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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9일 오후 4시 50분.
광주고등학교와 계림파출소 사이 거리에서19살 고등학생 김영찬 군이 쓰러졌습니다.
장갑차 위에서 뿜어져 나온 M16의 거친 비명이 봄날의 공기를 찢고, 소년의 복부를 관통했습니다.
군인이 우리에게 총을 쏜다.
전날까지 곤봉과 대검으로 가해지던 국가의 폭력은 시민을 향한 이 발포 뒤 더 악랄한 얼굴로 광주를 휘감았습니다.
국민을 지켜야 할 탱크는 육중한 굉음을 내며,시민을 향해 진군했고, 철제 궤도가 아스팔트를 짓누를수록 광주의 심장은 더 뜨겁게 뭉쳤습니다.
책장을 덮고 뛰쳐나온 학생 곁에 앞치마를 두른 상인, 운전대를 잡던 기사, 밥상을 차리던 주부가 섰습니다.
전차와 APC 장갑차, 500MD 무장헬기, 코브라 공격헬기, 자동화기, 수류탄 등의 살상 무기 앞에서 시민들은 어깨를 함께 걸었습니다.
광주의 5월을 피로 물들인 그날로부터46년이 흘렀습니다.
아스팔트 위에 흐른 피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마중물이었습니다.
전 임직원에게 역사 교육을 하겠다.
고개를 숙였지만, 비극의 역사를 가벼운 마케팅의 소모품으로 전락시킨 것은 쉽게 용서되지 않습니다.
그저 일상의 위로였어야 할 커피 한 잔이 상처를 후벼 파는전차의 굉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커피가 도대체 뭐라고 감히.
앵커 한마디였습니다.
오대영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