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군인 자녀를 위한 기숙형 사립고인 경기 파주시 한민고가 2014년 개교 이래 처음 모집 정원에 미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민고는 전국 최고 수준의 우수 대학 진학률로 매년 입학 경쟁이 치열했는데, 올해 갑자기 지원자 수가 뚝 떨어진 것이다. 교육계에선 전교조, 민주노총 등이 주장해 온 ‘한민고 공립고 전환’을 정부가 본격 추진하면서 벌어진 일로 본다. 한민고 학부모들은 “정치적 이유로 멀쩡한 우수 학교를 망치면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한민고는 올해 군인 자녀 전형에서 254명 모집에 20명이 미달했다. 한민고는 군인 자녀 70%, 경기도민 30%를 선발한다. 군 자녀 전형 경쟁률은 매년 2~3대 1에 달했는데, 올해는 미달된 것이다. 이는 정부가 지난해 말 ‘공립 전환’을 본격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불안해진 학부모들이 지원을 꺼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민고는 이명박 정부가 잦은 근무지 이동으로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군인들을 위해 설립을 추진했다. 여야 합의로 군인복지기본법을 개정해 설립 근거를 만들었고, 국고 보조금 350억원을 투입해 지어졌다. 정부 예산이 들어갔으니 공립으로 설립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당시 법적으로 공립고는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할 수 없어 사립학교로 지어졌다. 한민고 학생들은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는데도 올해 서울대 23명, 4대 과학기술원 51명 등 매년 200명 안팎이 우수 대학에 진학해 ‘공교육 모범 사례’로 알려졌다.
그런데 지난해 경기교육청이 제보를 받아 진행한 한민고 감사 결과가 알려지면서 갑자기 공립화 여론이 급물살을 탔다. 감사에선 위법한 급식 계약, 교직원 관리 부적정 등이 지적됐다. 전교조와 민노총, 진보당 등은 이때부터 한민고 공립화 여론을 조성하고 나섰고, 민주당도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교육청 감사 결과를 언급하며 “국방부 예산으로 만들어진 학교인 만큼 공립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경기교육청은 작년 12월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홍두승 당시 이사장 등 일부 이사진 승인을 취소했고, 문재인 정부 때 국방장관을 지낸 정경두 전 장관이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같은 달 교육부와 국방부, 경기교육청은 ‘한민고 자율형 공립고 전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민고 관계자는 “홍 이사장의 개인 비리도 없었고 승인을 취소할 사유가 없는데도 마치 한민고가 비리 학교인 것처럼 여론을 조성해 이사진들을 쫓아냈다”며 “당시 홍 이사장 등에 대해 무더기로 이뤄진 고소·고발이 최근 전부 무혐의가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이사장 등은 이사진 승인 취소가 부당했다며 경기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경기교육청 측은 “감사 결과 부적절한 학교 운영이 적발됐고, 이제 공립도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된 만큼 한민고를 계속 사립학교로 운영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한민고의 공립 전환은 정치적 공격의 일환”이라는 의견도 많다. 한민고는 꾸준히 진보·좌파 진영으로부터 ‘군 인사가 장악한 사립학교’로 공격받아 왔는데, 공립 전환 역시 그런 측면이라는 것이다. 2014년 한민고가 보수 사학자들이 집필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했을 때도 항의가 빗발쳐 행정 업무가 마비되는 곤혹을 치르고 채택을 취소해야 했다.
학부모들이 공립화를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민고의 우수한 진학 결과는 교사들이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방과후 수업을 하고, 진학 상담 프로그램의 질이 높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공립이 되면 교사가 3~5년마다 바뀌고, 교육 과정에 교육 당국의 개입도 커져 현행 시스템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설문에서 “군인 자녀의 질 높은 교육환경을 빼앗지 말아달라”, “일부 정치적 주장에 훌륭한 시스템과 교사가 희생양이 돼선 안 된다”는 등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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