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비오 5세
집안 자체는 평범한 집안이었고 어린 시절 양치기를 하며 집안을 돕고 살았다고 함
머리가 총명했던 덕으로 추천을 받아 신학교에 입학하여 고위직인 추기경까지 올랐고 성격이 워낙 대쪽이고 집안 자체도 한미해서 파벌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함
추기경시절 그는 인품에 앞서 교회의 정통 교의를 수호하는 강직한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졌으며, 여덟 명의 프랑스 주교들을 이단자로 기소해버림 또한 족벌주의 문제에 있어서도 단호하게 대처하였는데, 전임 교황 비오 4세의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질책하였다고 함( 어. 나 죽으면 순교다)
비오 5세가 교황에 피선되자, 시민들은 관습대로 성대한 교황 즉위식이 곧 있으리라 기대하였으나 시일이 경과해도 아무 소식이 없더니, 즉위 미사는 중지되고 비오 5세의 경비는 모조리 빈민구제 및 경영 상황이 어려운 수도원 원조의 목적에 기부되었다고 함
비오 5세가 즉위할 당시 서방 국가들은 부패와 종교개혁, 새로 생긴 군소 국가 사이의 치열한 싸움,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침략 위협 등으로 온통 혼란의 도가니였다. 따라서 비오 5세는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는 한편 산산히 분열된 서구 세계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막중하고도 힘겨운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
비오 5세는 이를 위해 금욕적인 생활태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즉시 개혁 작업에 착수하는데 교황의 지위에 올라서도 조금도 수도자로서의 자세를 버리지 않은 채, 종래의 호화스럽던 교황의 의식주를 되도록 간단하고 검소하게 하였다.
철저하게 수도자의 절제된 생활 양식을 지켜나갔으며, 일례로 비오 5세는 교황복 안에 수도복을 입고 지냈다고 한다. 이에 교황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마치 수도원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오 5세는 당대 사람들에게 "그처럼 경건한 교황은 일찌기 본 일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한편 인간을 천사처럼 취급하고, 인간의 연약함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완고하고 원칙주의자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신분이 높을수록 엄벌주의였다고 함) 정작 비오 5세 본인은 자신이 때로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자책했다고 한다(…).( 내가 너무 관대했어)
유럽에 들어온지 오래지 않은 16세기 한때 교황청은 초콜릿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는데, 초콜릿이 '지나친 매력과 흥분을 유발하는 자양제'라서였다.
실제로 멕시코 원주민들은 카카오의 씨앗인 카카오 빈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 부르면서 음료나 약용으로 썼고, 더 나아가 화폐로도 썼으며, 아즈텍 왕실에선 카카오를 볶아 여기에 옥수수, 물, 향신료를 첨가해 규칙적으로 먹었으며 결혼식이나 기타 신성한 예식을 올릴 때에도 음용했다. 고위 계층은 정력에 좋다고 여기기도 했다.
이것이 유럽에 넘어오게 되면서 정력제나 흥분제로 소개되는데...
하지만 비오 5세는 직접 초콜릿을 맛본 뒤 "이렇게 맛없는 것이 습관이 될 리 없다"며 초콜릿 금지령을 풀었다. 당시만 해도 초콜릿에 설탕을 넣어 먹는 방법은 퍼지지 않았으므로 원액 그대로의 초콜릿을 맛본 모양. 당시 초콜릿은 쓰고 단 맛은 없었음
그 후 초콜릿은 합법적으로 먹는 음료를 거쳐서 설탕을 넣어서 지금의 달콤한 초콜릿으로 변화하게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