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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김도헌의 음감] '엔믹스'가 도달한 미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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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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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했고, 입증했다. 지난 4년간 케이팝의 신항로를 개척하며 흥미로운 모험담을 써 내려가고 있는 걸그룹 엔믹스의 이야기다.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창작의 영역을 넓히겠다는 혼합의 철학으로부터 탄생한 이 팀이 걸어온 지난 4년은, 그룹을 상징하는 그들만의 음악 장르 '믹스팝'이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거쳐 울퉁불퉁한 그 자체로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조금 더 과감하게, 보다 더 멀리 나아가도 괜찮았다. '에프이쓰리오포(Fe3O4)' 시리즈가 그랬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탄탄한 역량을 바탕으로 꿈꿔온 선율과 전에 없던 소리를 그들만의 것으로 거머쥐었다. '블루 발렌타인(Blue Valentine)'은 이를 자축하는 화려한 불꽃놀이였다. 평단의 찬사와 대중의 환호가 순풍에 돛 단 듯 엔믹스 호의 쾌속 질주를 이끌었다.

 

엔믹스의 다섯 번째 미니 앨범 '헤비 세레나데(Heavy Serenade)'는 그렇게 도착한 그들만의 목적지 행성 '믹스토피아'에서의 풍경을 그린다. 도전과 돌파, 부활과 극복의 정서를 힘주어 노래했던 그룹이 처음으로 도달한 자들의 일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토록 마주하고 싶었던 특이점에서 그룹은 자신을 격려하고 다독이며 다음 항해를 준비한다. 질주하고, 나는 다르다고 선언하며, 갈 수 있는 가장 끝까지 가보겠노라 불안을 끌어안았던 'Fe3O4' 시리즈의 개인적 창작관을 이제 만인을 향해 보다 평온하고도 거대한 메시지로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헤비 세레나데'는 행성보다 우주 정거장처럼 느껴진다. 안정적으로 궤도를 돌며 중간 기착지 역할을 수행하는 이 미완의 낙원에서 그룹은 새로운 좌표를 찾아 나서기 전에 순조롭게 이어온 모험을 돌아보며 확신을 얻고, 미지의 존재와 공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다듬는다. 도달하지 못한 공간에서 현실의 제약으로 인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다양한 소리의 실험을 수행하고, 긴 항해의 동력이 되었던 모두의 마음을 독특한 그릇에 담아내어 규격화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그렇다면 엔믹스가 이번 앨범을 통해 선택한 마음은 무엇일까? 사랑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남들이 틀렸다고 해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던 이유도, 모두 사랑에 있다고 믿는다. 사랑의 힘으로 엔믹스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달려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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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청사진은 엔믹스의 개선 행진곡 '헤비 세레나데'다. 고요하게 적막을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바탕으로 거칠게 요동치는 날 것의 신스 샘플과 묵직한 드럼 연주가 조곤조곤 읊조렸던 자기 확신을 온 세상에 커다랗게 소리치도록 돕는다. 가장 뜨겁기에 푸른빛으로 타올랐던 '블루 발렌타인'의 정서를 보다 극적인 형태로 확장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형태가 매끄러운 봉합이 아니라 충돌 그 자체를 끌어안는 식으로 완성된다는 점이다. 싱어송라이터 한로로가 써 내려간 안온한 노랫말을 완성하는 것은 가창과 프로덕션의 힘이다. 시간 내 변화무쌍하게 교차하는 곡 구성과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하는 엔믹스 멤버들의 완급 조절 및 표현이 핵심이다. 이와 같은 엔믹스 스타일, 엔믹스의 표현법이 싱글 '롤러 코스터(Roller Coaster)' 속 마법과 일상을 교차했던 뮤직비디오를 닮은 소소한 일상을 낯선 행성에서의 하루로 스케일을 높이는 핵심이다. 잔잔한 바다의 풍경도 영화 '인터스텔라' 속 초대형 해일이 일어 닥칠 것 같은 긴장감이 있다. 엔믹스만이 줄 수 있는 긴장감이다.
 
의도된 긴장의 배치다. 엔믹스의 경력 가운데 가장 실험적인 곡 중 하나로 남을  '크레셴도(Crescendo)'부터 재미있는 모순이다. '오션(Ocean)'을 떠올리게 하는 보컬 샘플만이 익숙한 이 곡은 좀체 다음 구성을 예측할 수 없는 다이나믹한 변주의 연속이다. 베이스 드롭으로 안내하는 힘찬 가창과 아카펠라의 파편은 과격한 해체주의의 가치관이 계속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엔믹스 체인지업'이라는 구호만 없을 뿐 가장 과격하게 이어 붙이고 섞는 노래의 쾌감은 신중하게 발자욱을 내딛을 수 있는 가창 역량 덕분이다. 데뷔 싱글 'O.O'부터 브라질 아티스트 파블루 비타르와 함께 발표했던 '틱 틱(Tic Tic)'까지 엔믹스의 커리어를 관통하는 드넓은 구성이 두드러지는 '슈피리어(Superior)', 릴리의 단독 작사와 함께 드럼 앤 베이스와 저지 클럽의 영롱하게 반짝이는 곡 구성과 이모겐 힙(Imogen Heap)을 연상케 하는 보컬 교차가 흥미로운 '라우드(LOUD)'가 믹스팝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한다. 공격적인 힙합 트랙으로 '별별별'을 잇는 '아이디절빗(IDESERVEIT)'이나 '노우 어바웃 미(Know About Me)'의 정서를 보다 차분한 알앤비로 풀어낸 '디퍼런트 걸(Different Girl)' 정도가 안정된 정도다. 별남을 기본으로 이해하고 있는 팬들에게는 이 앨범의 종잡을 수 없는 노래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평온함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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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 세레나데' EP는 장르만 섞는 게 아니다. 케이팝에서 실현하는 팝 싱어송라이터의 주제 의식이 앨범의 흥미로운 융합 요소다. 내가 얼마나 독특한지, 남들과는 다른지를 각인하며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케이팝 걸그룹의 주 서사와 엔믹스의 생각 회로는 분명 구분된다. 지금까지 달려온 나 자신을 격려하고 헌사를 바치는 '아이디절빗',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고백을 옮긴 '헤비 세레나데', 가장 큰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고 스스로를 믿도록 하는 '라우드'의 발화는 1인칭의 시점에서 주체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이 휘황찬란하게 겹겹이 소리의 벽을 쌓는 케이팝 프로덕션에도 불구하고 엔믹스의 가창이 기능으로만 머무르지 않으며, 노래를 부르는 설윤, 릴리, 배이, 해원, 규진, 지우의 목소리와 생각이 궁금해지는 비결이다. 이러한 진솔함은 릴리가 그토록 동경하는 테일러 스위프트,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그레이시 에이브럼스 등 팝 여성 솔로 싱어송라이터들의 문법과 닮았다. 연애, 결혼, 이별의 전형적인 팝스타 주제를 빼고, 케이팝의 시스템에서 자기 탐색을 수행하고 있다.
 
'에프이쓰리오포: 포워드(Fe3O4: FORWARD)'와 같은 유기적인 앨범 구성과 '블루 발렌타인' 앨범의 긍정적인 백화점식 구성과 비교했을 때 '헤비 세레나데'가 갖는 약점도 이러한 부딪치기에 있다. 모든 야심이 같은 속도로 도달점에 닿을 필요는 없다. 이미 난해한 음악으로도 대중에게 엔믹스라는 그룹의 음악이라는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으니 내릴 수 있는 결정이기도 하다. 그 점을 고려해도 '헤비 세레나데'의 여섯 곡은 서로 다른 행성계에 멀리 떨어진 각각의 공간으로 빛나고 있다. 이유는 선율의 힘에 있다. 폭넓은 구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평온하고 안온한 사랑의 힘을 노래하고자 하는 주제를 뒷받침하기에 멜로디의 힘이 비트나 소리 샘플, 구조의 변화에 미치지 못한다. '블루 발렌타인'과 '빠삐용(Papillon)'에 힘을 실어 주었던 선율이 희미해진 가운데 앨범을 듣다 보면 벅찬 감정을 표현하는 기술적인 기법만이 남아 있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모두를 품고자 하는 송가를 만들기 위해선 단단히 누적된 멜로디가 필요하다. 수록곡도 마찬가지다. 독특하다는 인상으로만 남기에는 엔믹스라는 그룹에 거는 기대가 더 커졌다.
 
결국 정거장은 임시 구조물이다. 우주선을 도킹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나서 결국 지구로 돌아와 그 성과를 입증하거나 혹은 망망대해로 나아가야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엔믹스가 이번 작품을 그들이 도달한 믹스토피아를 '통 빈 공터와 같은'이라 설명하며,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에서의 두근거림과 설렘을 노래하고자 한다는 서사를 덧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헤비 세레나데'는 잠시도 머무를 수 없는 케이팝의 가로축과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멤버들의 정체성이라는 세로축이 교차점이다. 단단하게 다져가는 자기 확신으로 드넓은 대양을 향한 출항을 준비하는 엔믹스. 지금 머무름이 훗날 도약의 좌표로 기억될 수 있을까.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 zener1218@gmail.com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33/0000127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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