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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 왜 이러나... 성폭력 사건 법정에서 오가는 이상한 말들

무명의 더쿠 | 18:26 | 조회 수 3678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517303?cds=news_media_pc&type=editn

 

[김소리의 세상을 읽다] 사법부의 남성중심적 시각은 왜 바뀌지 않는가?"어린 시절 치기 어린 행동이었습니다."

연락하지 말라는 피해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귀가하는 피해자를 쫓아가고, 피해자의 나체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남성 피고인의 변호인이 피고인이 20대 초반 시절 행한 일이라며 의견서에 쓴 내용이다. 피해자는 가해자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안이었다.

"피고인이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한 행동입니다. 변호인도 앞으로 잘 지도하겠습니다."

미성년 아동을 상대로 성착취물을 제작한 30대 남성 피고인의 변호인이 법정에서 한 말이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저질의 말을 미성년 아동에게 쏟아내며 성착취물을 제작한 사안이었다. 이제는 30대 남성에 대해서까지 어리다며 '실수'였다고 주장하는 판이라니. 무엇보다 언제까지 성폭력이 '어린 시절 한 번쯤 실수로 저지를 수 있는 일'로 이해되어야 할까?

판사의 '성의 표시'라는 표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성폭력 법정에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 남아있다.
ⓒ 챗GPT


피해자 대리인으로서 위와 같은 피고인 측 변론을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성폭력이 그렇게 '실수'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크게 무겁게 볼 사안이 아니)라고 한다면, 결국 피해 여성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남성들은 한 번씩 실수하니까 넘어가라'라는 말을 하는 것이나 다름 없지 않나?

그러니까 이를 피해자 입장에서 뒤집어 들으면, '성폭력 피해는 여성이라면 살다 보면 한 번쯤 당할 수도 있는 일', '그러니 그렇게 큰 일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이것이 정확히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 참으로 착잡하기는 하나, 현실이 그러한 것과 당위적으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지독하게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다.

이런 변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판사에게 '먹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이지 않냐며 판사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근저에 있는 것이다. 실제로 판사들이 법정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처럼 남성 중심 시각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에 변호인들이 위와 같은 변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피고인이 성의 표시해도 안 받겠다는 겁니까?"

아동성착취물 제작 사건에서 피해자 측은 확고하게 합의 의사가 없다고 밝히자, 판사가 물은 질문이었다. "성의 표시"라는 표현에 당황스러웠다. 성의의 사전적 정의는 "정성스러운 뜻"이다. 가해자가 조금이나마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반영하기 위해 합의를 하고자 하는 것임이 거의 분명한데, 이를 정성스러운 뜻을 보인 것으로 보다니. 나로서는 피해자에게 좀 받아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기저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리인인 내가 들어도 불편한데, 만약 피해자가 직접 들었더라면, 판사의 이야기이기에 상당한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판사가 특별히 피해자를 몰아붙이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바로 그래서 더 씁쓸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남성 중심의 시각이 물들어져 있는 것 같아서.

성폭력 가해자에게 "얼마나 고통받았겠나"라고 말하는 판사

"피고가 (형사사건) 재판받느라고 얼마나 그동안 고통받았겠습니까?"

판사가 첫 변론기일에 한 말이다.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가해자에 대해, 다른 성폭력 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민사재판)를 한 사건이었다.

피해자인 원고를 비난하는 듯한 말에 당황했다. 형사사건에서 무죄가 공소사실의 부존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확고한 대법원 판례였다. 심지어 무죄 판결을 받은 공소사실 이외에, 해당 판결문에 사실로 인정된 다른 성폭력 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어째서 피해 여성이 형사재판을 진행하며 겪었을 억울함과 힘듦은 생각하지 못하고, 어째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성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일까.

진짜 남성이 억울할 수도 있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참고로 말하면 위 사건은 결국 피해자의 승소로 끝났다. 나는 첫 변론기일 이후 판사의 위와 같은 태도가 왜 잘못되었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이유를 정말 열심히,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판사의 잘못을, 판사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지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논증하여 가해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받았다. 가해자가 항소했으나, 항소기각되었고 그대로 1심 판결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물론이고 피해자도 크게 상처를 받았다.

성폭력 법정의 풍경은 바뀌어야 한다
 

  한 지방법원의 법정 전경
ⓒ 연합뉴스


"피고가 동영상 촬영을 했다는 거죠?"

또 다른 법정이다. '아동 성착취물 제작' 범행을 저질러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의 판사가 한 말이다. '성착취물' 제작에 대해 그 폭력성과 범죄성이 제거된 중립적 표현인 '동영상 촬영'이라고 하다니, 황당했다. "당신 딸이 이런 피해를 당했어도 '동영상 촬영'이라고 말할 건가요?"라고 묻고 싶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도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인 것이다.

(중략)

이렇게 가해자에 감정이입하는 범죄 유형이 또 있을까? 살인죄에서, 절도죄에서, 주거침입죄에서 등등 다른 범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해자에 감정이입을 하지 가해자에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이렇게 법정에서조차 별것 아닌 일로 취급되니까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것 아닐까? 왜 성폭력 범죄는 쉽게 '실수'로 치부되고, 피해자가 감당하고 있는 엄청난 고통은 안(못)보는 걸까.

'실수'라고 보기도 어렵고, 정말 그렇게 남성들이 다들 "한 번쯤" 실수를 하는 지경이라면 국가가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닐까? 많은 남성들이 이토록 '실수'를 저지르는데, 국가는 이 '실수'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왜 국가는 이를 방치하는가. 이런 세상을 방치하면서 또 한쪽에서는 여성들에게 애를 낳으라고 요구하는데, 염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 남성 중심의 사고는 법정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와 같이 가해자에 감정이입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자연스럽게 피해자에 대한 가혹한 태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더 이상 법정에서 '어린 시절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라느니, '실수였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가해자에 관대하고 피해자에 엄격한 성폭력 법정의 풍경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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