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trick James McGlinchey(1928. 6. 6. Ireland ~ 2018. 4. 23. Jeju; 한국명 '임피제')신부는 아일랜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 사제로서 60여년 이상을 제주 주민들의 자립과 돌봄을 위해 헌신하였다.
1950년대 제주는 일제강점기, 4·3, 한국전쟁을 잇따라 겪었고, 가뭄과 태풍으로 인해 먹을 것은 더욱 부족한 빈곤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으며, 특히 어려운 시절 이재민과 피난민으로 인구는 늘어난 반면, 제주의 산업발달 및 노동시장은 빈약했다.
제주에서 공소 건립 등 선교활동과 원조 물품을 지역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던 맥그린치 신부는 지역주민들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4-H운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지역주민들의 자립을 위해 가축사육 및 작물재배와 더불어 편물 및 직조기술 향상을 위한 실습프로그램을 제공하였고, 실습 시설로서 '한림4-H가축은행', '한림4-H종자은행', '한림4-H직조강습소'를 설립하였다.
전쟁 직후이니 모두가 가난했고, 제주도는 더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포자기’였답니다. 임 신부가 무슨 일을 제안하면 “그거 다 일본 사람들도 해봤는데 안 됐다”고 한다.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한 사업을 위해 고향의 가족에게 계속 손을 벌리니 아버지는 “아들! 한국에 선교하러 간다더니 왜 자꾸 돼지와 땅만 사니?”라고 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돼지를 키우게 된 그는 불안정한 국내 수요 대신 해외로 눈을 돌려 홍콩과 일본으로 수출했다. 수출에 국운을 걸었던 우리나라는 1977년 수출 100억불을 달성했는데 그해에 이시돌축산주식회사가 수출한 물량이 8150만달러였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0.8%를 이시돌목장 한 곳이 감당한 것이었다.
그는 지역주민들의 자립을 위해 신용협동조합 운동 전파 및 '한림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개척농가' 조성, '차량종합정비공장' 및 '차량종합정비훈련부'를 마련하여 지역주민들의 자립을 도왔다.
1970년에는 '성 이시돌 의원'을 개원하여 제주도 제주 서부권 지역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펼쳤으며, 2002년부터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으로서 운영되고 있다. 이 외에도 성 이시돌 요양원, 성 이시돌 어린이집, 성 이시돌 피정의 집, 청소년 교육기관인 성 이시돌 젊음의 집을 설립하였다.
임피제신부가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인 것은 호스피스였습니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호스피스 서비스를 시작했고, 2002년엔 말기 암 환자를 무료 진료하는 ‘성 이시돌 복지의원’으로 개편하고, 2007년에는 이시돌 목장 부지 안으로 옮겨 1200평 부지에 13개 병실, 25개 병상, 1개의 임종실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임 신부는 2018년 4월 초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이시돌 복지의원(호스피스)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의 뜻대로 복지의원으로 옮겨진 임 신부는 5시간 후 선종(善終)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