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떼인 돈 대신 받아주기’, ‘무허가 도축 단속하기’, ‘도성 안팎에서 발견된 시신 조사하기’….
약 500년간 조선의 수도를 관할한 관청 한성부(漢城府)는 1년 365일 쏟아지는 민원과 업무로 분주했다. 오죽하면 여러 사람이 숨 가쁘게 달려드는 모습을 비유한 “한성부에 대가리 터진 놈 달려들 듯”이란 속담이 생겨났을까. 총 170여 칸 규모의 청사는 언제나 “구름처럼 쌓인 문서와 장부로 가득”(강희맹 문집 ‘사숙재집·私淑齋集’)했고, 관원들은 여름철엔 이르면 오전 5시부터 출근해 오후 6~7시가 돼야 퇴청했다고 한다.
오늘날 사회 풍경과도 닮은 한성부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한 기획전 ‘한성부입니다’가 최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막했다. 한성부는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긴 이듬해부터 1910년까지 한양도성 및 중앙 행정기관으로 운영된 관청. 전시는 박물관이 약 30년간 수집한 관련 유물 90건을 통해 한성부의 역사와 사람들을 조명했다.
전시물 가운데 대다수는 고문서지만, 전시는 생생한 이야깃거리에 초점을 맞춰 주목도를 높였다. 1774년 한성부 주민 이윤경에게 발급된 호적 등본 ‘준호구(准戶口)’에는 206살 된 노비 ‘오월이’가 등장한다. 김혜민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주인이 재산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심에 사망 신고를 하지 않아 장수한 ‘서류상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숫자’로 한성부를 짚어본 구성도 흥미롭다. 14세기 명재상 황희와 16세기 행주대첩을 이끈 장수 권율, 을사늑약에 항거한 대한제국의 관료 민영환은 모두 한성부 수장인 판윤(判尹)을 지냈다. 조선시대 한성부 판윤은 정2품의 고위직이자 육조판서로 가는 관문이었다.
그러나 당대 관료들 사이에선 서로 떠넘기고 싶은 ‘기피 벼슬’이었나보다. ‘숫자로 보는 한성부 판윤’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85일에 불과했다. 1890년엔 판윤이 무려 25차례 바뀌기도 했다. 김 연구사는 “사직이 잦아 행정 공백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있었을 정도”라며 “비교적 조정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평안감사 등과 달리 임금의 시야 안에서 막중한 책임과 업무를 맡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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