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팁/유용/추천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8,813 46
2026.06.01 01:28
8,813 46
KywKAw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까지 찾아가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는데 성공한 오르페우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주어집니다. 그건 저승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 설명에 따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포기했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이로 인해 아내를 데려오는 일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구약 성서에서 롯의 아내도 그랬습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 받을 때 이를 간신히 피해 떠나가다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었으니까요. 금기를 깨고 뒤돌아보았다가 돌이나 소금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전세계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탐욕스런 어느 부자의 집이 물로 심판 받을 때 뒤돌아본 그의 며느리가 바위가 되고 마는 충남 연기의 장자못 전설을 비롯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여러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니까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입니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 신들의 나라에서 돼지가 된 부모를 구출해 돌아가던 소녀 치히로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에 놓인 터널을 지나는 동안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거지요.


그런데 왜 허다한 이야기들에 이런 ‘돌아보지 말 것’에 대한 금기가 원형(原型)처럼 반복되는 걸까요. 그건 혹시 삶에서 지난했던 한 단계의 마무리는 결국 그 단계를 되짚어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움 때문이든 두려움 때문이든, 지나온 단계를 되돌아볼 때 그 단계의 찌꺼기는 도돌이표처럼 지루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금 기둥과 며느리 바위는 그 찌꺼기들이 퇴적해 남긴 과거의 퇴층 같은 게 아닐까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했지요. 정해종 시인도 ‘엑스트라’에서 “그냥 지나가야 한다/말 걸지 말고/뒤돌아보지 말고/모든 필연을/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고 했구요.


그런데 의미심장한 것은 치히로가 그 힘든 모험을 마치고 빠져 나오는 통로가 다리가 아닌 터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개의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엔 다리와 터널이 있겠지요. 다리는 텅 빈 공간에 ‘놓는’ 것이라면, 터널은 (이미 흙이나 암반으로) 꽉 차 있는 공간을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더하기의 통로’라면 터널은 ‘빼기의 통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삶의 단계들을 지날 때 중요한 것은 얻어낸 것들을 어떻게 한껏 지고 나가느냐가 아니라, 삭제해야 할 것들을 어떻게 훌훌 털어내느냐,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초입을 터널로 지나면서 치히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몸으로 익히면서 욕망과 집착을 조금 덜어내는 법을 배웠겠지요.


박흥식 감독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사랑이 잘 풀리지 않을 무렵, 윤주는 봉수를 등지고 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지 마라. 뒤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되뇌지만 결국 뒤를 돌아 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쓸쓸히 확인한 것은 봉수의 부재(不在)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뒤돌아보지 마세요. 정말로 뒤돌아보고 싶다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돌아서서 보세요. 치히로가 마침내 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터널을 통과한 뒤에야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뒤돌아본 이후가 아니었던가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시네마 레터 (2007. 3. 12)

https://m.blog.naver.com/lifeisntcool/220277185788


댓글 46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더쿠X메디힐💙 더마세럼 리뉴얼 론칭! 마데카소사이드 더마세럼 체험단 모집(100인) 273 07.20 11,442
공지 [🚨필독🚨] 로그인 보안 강화📢시크릿모드 사용자들 필독 (사용안함 옵션 추가)📢 07.13 96,335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369,697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780,21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697,101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214,829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0 21.08.23 8,663,123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6 20.09.29 7,564,441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39 20.05.17 8,788,95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3 20.04.30 8,667,783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685,105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20461 이슈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갑자기 나를 제압하는 고양이 01:08 30
3120460 정치 더쿠를 너무너무 사랑하는것같은 어떤 정치인의 팬커뮤니티 01:07 133
3120459 이슈 나폴리맛피아 권성준 셰프가 새로 입양한 고양이 8 01:05 633
3120458 이슈 2주차 막방 만에 드디어 카메라 보는 썸네일 나온 남돌ㅋㅋㅋㅋ 01:05 107
3120457 이슈 대통령이 x에서 비판글을 올린 일반인을 좌표찍은 결과 5 01:05 404
3120456 기사/뉴스 장르물 홍수 속 유일한 로코... 귀신 보는 재벌 상속녀의 반전 01:03 160
3120455 이슈 발렌시아가 공계에 올라온 방탄소년단 정국 2 01:03 260
3120454 이슈 원래 있었다는 영화 <호프> 에필로그 씬.jpg (결말 강스포) 1 01:02 327
3120453 이슈 캣츠아이(KATSEYE) "Animal" Official MV Teaser 1 6 01:01 252
3120452 유머 이상하게 젓가락질 하는 싸이 01:01 257
3120451 이슈 발냄새 너무 조아함.. 우리 엄마도 이 정도로 나 사랑 안 해 2 01:00 715
3120450 이슈 한소희 카페 알바 목격담 진짜였음ㄷㄷ 3 00:57 1,974
3120449 이슈 사실상 이번 월드컵 스페인 마스코트....gif 6 00:56 936
3120448 이슈 아니 너 돼지라서 꼈어 4 00:55 861
3120447 유머 나「사람의 체온이 그리워」 00:55 250
3120446 유머 (혐주의) 등 잔털 제거 후기 레전드 - 소극성 속모증 42 00:54 1,974
3120445 이슈 투바투 X 일본 산토리 음료 콜라보 CM송 <Nice to meet ya> 미리듣기 3 00:53 104
3120444 유머 찐따는 다 내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외향적인 찐따가 존재함.txt 5 00:53 739
3120443 이슈 하츠투하츠 신곡 <ICONIC HEART> 17초 선공개 6 00:51 573
3120442 팁/유용/추천 광화문 르메이에르 2층~지하 2층 식당가에서 대충 아무거나 골라잡으면 됨 여기 있는 가게들은 종로광화문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승부에서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들임 진짜 어딜 들어가도 대충 맛있음 48 00:49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