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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왔구나”…34년 묵은 ‘문신=의료행위’, 30대 변호사들이 무너뜨렸다

무명의 더쿠 | 16:30 | 조회 수 943

"문신행위는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갖춘 의료인이 등장하기 전부터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이 한 문장으로 34년의 논란을 매듭지었다. 1992년 5월 눈썹 문신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규정한 이후 비의료인 시술자를 줄곧 형사처벌 대상에 묶어왔던 판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날 대법원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아무개씨와 백아무개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피고인 모두 의료 면허가 없는 시술자였다. 박씨는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2020년 1월부터 12월까지 두피문신(SMP) 시술을 했고, 백씨는 2019년 5월 패션잡화 판매점에서 서화문신(레터링 문신) 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은 과거 대법원 판례를 따라 이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번 전원합의체는 "통상적인 서화문신·미용문신은 대부분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와 직접적 관련 없이 이뤄졌다"며 "반드시 의료인에 버금가는 의학적 전문지식과 경험이 있어야만 성공적인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판례 변경의 배경에는 시대적 흐름이 깔려 있었다. 지난해 9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10월 말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시술자 대부분이 비의료인이고, 실제 시술 역시 의학적 목적이 아닌 심미적 목적이라는 현실과 법 사이의 간극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시점이었다.


이번 사건의 무죄 취지 판단을 이끌어낸 변호인은 두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인 하채은 매일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변호사시험 9회·36)는 22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전원합의체 회부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드디어 왔구나'였다"고 회고했다. 해외 출장 중 소식을 접한 그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고민이 실제 법원 판단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 변호사는 이전부터 반영구화장과 문신 관련 사건을 여러 건 담당해 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상당수 사건이 통상적 의미의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현장에는 생계형 시술자들이 많았고, 소비자 역시 자발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오래도록 좁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 변호사는 "질병 유발이나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영역까지 일률적으로 의료행위로 평가하는 것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사건 수임 이전부터 생각해 왔다"며 "이번 사건은 그 문제의식을 실제 법정에서 다룰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물론 처음부터 판례 변경을 목표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문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행위를 동일하게 평가하는 방식이 현재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시점부터, 단순히 개별 피고인의 형사책임을 다투는 사건이 아니라 기존 법리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의견서에 '균열의 지점' 두 갈래를 담았다. 법리적 측면에서는 의료행위 개념이 가변적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치과의사에게 보톡스 시술법을 허용한 대법원 판례를 핵심 논거로 끌어왔다. 현실 입증 측면에서는 타투이스트들이 국가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감염관리를 위한 위생기준을 자발적으로 만들며 보건관리에 힘써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변론 과정에서는 의외의 응원도 있었다. 황 변호사는 준비 과정에서 타투이스트들의 노동조합 '타투유니온' 위원장, 그리고 문신 관련 공익활동을 해온 민변 소속 변호사와 미팅을 가졌다. 그는 "정치 성향을 떠나 문신 합법화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에 모여 여러 의견을 교환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의사단체는 문신사법 제정을 막는 데 역량을 집중하던 상황이어서 대법원 재판에는 생각보다 큰 관여가 없었다고 황 변호사는 전했다.


한편 지난해 9월 국회를 통과한 문신사법은 변론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것이 어떻게 녹아들었느냐는 질문에 황 변호사는 "국방부 병역판정 신체검사 규칙이나 경찰공무원 채용 신체검사 기준 등 정부의 문신 관련 지침이 바뀐 부분, 그간의 다양한 문신사법 입법 시도 등 여러 시대적 흐름을 의견서에 담고자 노력했다"고 답했다. 입법부의 판단이 판례 변경을 견인했다기보다는, 여러 시대적 흐름이 종합된 결과라는 것이 그의 평가다.


대법원도 "1992년 판단 이래 기술 발전과 환경 변화로 의료서비스 수요자의 의료접근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고 밝혔다. 이어 "문신 시술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건위생상 위해 등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 신체를 통해 개성을 발현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문신 시술을 받을지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적시했다. "문신은 더 이상 일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이 자연스레 접할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인식도 명시했다.


다만 판결이 모든 쟁점을 해소한 것은 아니다. 문신사법 시행까지는 여전히 1년5개월의 공백이 남아 있다. 


하 변호사는 이 기간 시술자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으로 위생관리, 감염예방, 시술기록 관리, 사후관리, 그리고 소비자 고지와 동의 절차의 철저화를 꼽았다. 향후 제도화 과정에서 위생교육이나 자격요건 등이 도입될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 교육과 기준 마련 논의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하 변호사가 정작 더 무겁게 본 것은 법적 공백 그 자체다. 현장에는 이미 반영구화장, SMP, 일반 문신 영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시술자들이 존재하지만 제도는 아직 현실을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실효성 있는 위생 기준, 교육 체계, 자격 기준, 시설 기준, 책임 구조, 시술자와 소비자 보호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짚었다. 


특히 이미 현장에서 활동 중인 종사자들이 위생교육 등을 이수하고 현실적으로 제도 안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경과조치나 전환 체계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결의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답이 돌아왔다. 이번 판결은 특정 사건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에 곧바로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판단이 제시한 접근 방식은 향후 반영구화장, SMP, 일반 문신, 피어싱 등 다른 영역에서도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고 봤다. 황 변호사는 "이미 문신사법이 통과된 만큼, 이제는 문신 자체를 전면 금지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어떤 기준 아래에서 안전하게 제도화할 것인가의 논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법원 역시 판결에서 형사처벌 가능성의 여지를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문신사법 등 시행 전이라도 형법이나 공중위생관리법 등 관련 법령이 정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이에 따른 형사처벌 가능성이나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규제 도입의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단서가 그것이다.


34년 동안 유지된 기준이 바뀌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하 변호사는 인터뷰 말미에 "이번 판결은 누군가의 승패만으로 보기보다, 현실과 법 사이의 거리를 다시 점검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제도 밖에서 일해 온 시술자들, 그리고 그 서비스를 이용해 온 많은 사람들의 현실이 처음으로 법정에서 충분히 논의됐다는 점 자체가 의미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대립이 아니라 제도화라는 것이 그의 마지막 주문이었다. 위생 기준과 교육 체계, 자격 기준과 시설 기준, 책임 구조가 형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이행 가능한 수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시술자와 소비자 모두가 보호받으면서도, 안전하게 제도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판례 한 줄이 바뀌는 데 34년이 걸렸다. 법정에서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시술 자격과 안전 기준을 둘러싼 나머지 과제는 이제 국회로 넘어왔다.



이태준 기자


https://v.daum.net/v/20260522133953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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