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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인식 전환의 기점 된 ‘과천 부모 토막살해 사건’

지난 2000년 5월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잡힌 이은석이 범행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KBS뉴스 화면2000년 5월 21일 새벽, 경기도 과천시의 한 주택에서 만 23세 이은석이 부모를 살해했다. 어머니가 잠든 방에 들어가 망치로 어머니를 살해한 뒤, 약 4시간 뒤 같은 방법으로 아버지마저 살해했다.
그는 이틀에 걸쳐 시신을 토막 내 여러 개의 쓰레기봉투에 나눠 담아 곳곳에 유기했고, 일부는 소각장에서 소각했다. 어머니 시신은 머리 외에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은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봉투 속 시신 일부를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경찰은 지문 감식으로 신원을 확인한 뒤 가택 수사에 나서 집 안에 있던 이은석을 검거했다.
그는 진술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라고 말했다. 이은석의 형은 동생의 체포 소식을 듣고도 비난 대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해 한때 공범 의심까지 받았으나, 알리바이가 확인돼 혐의를 벗었다.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은 단순 존속살해를 넘어선 양상을 드러냈다. 형은 항소심 법정에 출석해 “우리의 부모가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갖는 만큼의 애정만 우리에게 줬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고등학교 동창들도 “체육 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 은석이의 몸은 언제나 피멍투성이였다”고 증언했다. 또 이은석이 고려대학교에 합격한 뒤에도 부모는 서울대학교 진학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고작 고려대가 뭐니. 멍청한 자식은 필요없다”는 식의 폭언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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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부는 존속살해와 시신 훼손·유기의 잔혹성을 들어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001년 항소심은 가정폭력에 따른 심신미약을 감형 사유로 인정해 무기징역으로 형을 낮췄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사형 판결이 적극적으로 내려지던 2000년대 초반, 양친을 모두 살해하고 시신까지 토막 낸 가해자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이은석의 형과 어머니가 다니던 성당의 신자, 신부·수녀, 정진석 당시 대주교까지 감형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낸 점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가해 부모 또한 학대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함께 드러나며 사건은 더 무거운 의미를 갖게 됐다. 이은석의 어머니는 학창 시절부터 외할머니의 극단적 체벌 속에서 자랐고, 아버지 역시 형만 편애하는 부모 밑에서 정서적 학대를 받으며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들이 받은 상처를 그대로 자식에게 되물려준 ‘학대의 대물림’이 비극의 뿌리였다는 분석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됐다.
이은석 사건은 처벌의 수위보다 원인의 구조를 묻는 첫 존속살해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전까지 존속살해를 인륜의 파탄으로만 다루던 시각에서 벗어나, 장기간의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사회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으로 이어진 학대 인식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 사건은 여전히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가장 오래 방치된 폭력이 어떻게 사회 범죄로 돌아오는가’를 묻는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이은석은 25년째 복역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