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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21세기 대군부인', 맛집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싱거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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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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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한꼬집] '21세기 대군부인', 맛집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싱거운 이유


맛집인 줄로만 알았다. 긴 웨이팅 끝에 겨우겨우 들어갔다.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음식이 나왔다. 근데 딱 거기까지였다. 한 번쯤 가볼 만은 한데, 또 가고 싶냐고 하면 글쎄. 치즈, 트러플, 투쁠 한우 등 무조건 맛있을 수밖에 없는 재료를 썼는데, 안 먹어도 그만, 먹어도 그만인 맛이었다.


그게 꼭 〈21세기 대군부인〉 같다. 알면서도 속고 싶었다. 입헌군주제와 계약결혼 소재, 아이유와 변우석이라는 핫한 스타 배우, 거기에 ‘MBC 극본공모 당선작’이라는 타이틀까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치트키’들을 다 쓰고도, 그다지 감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모로, ‘맛집’임이 분명해 보였던 드라마는 예상외로 싱거운 모양새다. 고증이 잘못됐다거나, 역사왜곡이라거나, 뻔하다거나, 연기력이 별로라거나, 연출이 올드하다거나 등의 문제는 굳이 따질 필요 없다. 뭐, 〈궁〉은 연출이 세련되어서 지금도 보고, 〈선재 업고 튀어〉는 타임슬립이 믿어져서 보고, 〈사내맞선〉은 덜 뻔해서 보고, 〈호텔 델루나〉는 신들린 연기력이 좋아서 봤겠는가. 기본적으로 드라마의 재미를 책임질 ‘이야기’와 ‘캐릭터’가 빈약하니, 재미가 덜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21세기 대군부인〉은 ‘21세기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모든 걸 가진 재벌이지만 신분은 고작 평민이라 짜증스러운 여자와 왕의 아들이지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어 슬픈 남자의 운명 개척 신분 타파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를 표방한다. 사실은,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시놉시스와 기획의도, 인물소개가 드라마 본편보다 재미있게 쓰였다.

 

그러나, 드라마 속 성희주(아이유)는 욕망만 있고 결핍이 없다. 대개 결핍이 없는 욕망은 설득력을 얻기 힘든 법이다. 기획의도와 작가의 작품 소개 속 입체적으로 보였던 인물들은 어디로 갔나. 드라마가 ‘신분 타파 로맨스’를 표방한다면, 그 ‘신분’이 어떻게 인물에게 장벽이 되고, 인물은 그 장벽을 어떻게 부숴나가는지를 다뤄야 했다. 그러나, 성희주에게 평민에 서출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큰 제약이 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성희주는 ‘타고난’ 인물로만 보인다. 사생아이긴 하나 ‘캐슬그룹’의 자녀인 데다가, 이미 ‘캐슬뷰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성희주는 능력이 출중해 학교에서도, 가족 내에서도, 회사에서도 ‘더럽게 이기며’ 살아왔다고는 하나, 아무리 봐도 그가 그 자리까지 능력으로만 올라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니, ‘자수성가형’ 인재와는 거리가 멀다. 평민에 서출이라, 신분으로 인한 결핍이 있다고는 하나, 그저 남(예를 들면 홍보팀장)에게 못되게 구는 걸로 그가 가진 결핍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고작 이름뿐인 신분이 없어 놓친 기회가 수십”이라고 말하는 성희주에게 신분의 제약이란, 내진연에서 ‘품계’라는 서열에 따라 맨 뒤에 앉고, 맨 뒤에서 걸어야 하는, 딱 그 정도로만 묘사된다.


성희주는 그저 맨 앞에 서 있고 싶어 왕실에 입성하고 싶어 하는 걸까. 성희주가 정말 욕망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라면, 계약결혼을 통해 자신이 얻는 이득이 있어야 하는데, 정작 그게 무엇인지 모호하다. 성희주가 그토록 원하던 캐슬그룹을 물려받는 것과, 이안대군(변우석)과 결혼하는 것은 전혀 무관한데 말이다. 성희주는 오빠 성태주(이재원)가 자신보다 더 좋은 기회를 얻는 이유로 “양반가에 장가 들어서 그런가”라며, 자신도 결혼을 통해 신분을 얻고 싶다고는 말하지만, 구체적인 장면이 없고 말만 있으니, 신분이라는 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왕실이 주는 명예는 돈이나 땅으로 살 수 없다”는 민 총리(노상현)의 대사가 성희주의 동기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럼 이제 이안대군을 보자. 이안대군은 더욱 반골이었어야만 했다. 지금보다 더욱, ‘사냥꾼’ 같았어야만 했고, 왕위에 오르고픈 욕망이 좌절되어 반항심으로만 똘똘 뭉친 인물이 되었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안대군이 성희주의 청혼을 받아들인 이유가 납득이 된다. 이안대군은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차남이라는 이유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 인물로 설정됐다. (애초에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는 점은 일단 차치해두자.) 사실 이안대군은 성희주와 비슷한 결핍을 지닌 셈이다. 그렇다면 그는 더 삐딱해야 했다. 오로지 그의 사냥꾼과 같은 반골 기질로 인해 평민 출신 성희주와 혼인해 왕실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대비를 비롯한 세력에게 (성희주의 말을 빌리자면) “엿 먹이는” 전개가 되었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왕위에 오르고 싶다고 할 때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 줄 사람”으로서 자신과 닮은, 성희주의 청혼을 받아들인 이유가 설명된다. 단지 탄일연에 철릭을 입었다는 것만으로, 이안대군의 ‘삐딱함’이 충분히 전달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이 닮아 있다는 설정과 기획의도 자체는 좋다. 두 주인공이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서로 끌린다는 것은 로맨스 드라마의 ‘필승’ 공식이지 않은가. 그런데 〈21세기 대군부인〉은 매우 불친절하게도, 두 주인공의 감정이 쌓이는 과정을 매우 희미하게만 보여준다. 돈은 많이 들어갔겠지만 감정은 많이 들어가지 않은, 장면을 위한 장면들 탓에 휘발되는 씬이 많은 탓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들더라도 감정은 쌓여야 하는데, 쌓아놓은 감정 없이 대뜸 마음이 열리니 시청자는 따라잡기 어렵다. 이를테면 ‘타이타닉 씬’, ‘카 체이싱 씬’ 등이 그 예다. 으레 로맨스 드라마에는 ‘짤’로 박제될 결정적인 순간들이 필요한 법이라지만, 갑자기 나오는 키스신처럼 예쁘게만 담은 장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진짜 두 사람은 갑자기 키스를 하고 갑작스레 마음을 열기 시작했는가. 서로의 사정으로 인해 맺은 계약 결혼 이후, 두 사람이 각자의 이득을 뒤로하고 사랑에 빠지려면, 자신의 벽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사랑 앞에, 자신이 세웠던 기준이 무너지는 경험, ‘실리’보다 ‘사람’이 앞서는 순간의 고뇌가 생략된 로맨스는 공허할 뿐이다. 두 사람은 언제 상대방이 자신과 비슷한 결핍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는가. 성희주는 본인의 욕망을 넘어선 ‘진심’을 언제, 어떻게, 왜 느끼기 시작했는가.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 온 이안대군은 왜, 하필 그 순간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는가. 성희주의 말대로 “익숙한 맛이 더 맛있고, 익숙한 길이 더 예쁘고, 익숙한 옷에 더 손이 가는”거라지만, 재료를 다 갖춰 놓고도 ‘맛있게 끓이기’는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신분제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척만 한 싱거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https://www.cineplay.co.kr/ko-kr/articles/2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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