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멋진 신세계’가 던진 질문
“아무리 이 헬조선에서 강상의 도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해도 역사 고증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멋진 신세계’에서 300년의 시간을 초월해 조선에서 현대사회로 건너온 강단심(임지연)이 고증이 엉망인 채로 진행되는 사극 촬영 현장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비슷한 시기에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문화방송(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을 겨냥한 것처럼 읽히며 회자됐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종영됐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초반부터 고증 오류와 역사 왜곡, 무리한 설정 문제가 제기되다가 ‘동북공정’ 논란으로 번졌다. 결국 제작진과 배우들이 공식 사과하고 해당 장면들을 삭제해야 했다. 물론 대체역사물에 고증의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21세기 대군부인’은 왕실 의례와 호칭 등 현실 역사의 상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음에도, ‘대체역사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방패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이런 요소는 편리한 대로 가져다 쓰는 예쁜 장식이 아니다. 그 세계관 안에서 서사의 개연성을 만드는 매개다. 역사의 상징을 빌려오는 순간, 그게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책임도 따라온다. 대체역사물이라고 해서 모든 게 허용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증 오류와 역사 왜곡 문제만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괜찮았을까?
재벌의 선의로 메운 세계
‘21세기 대군부인’의 진짜 문제는 이 드라마가 보여준 사회관에 있다. 입헌군주제 사회에 관한 상상은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기에 좋은 소재로, 그간 여러 드라마에서 시도해왔다. ‘21세기 대군부인’도 시작은 창대했다. “600년 조선의 굳건했던 왕권은 입헌군주제 아래 바래졌지만, 권위는 남아 명예가 되었고, 힘은 계급으로, 계급은 세습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21세기 대군부인’은 초반부터 뼈대 없이 지어진 건물처럼 덜컹인다. 입헌군주제라는 토대는 개인의 기회 박탈 복원, 가족애 회복, 연애 관계 진전을 위한 극적 장치로 전락한다. 이런 문제는 이 드라마의 핵심 서사 중 하나인 군주제 “완결”을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도 드러난다.
이안대군 이완(변우석)은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군주제 폐지를 논의하고, 총리 민정우(노상현)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입헌군주제가 폐지되면 행정 권한이 강화될 위치에 있는 총리가 왜 폐지에 반대하는지 이 세계 안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총리는 성희주(아이유)와 이완 사이를 질투해 이완을 죽이려 한 빌런의 자리에 배치될 뿐이다. 왕이 군주제 폐지를 선언하자 총리는 왕실 예산 지급을 보류하며 맞선다. 이 국가적 공백을 메우는 것은 제도도, 사회적 논의도 아닌 희주의 사유재산이다. 1년치 예산을 웃도는 금액을 기부하며 희주는 이렇게 말한다. “돈 많은 외척 뒀다 뭐 해요, 이럴 때 써먹는 거지.” 드라마는 이 장면을 통쾌한 반격인 것처럼 보여주지만, 국가의 역할을 재벌의 선의로 손쉽게 대체한 것이다. 게다가 왕실 재산도 군주제 폐지 뒤 국고로 환원되지 않고 왕의 신분을 벗은 이완의 주도 아래 재단을 만드는 것으로 정리된다. 신분제를 끝냈다지만 특권은 그대로 챙긴 것이다.
이런 국가에 대한 관점은 국민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완과 희주의 열애설이 터지자, 총리는 “최저임금 동결 때문에 욕먹던 거 싹 사라질 테니까” 논란에 대응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총리의 인식처럼 드라마에서 국민은 기업이나 권력층의 여론몰이에 쉽게 휩쓸리거나 대군을 향한 팬덤으로만 존재할 뿐, 유의미한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을 내세우지만 정작 공적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적 사안이 사적 감정과 개인 욕망의 문제로 수렴되는 세계에서, 국민에 의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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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93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