • K뷰티 브랜드 '아누아' 켄달 제너 글로벌 앰버서더 발탁
    • 14:44
    • 조회 1353
    • 이슈
    23
    • [속보] 유영하 “박근혜, 단종처럼 모함 벗고 복위될 것…그들, 인격살인 대가 받을것”
    • 14:43
    • 조회 886
    • 정치
    27
    • 텐션 차이가 너무 귀여운 하투하 지우와 이안
    • 14:43
    • 조회 285
    • 유머
    1
    • "가난한 나라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왜 14개국만 가능했나"
    • 14:42
    • 조회 1194
    • 이슈
    4
    • 하닉때문에 우리나라도 점점 미국처럼 레이오프 쉽게 당하는 문화 생길수도 있다네
    • 14:42
    • 조회 2861
    • 정보
    21
    • [해외축구] 나이키x스트릿 의류 브랜드 (한국 잉글랜드 네덜란드 나이지리아)
    • 14:41
    • 조회 406
    • 이슈
    7
    • [속보] 한화그룹·에어로 "폭발 사고, 비통하고 안타까워…사고 수습에 총력"
    • 14:39
    • 조회 653
    • 기사/뉴스
    • 농가의 매출 20%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
    • 14:37
    • 조회 3017
    • 유머
    20
    • NCT TAEYONG 엔시티 태용 【WYLD - The 1st Album】 Album Details (MASTERPIECE Ver.) 한정반 앨범 사양
    • 14:36
    • 조회 308
    • 이슈
    3
    • “주식으로 번 돈 언제 이동하느냐가 하반기 부동산 시장 결정하게 될 것”
    • 14:35
    • 조회 643
    • 기사/뉴스
    1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