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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나영석 여행 예능의 온도차...'상황극 vs 일상'

무명의 더쿠 | 05-09 | 조회 수 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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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여행은 ‘어디론가 떠나는 판타지’다. 여행이 쉽지 않은 시절부터 쌓여온 교과서적 서사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선택지와 방법론이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 여행이다. 다만 SNS에 사진 올릴만한 명소를 찾아다니는 여정 못지않게 그런 순간을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한 여행의 요소가 되었다.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최근 방영되었거나 지금 방영되고 있다. ENA <크레이지 투어>와 tvN <꽃보다 청춘: 리미티드 에디션>이 그 프로그램들이다.


새롭다고 하지만 익숙한 문법의 여행 예능

두 프로그램은 한국 예능을 대표하는 프로듀서들이 기획했다. <크레이지 투어>는 김태호 피디가, <꽃보다 청춘: 리미티드 에디션>은 나영석 피디가 기획했고 두 사람의 회사에서 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여행 예능에 특화되어 있다. 각자 나름의 여행 예능 문법을 창시한 이로도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 프로그램에서 전작의 향기가 솔솔 난다.


지난 5월 2일에 방영을 마친 <크레이지 투어>는 <지구마불 세계여행>의 스핀오프로 단순한 유람이 아닌 극한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그간의 여행 예능이 ‘연예인이 꿀 빠는 여행’이라는 비판에 반항하듯 고공 등반, 스카이다이빙 등 육해공을 넘나드는 강도 높은 액티비티를 배치했다. 

5월 3일에 방영을 시작한 <꽃보다 청춘: 리미티드 에디션>은 ‘꽃보다 청춘’ 시리즈의 연장선이다. 페루나 아이슬란드로 연예인들을 납치했던 과거의 기획을 다시 가져왔다. 여행지만 국내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큰 특징인 저예산 여행을 콘셉트로 했다. 

익숙한 포맷은 대개 안전하다. 누군가 가본 곳을 따라가면 실패할 확률이 낮은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다만 두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새로운 변주를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크레이지 투어>는 낯선 경험을 위해 떠난다는 여행 예능 문법을 사용했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문법이다. 그런데 여행지를 소비하는 방식이 과장되고 게임 같다는 점이 달라 보이긴 한다. ‘왜 저걸 하러 저기까지 갔을까?’ 같은 비효율과 돌발성을 의도적으로 설계했다. 그래서 여행 자체보다 ‘이상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쪽에 가깝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결국 이 프로그램에서 여행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출연진들이 시도 때도 없이 펼치는 상황극에 가깝다. 그런 <크레이지 투어>는 액티비티를 통해 일명 ‘노동형 예능’의 문법을 극대화했다. 이를 통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려 한 듯한데 오히려 피로감을 주는 지점이 많다는 평을 접할 수 있다.


<꽃보다 청춘: 리미티드 에디션(이하, 꽃보다 청춘)>의 출연진 정유미, 박서준, 최우식은 <윤식당>, <서진이네>를 통해 충분히 익숙한 조합이다. 제작진도 이를 안다. 그래서 새 시즌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대신, 이미 형성된 친밀감을 여행이라는 공간으로 옮기는 모양새다. 

그래도 이전 시리즈와 다르게 변주를 시도했다. 매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등 뭔가 제한을 두고는 제작진이 관여하는 게임 요소도 도입했다. 그리고 한 사람당 하루 10만 원으로 교통비와 의식주를 해결하게 했다. 

즉 ‘결핍’을 어떻게 풀어가며 여행하는지를 관찰하는 콘셉트다. 그래서인지. 지난주 방영을 시작한 <꽃보다 청춘>은 ‘찐친들의 무계획 여행 브이로그’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출연진 간 케미를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

대개의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진 간의 관계가 서사의 중심축에 있을 때가 많다. <놀면 뭐하니?>가 대표적이다. 카메라 밖에서도 친한 관계라는 게 영상 속에서 잘 드러난다. 이른바 ‘케미’다. 일종의 화학작용이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런 케미를 <크레이지 투어>는 프로그램 서사 속에서 의도적으로 끌어냈다. 출연진들이 평소 아는 사이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관계 자체를 프로그램 안에서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특정 상황과 규칙을 던져놓고, 그 안에서 출연진들이 반응하면서 충돌이 일어나도록 유도했다.

즉 돌발 미션, 예상 밖 이동, 불편한 환경, 역할 분담의 혼선, 체력적 피로 등의 장치를 설치해 출연진 간 관계를 흔들었다. 제작진은 ‘상황의 압력’ 속에서 출연진 간 예능적 케미가 만들어진다고 믿은 듯 보인다. 


반면 <꽃보다 청춘> 제작진은 출연진의 케미가 ‘축적된 시간’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즉 이미 만들어진 관계를 관찰하는 것에 가깝다.

사실 나영석류 예능을 많이 본 시청자라면 정유미, 박서준, 최우식은 익숙한 조합일 것이다. 10년에 걸쳐 여러 시리즈에 함께 나온 덕분에 이들은 카메라 밖 일상생활에서도 가까운 사이가 된 듯하다. 시청자들 또한 이들의 친밀감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전제가 <꽃보다 청춘> 서사에 깔려 있다. 

그래서 <꽃보다 청춘> 제작진의 역할도 출연진의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드러내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즉 익숙한 농담, 서로의 생활 습관을 아는 태도, 설명 없는 배려, 길어진 침묵조차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등의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화면에 담긴다. 보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다시 말해 <꽃보다 청춘>은 출연진 간 케미를 연출이나 편집으로 생산한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관계를 여행이라는 공간으로 옮겨 확대해 보여준다.

무엇보다 <크레이지 투어>와 <꽃보다 청춘>은 여행의 속성을 잘 드러낸 프로그램이다.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줬다는 면에서 그렇다. 

세상 좋은 곳을 가도 일행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가 있다면 지옥에 가깝고, 평범한 곳에 가서 아무 데나 머물고 저렴한 음식을 먹어도 마음에 맞는 이와 함께 한다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즐거운 여행이란 그런 여정일 테다.


<크레이지 투어>는 여행을 상황극으로 만들었고, <꽃보다 청춘>은 여행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청자가 화면 속에서 자신의 여행을 상상하게 만드는 건 후자 쪽에 가깝다. 

여행 예능의 미덕이 있다면, 보는 사람이 ‘나도 저렇게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게 아닐까. <꽃보다 청춘>은 그런 마음을 건드리고 있다.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8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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