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중고 학생 등하교 교통비 지원, 100만 원 상당의 교육펀드 조성, 고3의 운전면허 취득비 지원, 월 10만 원 교육수당 지급, 고3에게 100만 원 사회진출지원금 지급…
올해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21일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며 전면에 내세운 주요 공약들이다. 공약만 봐서는 진보·보수 진영 후보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보수 교육계에서 전통적으로 중요시하는 '수월성 강화'나 반대로 진보 교육계의 핵심 가치인 '경쟁 완화'와 같이 후보자의 교육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약이 아닌, 무색무취 현금성 공약이 대부분이라서다.교육감 선거가 약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과거에 비해 후보별 교육관이 담긴 의제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전과 정책 경쟁이 사라진 선거는 유권자의 무관심으로 이어져, 교원의 인사권과 연간 수조 원의 예산 권한을 쥔 '교육 소통령'을 뽑는 선거가 또다시 '깜깜이 선거'로 흐를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교육 철학 사라진 자리엔 현금성 공약만...
22일 교육계에 따르면 과거 교육감 선거에서는 현금성 학생 복지 공약 외에도 후보 간 교육관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논쟁적 공약이 꾸준히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교육감 선거 당시 불거진 자율형사립고(자사고)·특수목적고(특목고) 폐지 논쟁이다. 당시 서울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조희연 교육감 후보는 '단계적 일반고 전환'을, 박선영 후보는 '고교 완전경쟁 체제'를, 조영달 후보는 '유지하되 추첨제로 선발'을 각각 제시해 뚜렷한 교육 철학 차이를 드러냈다. 이 밖에도 교육감 후보들은 선거 때마다 학생 인권 강화와 체벌금지, 일제고사 폐지, 혁신학교 확대 등 교육 철학을 전면에 내세운 공약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어젠다나 정책 경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최근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들이 공동 공약을 발표했지만, 내신·수능 절대평가 전환이나 고교서열화 해소, 지방대학 균형발전 등 상당수가 교육감 권한 밖 사안이었다. 그마저도 구체적 실행 방안보다는 선언적 수준의 방향 제시에 머물렀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입시 위주 경쟁 체제가 워낙 강력한 데다 사회 전체적으로 당장 내일의 생존, 먹고사는 문제에 매몰되면서 교육의 본질을 고민할 여유가 없는 분위기"라며 "후보들 역시 이를 뒤집는 교육담론을 제시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난 국회입법조사처 교육문화팀장은 "준비되지 않은 후보들이 출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 현장 경험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있더라도 교육의 시대적 과제나 대안 등을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은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문제, 민원이란 이름으로 정당한 교육·학습권이 침해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그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현금성 공약만 나오니 '교육 재정이 남아돈다'는 오해까지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젠다 실종은 교육 전문성보다는 인지도에 기댄 유력 인사의 출마가 늘어나는 추세와도 무관하지 않다. 교육감 후보는 업무 특성상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해 정당에 소속돼선 안 되고 교사나 교수를 역임하는 등의 교육 경력 또는 교육행정 경력이 3년 이상 있어야 출마할 수 있다. 그러나 비교적 짧은 경력만 있어도 자격 요건이 충족되다 보니 일부 고위공무원이나 정치인 등이 교육감 자리를 정치에 입문하는 통로나 정치 경력의 연장선으로 보고 출마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정치에 얽매이지 않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 인물을 선출하자며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됐지만 일부 지역에선 단체장 후보보다 훨씬 정치적 자산을 많이 쌓은 인물이 후보로 나오고 또 선출되고 있다"며 "교육감 출마 자격을 좀 더 강화해 직선제 취지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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