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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나라에 더 난폭한 미국, 한국은 미국에 '만만한' 국가인가

무명의 더쿠 | 13:06 | 조회 수 1140

https://n.news.naver.com/article/002/0002437602?cds=news_media_pc&type=editn

 

 

[정욱식 칼럼] 미국, 패권의 종말이 아니라 패권의 변질이다

(중략)

만만한 상대만 괴롭힌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미국의 글로벌 패권은 약해지고 있지만, 미국이 만만하다고 여기는 상대로 한 패권적 행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칠어지고 있다. 여기서 만만한 상대는 두 부류로 나뇐다. 하나는 '힘이 약한 적대국'이다. 미국으로부터 불법적 공격을 당한 베네수엘라와 이란, 그리고 봉쇄를 앞세운 미국의 정권교체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쿠바가 이에 해당한다.

이렇듯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강조했던 미국은 '규칙 파괴자'로 변모하고 있음에도 이를 견제하거나 제재할 국제 레짐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서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제 기구와 규범을 만들었는데, 미국이 스스로 만든 규칙을 파괴하면서도 구조적 면책을 누리고 있다. '기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는 있지만, 미국 패권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표이다.

또 하나의 부류는 '미국의 동맹'이다. 트럼프 2기 들어 한국·일본·유럽연합 등 핵심 동맹국을 상대로 한 패권적 행태는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관세와 안보 공약 철회 위협을 앞세워 대미 투자와 미국산 원유 수입 압박을 높여왔다. 또 이란 침공이 속 시원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자, 걸프 지역의 동맹을 상대로 한 요구도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미군 기지 접수국들이어서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 정작 미국은 전비 분담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자체적인 문제 해결 역량의 부족

이렇듯 글로벌 패권의 약화에도 불구하고 동맹을 상대로 한 미국의 패권적 행태는 거칠어지고, 적지 않게 관철되고 있다. 왜 이런 역설이 생기는가? 핵심은 동맹국들의 자체적인 문제 해결 역량의 부재에 있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연합의 가장 중요한 상대는 러시아이고, 일본에겐 중국이며, 한국에겐 조선(북한)이다.

그런데 유럽연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끝낼 역량이 없다. 그렇다고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추구할 정치적 의지도 부족해 보인다.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를 풀려는 의지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중국과의 적대 관계를 스스로 감당할 능력도 부족하다. 한국은 어떨까?

일단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군사적 긴장이 크게 완화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자주국방이 시대정신"이라며,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가 자주국방과 더불어 또 하나의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평화공존은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막혀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를 스스로 지키겠다'는 자주국방론이 남북관계(한조관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주적 역량을 저해할 소지마저 있다. 문제는 자주국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실효적인 평화공존 전략 없이 추진될 때 생기는 부작용이다. 평화공존은 극심한 군비경쟁을 완화하고 군비통제의 토대를 닦을 때 다가설 수 있는데, 한국의 자주국방론과 조선의 "핵무력과 상용무력(재래식군사력) 병진론"이 맞물리면서 군비경쟁을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이렇듯 미국의 동맹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자체적인 문제 해결 역량의 부족에 있다. 그래서 미우나 고우나 미국이 필요하다. 지정학적 대변동이 겹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전반적인 미국 패권의 약화는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재강대국화, 조선의 불가역적 핵무장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이들 나라를 상대할 의지와 능력이 약해질수록, 동맹국들은 결국 알아서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미국의 동맹들은 대대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역량의 부족을 해결할 수 없다. 군비경쟁의 상대 역시 강해지면서 '안보 딜레마'를 격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패권적 요구에 취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강을 향해 열심히 뛰는데, 대미 의존은 반복·심화되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말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 패권의 달라진 양상이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약해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다극화가 고개를 들고 있지만, 미국은 자신의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다고 믿는 지역과 국가를 상대로는 더 난폭하게 군다. 특히 대안도 출구도 찾지 못하는 동맹국들을 상대로는 더 위험해지고 있다. 패권의 종말이 아니라 패권의 변질이다. 그리고 그 변질의 최대 피해자는 스스로 문제를 풀 능력도 의지도 부족한 나라들이다.

그것이 우려의 시선이든, 기대의 반영이든, 미국 패권 종말론을 성급히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지 자문할 때가 아닐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한 무궁화 대훈장.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한 무궁화 대훈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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